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너의 꿈이 나의 꿈이다

최수현 기자 2024. 3.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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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걸고 LPGA 대회 연 박세리
“내 꿈은 나 자신만의 것 아니라
다른 이의 꿈 실현 기회 주는 것”
우리의 꿈은 서로 연결돼 있다
박세리가 2024년 3월 24일 캘리포니아주 팔로스 버데스 에스테츠의 팔로스 버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파이어 힐스 세리 박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후 트로피 시상식에서 연설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25일 끝난 ‘세리 박 챔피언십’은 미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 이름을 내세운 첫 대회였다. 주최자 박세리는 “선수 시절부터 꿈꿔온 영광”이라고 했다. 한국 TV엔 박세리가 자주 등장하지만 미국에선 2016년 은퇴 후 8년 만에 ‘돌아온’ 인물이었다. 현지 골프 매체들이 그의 업적과 영향력을 조명하는 기사를 내놨다.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 ‘맨발 샷’으로 한국 국민에게 감동과 자부심을 안겼다. 이후로도 꾸준히 활약하며 25승을 달성했고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미 골프위크는 ‘박세리가 세계 골프를 영원히 바꿔놓은 다섯 가지 방식’이란 기사에서 “박세리가 LPGA에 대변혁을 일으킨 모든 방식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볼 기회”라고 전했다. 한국 골프 발전을 이끌었고, LPGA 투어 아시아 선수와 아시아 대회 비중, 골프 산업 규모와 마인드를 바꿔놨다고 분석했다. 그가 LPGA 투어에 데뷔한 26년 전 아시아 선수는 7명이었고 한국 선수는 박세리뿐이었으나 지난해 LPGA 투어 현역 선수 중 아시아 출신은 30%를 넘었다. 박세리가 이러한 변화의 물꼬를 텄고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였다.

대회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세리가 내놓은 고백은 흥미로웠다. 개최 배경을 설명하면서 “내 꿈이 나 자신만의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 꿈은 다른 누군가의 꿈이 실현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고 깨달음을 전했다. 그가 미국 무대에 도전해 선수 생활을 한 것 자체가 그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과 지인, 팬들과 유망주들 꿈을 현실로 이뤄낸 것이었다. 그는 은퇴 후에도 주니어 대회 등을 열면서 더 많은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애썼다고 한다. 어린 선수들 각자가 품은 꿈을 이루는 것이 곧 박세리 자신의 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 골프 다이제스트는 “거의 모든 한국 골프 선수가 박세리와 관련된 스토리를 갖고 있다”며 박세리와 후배들의 일대일 인연을 전했다. LPGA 투어 2승을 올린 31세 이미향은 15세 때 박세리와 함께 라운드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그 나이였을 때보다 더 잘 친다”는 칭찬을 듣고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장래 프로 골퍼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LPGA 투어 4승을 이룬 30세 전인지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을 골프 입문 계기로 꼽았다. 당시 그의 아버지가 우승 장면을 보고 어린 딸에게 골프를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박세리는 과감한 도전에 이어 세계 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하면서 무엇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줬다. 시간이 많이 흘러 세계를 호령하던 한국 여자 골프는 최근 주춤하지만, 그 사이 성공 모델은 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됐다. 미국과 유럽의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년 전 LPGA 투어 첫 우승을 거둔 안드레아 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언제나 박세리와 신지애를 존경했다”며 “그들이 성취한 것은 미래에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이라고 했다.

세계 투어 통산 64승을 거둔 36세 신지애는 ‘세리 박 챔피언십’에 초청 선수로 출전했다. 18세 때 박세리와 처음 같은 조에서 경기하기 전날 떨리는 마음에 한숨도 못 잤던 기억을 꺼냈다. 신지애는 “박세리가 우리에게 ‘길’을 선물했다”고 했고, 박세리는 “왕언니(big sister)가 된 것이 자랑스럽고 여전히 좋다”고 했다. 나의 꿈과 남의 꿈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건 부질없는 싸움일 것이다. 네가 잘돼야 내가 잘되고, 내가 잘되면 너도 잘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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