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기후변동에 쫓기는 사과나무

정남구 기자 2024. 3. 2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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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소설에서 허생은 부자 변씨에게 만냥을 빌려 안성시장으로 간다.

거기서 '대추 밤 감 배며, 석류 귤 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두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제사상에 과일을 진설하는 순서를 말하는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에도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감귤의 생산량이 계속 늘어 지금은 사과보다 많아졌지만, 감귤이 사과를 온전하게 대체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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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화백

박지원의 소설에서 허생은 부자 변씨에게 만냥을 빌려 안성시장으로 간다. 거기서 ‘대추 밤 감 배며, 석류 귤 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두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그런데 과일의 목록에 사과가 없다. 제사상에 과일을 진설하는 순서를 말하는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에도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조선 시대에 사과라는 과일은 없었다.

1655년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효종의 동생)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서역의 사과나무’를 몇그루 갖고 왔다는 기록이 있다. 숙종 때 백악산(북악산) 일대에 심어 사과꽃이 만발해 장관을 이뤘다는데, 그렇다고 사과 재배가 널리 퍼졌던 건 아니다. 개량종 서양 사과나무는 1890년대부터 미국인 선교사들이 미국에서 묘목을 들여와, 대구와 황해 황주 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퍼뜨렸다. 경제적인 재배는 1905년 무렵 일본인들이 시작했다. 사과나무가 우리 기후에 맞고 소비자들의 사과 선호도도 높아서 1980년 무렵 사과는 우리나라 과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당시엔 국광, 홍옥 품종이 80%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후지가 70%를 차지한다.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39만4천여톤으로 2022년에 견줘 30.3%나 줄었다. 옛사람들은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것을 기(饑), 채소가 자라지 못하는 것을 근(饉), 과일이 흉년 드는 것을 황(荒)이라 했는데, ‘사과 황’이 든 것이다. 이로 인해 사과값이 폭등해, 사과 소비자를 울리고 있다. 2011년에도 사과 생산량이 전년대비 17.5% 감소한 일이 있지만, 지난해와 같은 흉작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문제의 뿌리는 기후위기다. 지난해 3월 기온이 높아 사과꽃이 일찍 피었다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냉해를 입은 것이 흉작으로 이어졌다. 걱정스러운 것은 사과 작황이 불안정해져, 과수 농가가 사과 재배에 매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이들이 사과 재배를 줄이면,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값을 치르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다 자란 성과수를 기준으로 재배면적 10아르(300평)당 생산량이 2009∼2018년 연평균 2233㎏이던 것이 2019∼2023년에는 1961㎏으로 줄었다. 최근 5년 중 3년이나 2천㎏을 밑돌았다. 감귤의 생산량이 계속 늘어 지금은 사과보다 많아졌지만, 감귤이 사과를 온전하게 대체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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