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산맥 넘은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룸에서]

조기원 기자 2024. 3. 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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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17일(현지시간)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가까운 로스토프온돈에 설치된 이동식 계약직 신병 모집센터 옆에 서 있다. 로스토프온돈/로이터 연합뉴스

조기원 | 국제부장

네팔 남성 가네시(35)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최전선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넉달 반을 러시아 용병으로 머물다가 간신히 귀국했다. 최근 영국 스카이뉴스가 보도한 그의 사연을 보면 그는 원래 룩셈부르크에서 일하려고 했으나 러시아에 “기회가 훨씬 많다”는 브로커의 말을 듣고 러시아행을 택했다. 그는 러시아에 가기 위해 빚을 내어 거의 100만네팔루피(약 1000만원)를 지불했다. 그리고 여행 비자를 받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경유해 모스크바로 갔다.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훈련소에서 2주 동안 군사 훈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상황은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2주 군사 훈련이 끝난 뒤 그는 곧바로 최전선으로 향해야 했다. 전선에서 러시아 군인들은 뒤로 빠지고 자신과 같은 용병들이 앞에 나서야만 했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끔찍했다”고 그는 말했다. 10년간 인도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군인인 그도 견디기 힘든 환경이었는데, 동료 네팔인 중에는 총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에는 네팔 용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편안한 모습으로 춤을 추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그는 이런 영상은 사실이 아니며 믿지 말라고 했다. 결국 그는 두번의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했지만 러시아 교도소에 한달 반 동안 수감됐다가 네팔로 송환됐다.

가네시처럼 러시아군에 고용돼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선으로 보내진 이들의 이야기는 최근 여러 외신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최근 러시아군에 고용됐던 네팔 남성 4명이 네팔 정부가 자신들을 외면한다고 주장하며 인도 정부에 도움을 달라고 말하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기도 했다.

네팔 정부는 앞서 지난 1월 자국민들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취업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렸다. 같은 달 나라얀 프라카시 사우드 네팔 외교장관은 에이피(AP)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의 네팔인 고용을 즉각 중단하고 숨진 이들에 대해서는 유가족에게 보상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사우드 장관은 러시아군에 용병으로 고용된 네팔인이 200명이 넘고 숨진 이도 14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러시아군에 고용된 네팔인 숫자가 2000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아시아의 네팔인들이 대거 이 전쟁에 참여하는 배경에는 네팔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400달러 남짓에 그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과 관련이 깊다. 많은 네팔 남성들이 이전부터 군인과 경찰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 영국군에는 지금도 네팔 구르카 용병들로 구성된 외인부대가 존재한다. 브로커들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러시아군 용병이 되면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일정 기간 복무하면 러시아 여권도 받을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속아서 러시아군 용병이 됐다는 증언이나 보도는 네팔뿐 아니라 인도, 쿠바 등에서도 나온다.

2022년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 전쟁은 사람과 물자를 세계 곳곳에서 빨아들이고 있다. 전쟁의 그늘이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한 네팔까지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도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리 김 미국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지난달 한미연구소(ICAS) 온라인 심포지엄에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정치적 지지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방어 지원(defense support)을 제공했으며, 우리는 그런 물자(materials)가 우크라이나로 더 가는 것을 보고 싶다”며 한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을 공급하고 있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산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됐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5선 당선이 확정된 지난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로 “나는 당신과 굳게 손잡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내용의 축전을 보내 양국 관계의 굳건함을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5월 취임식 뒤 중국 방문이 예상되며 이후 북한 방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에 미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자장은 더 커지고 있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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