50살 자영업자 빚 1억9천…“코로나 겪고 더 열심히 살았지만”

이주빈 기자 2024. 3.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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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 공약-내 한표의 힘]
현장 목소리 ‘소상공인 부채난’
경제 뇌관 1886조 가계 부채
24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 문 닫은 매장 앞에 대출 관련 광고지들이 붙어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는 김아무개(55)씨는 대출 상품 8개를 이용한다. 각종 소상공인 정책자금과 햇살론15 등으로 얻은 빚이 1억4300만원이다. 창업 1년 만에 투자금을 회수했을 정도로 사업이 순항했으나, 코로나19가 터지며 대출이 불기 시작했다. 하늘길이 막혀 사진만 보고 주문해야 했던 중국 거래처 옷들은 절반 이상이 재고로 쌓였다. 정부 대출을 받아 3년치 월세와 물건값을 치렀다.

김씨는 “진짜 지옥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자만 내던 정책자금 대출의 원금 상환 기간이 찾아왔다. 매달 원금과 이자로 300만원가량을 지출하는 김씨는 지난달 금리 연 20%짜리 대부업체 돈을 가져다 썼다. “봄 신상을 해야 하는데 돈은 없고 더 이상 금융기관 대출도 나오지 않아요.” 빚은 더 나쁜 빚을 낳았다. 김씨의 원리금 상환액은 내년부터 월 500만원으로 늘어난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1886조원(지난해 말 가계신용 기준) 규모 ‘가계부채’ 문제의 이면에는 김씨와 같은 소상공인·취약차주가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 여파로 이자 부담이 훌쩍 커지며 폐업과 신용 악화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대출 받은 국내 저소득·저신용 취약차주의 연간 소득 대비 이자 지급액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20.7%다. 일반 대출자(11.8%)의 갑절에 이른다. 취약차주 수 증가와 대출 연체율 상승으로 올해 들어 매달 개인 회생 신청 건수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1만건을 웃돈다.

서울 마포구에서 작은 술집을 하는 하아무개씨(50)도 가게를 확장 이전한 지 3개월 만에 코로나를 맞았다. 하씨는 “밤 8~9시부터 손님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영업제한을 하니까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달이면, 다다음달이면 풀릴 거라고 희망을 품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온갖 이름으로 돈을 빌려줬다. 그는 집합 제한 업종 특례자금 등으로 1천~3천만원씩 모두 12번에 걸쳐 1억9천만원을 빌렸다. 큰 부담 없이 받았던 저리의 정책금융 지원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빚의 수렁에 빠져든 모양새다.

한국은행이 국내 금융사에서 개인 사업자 대출을 받는 대출자들의 가계 대출을 합산해 추산한 국내 전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052조6천억원이다. 석달 전보다 9조원 넘게 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10%가 넘는 116조2천억원이 저소득·저신용 취약차주 38만9천명 몫이다.

금융회사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업무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금융권의 개인 사업자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1.29%로 1% 미만이었던 코로나 이전 수준을 웃돈다.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을 위한 정책 금융상품의 연체율이 훨씬 높았다. 저신용자를 위해 출시한 ‘햇살론15’ 채무를 서민금융진흥원이 채무자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율(연체율)은 지난해 21.3%였다. 2022년(15.5%)보다 5.8%포인트 급등한 것이다. 건조한 수치 속에 빚 폭탄을 감당하지 못한 자영업자의 사정이 투영돼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하씨가 보유한 모든 대출의 원금 상환이 시작됐다. 길었던 코로나 터널은 빚으로 어찌어찌 버텼지만, 원금 상환이 시작된 올해부터 “완전 초토화됐다”는 심정이란다. 하씨는 한 달에 원리금만 500만원 이상 부담하고 있다. 매출은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고물가에 부담이 커진 손님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고, 대신 원재료비 등 각종 경비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았기 때문이다.

하씨는 “사과값이 금값이 됐다. 그나마 가장 저렴한 과일이었지 않나. 브리치즈, 샐러드, 각종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인데.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과뿐 아니다. 4천원이던 나초가 지난해부터 7천원이 됐다. 2만9천원에 사던 올리브유는 6만9천원이다. “진작에 폐업할 걸 괜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하고 폐업 안 하고 유지한 결정이 이제서야 후회돼요.” 그는 푸념하듯 말했다.

극단적인 소비 부진이 나타났던 코로나 팬데믹 시기 각국 정부는 정책 역량을 총동원해 실물 경제의 불씨를 살리려 애썼다. 당시 정부가 택한 방법은 재정지출 증대와 정책금융 지원이었다. 문제는 그 비율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20년 말 기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추가 재정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3.4% 수준으로 오이시디 평균(7.3%)에 크게 못 미친 반면, 금융지원은 국내총생산의 10.2%로 오이시디 평균(8.2%)을 넘어섰다. 정부가 빚을 내지 않고 대신 개인이 빚을 짊어진 셈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면서 정부 재정지출 확대가 어정쩡했다. 그 대신 소상공인 등이 정책금융 지원을 받으며 빚으로 빚을 메우며 연명한 측면이 있는데 이제 그 대가가 돌아오는 시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고금리 정책이 유지되면서 한계 차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금융학회 연구용역으로 작성된 ‘코로나 이후 가계부채의 현황과 위험도 점검’ 논문을 보면, 이자율 상승기(2021년 8월~2023년 6월) 고소득층과 자산이 축적된 중장년층은 고금리 부담을 피하기 위해 대출을 줄였지만, 연소득 2천만원 이하 저소득층과 아직 자산이 형성되지 않은 청년층은 오히려 대출 규모가 늘었다. 논문을 작성한 이윤수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빚으로 빚을 메우는 자영업자, 생활비 등을 신용대출로 충당해야 하는 서민층 등 한계차주를 중심으로 악성채무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상대적 소액대출이라 가계부채 총량관리 관점에서는 눈에 띄지 않겠지만,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출신인 이아무개(43)씨는 2017년 퇴직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는 학원·식당의 매출 데이터 등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납품·관리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학원·식당 등에 집합금지가 적용되면서 이씨의 사업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 9500만원의 빚이 생겼다.

이씨는 대출금으로 임대료와 직원 급여를 해결하고 사업을 청산했다. 순차적으로 받았던 정책 대출 상품은 이제 거치 기간이 끝나 원금 상환이 시작되고 있다. 이씨는 매달 170만원을 상환하는데, 5월이면 200만원, 10월이면 250만원, 내년 초엔 300만원 이상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 예정이다. 설상가상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연 2.6%에서 5.6%로 두 배 넘게 올랐다. 이씨는 아이 돌 반지를 팔고 적금을 깼다고 한다.

“저는 절대 나태하거나 게으르게 일하지 않았거든요. 코로나19 이후에 정말 더 열심히 했는데도 빚만 늘어나니….” 이씨는 한숨을 쉬었다. 사업을 접은 그는 아르바이트만 3개를 하고 있다. 오전에는 장애인 활동 보조, 낮에는 쿠팡 배달을 한다. 저녁에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폐업을 선택하지 않은, 김씨와 하씨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하씨는 “어떻게든 영업을 이어가기 위해 신규 대출을 문의했더니 ‘대출이 왜 이리 많으냐, 차라리 폐업을 하지 그랬냐’는 답까지 들었다”며 “지난 정부에서 고통이 시작됐고, 이번 정부는 우리 때 일이 아니라며 모른 척한다. 방법은 각자도생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의류 도매업자 김씨는 “저희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를 (국회의원들이) 지겨워한다는 말이 우리 도매상들 사이에 들린다”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빚 문제에 (정당마다) 별다른 계획이 없다고 들어서 이번에는 선거를 하지 말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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