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어선에선 왜 한국인 선원들만 희생됐을까…사고 뒤에 숨은 어업 실태

배승주 기자 2024. 3. 2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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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4시 12분쯤 부산선적 139t급 쌍끌이 저인망 어선 제102해진호가 통영 욕지도 남쪽 8.5㎞에서 침몰했습니다. 선원 11명이 타고 있었는데 한국인 4명이 숨지고 인도네시아인과 베트남인 7명은 구조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외국인 선원은 전원 생존하고 한국인만 모두 변을 당했습니다. 사고 약 9시간 전부터 어선 위치 발신 장치인 브이패스(v-pass)가 꺼져 있었습니다.

유족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한국인 선원만 숨졌고 브이패스(v-pass)는 왜 꺼져있었냐며 선상반란이나 폭동 등 다른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제102해진호는 쌍끌이를 할 또 다른 어선 A호와 함께 사고 전날인 13일 오후 5시쯤 경남 통영 동호항에서 출항했습니다. 1차 쌍끌이를 했고 그물에 잡힌 고기를 A호에 먼저 담았습니다. 평소보다 적은 양의 정어리가 잡혔습니다. 2차 쌍끌이를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40톤 분량이었습니다. 제102해진호 선미 즉, 배 뒤쪽에 잡은 정어리를 풀었습니다.

잡은 물고기는 갑판 아래 어창에 보관해야 합니다. 무게중심이 배 밑에 있어야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존자들 진술에 따르면 선미에 정어리를 그대로 두고 배가 출발했습니다. 새벽 5시에 열리는 통영수협 위판 시간에 맞추려 선별작업을 하면서 항해했다는 게 해경의 설명입니다.

배가 파도를 치고 달리자 심하게 휘청이기 시작했습니다. 선미가 무겁다 보니 선수쪽은 더 들려 올라갔고 배가 중심을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급기야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잡은 물고기가 어창에 있었다면 복원력이 생기지만 선미에 있다 보니 그렇지 못했습니다. 선장 지시로 선원들이 급히 정어리 일부를 오른쪽 어창에 밀어 넣었습니다. 무게 중심을 맞추려 한 겁니다. 동시에 60대 기관장이 배 밑으로 갔습니다. 평형수를 오른쪽으로 보내기 위해섭니다. 하지만 끝내 배는 왼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복원력을 완전히 잃은 겁니다. 그렇게 제102해진호는 침몰했습니다.

해경은 구조 선원 중 한국인만 숨진 것에 대해서 '선장 등 관리자 직책인 한국인은 선내에 있었고 외국인은 선외에서 작업하면서 한국인 선원들이 탈출 과정에서 시간이 더 걸려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60대 기관장은 사고 닷새 뒤인 19일 수중 수색 중 기관실에서 발견됐습니다. 숨진 한국인 선원은 50대 이상인 반면 생존한 외국인 선원은 20~30대입니다. 구명조끼는 단 1명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고는 국내 어선의 실태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한국인 선원은 고령화됐습니다. 제102해진호처럼 50대 이상이 대부분입니다. 빈자리는 외국인 선원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선원들은 구명조끼 입는 것을 여전히 불편하다고 여깁니다. 조업 중에 구명조끼를 입지 않아도 단속 대상이 아닙니다. 브이패스(v-pass)도 종종 고장 나거나 꺼집니다. 제102해진호가 침몰한 위치는 수산자원관리법에 규정된 쌍끌이 어선 조업금지구역입니다. 해경은 제102해진호의 불법 조업 여부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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