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알려주는 법] 재건축 재개발 조합장, 해임사유 없이 해임할 수 있을까?

허남이 기자 2024. 3. 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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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재개발 조합장을 해임사유 없이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해임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빌미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가령,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조합의 임원이 되어 여러 이권에 개입하는 것이다. 조합장은 사업이 끝나면 아파트 두채 정도는 번다는 속설도 있었다.

법무법인 센트로 김택종 변호사/사진제공=법무법인 센트로

과거 이러한 행태가 있었던 것은, 재건축이든 재개발이든 정작 당사자인 조합원들이 조합사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알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필자와 같이 재건축 재개발을 전문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조합사업에 대해 제대로 알기 어려운데, 일반인인 조합원이 조합사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요즘은 온라인에 정보가 넘쳐난다. 그리고 조합원들도 권리의식이 투철해져 모르는 것이 있으면 조합에 이런저런 내용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도 적극적이다. 그러다보니 필자가 자문하고 있는 조합들은, 조합원이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는데 이를 공개해도 되는지 문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합원들은 공개된 정보를 통해 조합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조합장의 해임을 요구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조합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는 흔치 않으므로,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발의를 통해 조합장에 대한 해임총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조합장 해임을 위해 해임사유가 반드시 필요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래야 할 것 같지만, 해임사유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합장은 조합에 고용된 사무직원과 법적 지위를 달리 한다. 조합장은 조합총회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되고, 사무직원은 고용계약으로 채용된다. 법적으로 조합과 조합장은 위임관계에 있고, 조합과 사무직원은 고용관계에 있다.

한편, 민법상 위임계약은 원칙적으로 언제든지 해지가 가능하다. 위임계약이 위임인과 수임인 사이 신뢰가 중요한 점을 고려한 것이다. 조합장 해임은 조합이 조합장과의 위임계약을 해지하는 것에 해당하는데, 따라서 달리 해임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조합원들 대다수의 신뢰를 잃은 조합장을 조합원들 대표로 두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해임사유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조합장을 이유 없이 해임하는 것이 항상 문제가 없지는 않다. 민법은 위임계약을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지만, 당사자는 합의로 달리 정할 수 있다. 즉, 합의로 자유로운 해지를 제한할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위임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같은 취지로, 조합정관에서 조합장 해임과 관해 구체적인 해임사유를 규정하는 등 특별한 규정을 둔 경우에는 달리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대개의 조합들은 표준정관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으므로, 조합장의 해임사유에 관해 추상적인 규정을 둘 뿐이다. 그래서 하급심들은 조합장의 해임이 문제된 대부분의 사건에서 조합원들 다수 의사로써 해임결의가 있었다면 해임사유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조합장의 해임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해임 사유와 함께 조합장에게 소명기회를 부여하였는지도 자주 다툼이 된다. 어차피 해임사유도 필요하지 않은데, 소명기회도 부여할 필요가 없지 않나 싶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툼이 있을 때는 양 당사자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적어도 조합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고, 조합장의 소명기회는 그러한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하급심들은 조합정관에 소명기회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명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해임총회를 진행하였다면, 대체로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본다. 참고로, 재건축 표준정관에는 소명기회가 명시되어 있으나, 재개발 표준정관에는 소명기회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 대체로 재건축조합이 정관에 소명기회를 명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절차 위법으로 인해 조합장 해임결의가 효력이 없다고 볼지는 개별적인 사정에 따라 달리 판단할 여지가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본, 조합장과 조합원들 사이 신뢰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글 법무법인 센트로 김택종 변호사

허남이 기자 nyhe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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