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때문에 바나나가 멸종한다고? 다국적 기업의 수작일 뿐”

한겨레 2024. 3. 2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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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⑪ 바나나 멸종 사건 2
2009년 필리핀 마닐라 케손시티에 있는 환경과 천연자원부 앞에서 환경운동가가 공중 농약 살포 금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EPA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바나나광’이라고 소개한 의뢰자는 ‘기후변화 때문에 바나나가 멸종하는 게 정말이냐’고 물었어요. 어제도 여덟 개 달린 바나나 한 송이를 4500원에 샀다는데, 아니, 이렇게 값싸고 천지인 바나나가 싸그리 없어진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대요. (☞10회에서 이어짐)

1970~8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바나나는 ‘귀족 과일’이었어요. 어린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가난해도 먹을 기회가 없진 않았어요. 병문안객들이 바나나를 사들고 오는 문화가 있었거든요. 한 소년이 있었어요. 그는 꾀를 내어 자기집 옥상에서 수영복도 입지 않고 다이빙을 해요. 계획대로 팔다리가 부러져 소년은 병원에 입원했고, 병문안객을 기다렸죠. 하지만, 이모는 파인애플 상자를 들고 왔답니다.

그 뒤, 소년은 필리핀 민다나오 섬으로 떠났어요. 필리핀에서도 태풍이 오지 않는 이 섬은 태풍에 취약한 바나나를 대량 재배하기 좋은 곳이었어요.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에요) 1960년대부터 델몬트, 돌, 스미후루 등 다국적 식품업체가 진출한 이곳에서 그는 바나나를 연구했어요. 최근엔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바나나광들의 ‘구루’가 되었죠.

농약을 살포하는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던 카피탄

“한국에서 가져 온 바나나 맛있니?”

필리핀 마닐라에서 민다나오 섬의 최대 도시 다바오로 가는 비행기. 바나나를 혼자 오물거리고 있는 와트슨 요원에게 셜록 조사반장이 부러운듯 쳐다보면서 물었어요.

“필리핀산 바나나예요. 민다나오에서는 해상 운송 중에 바나나가 익는 걸 막으려고, 일부러 덜 익은 초록색 바나나를 수확해요. 바나나는 전용 선박이나 냉장 컨테이너에 실려 5~7일 만에 한국에 도착하죠. 그리고 전용 창고에서 섭씨 18~20도부터 13도까지 매일 온도를 조금씩 낮추며 에틸렌 가스를 주입해 6일 동안 바나나를 숙성시키죠. 지금 갈색 반점이 살짝 생겼으니 당연히 맛있죠. 이렇게 내 손에 들어온 바나나를 지금 민다나오 상공에서 먹고 있다니! 바나나야, 네 고향에 왔단다.”

“초록색 바나나가 노란색 바나나가 되어서 고향에 왔으니, 금의환향이라군.”

다바오 시내에 도착해 처음 본 광경은 농민과 환경단체의 시위였어요. 거대 바나나 기업들의 공중 농약 살포에 반대하는 이들이었어요.

“나는 바나나가 아니다!”

“우리는 해충이 아니다!”

과연 다바오 동쪽 바나나 산업 도시로 유명한 파나보 인근에 이르자,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농약을 뿌렸어요. 사람들은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문과 창문을 열고 밥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죠.

다바오 서쪽 북 코타바토(North Cotabato) 주에 ‘카피탄(Kapitan)’이라는 사람이 살았어요. 그는 돌이 운영하는 바나나 농장의 비행기가 농약을 살포하는 아침녘에 자기집 테라스에 나와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었죠. 2016년 2월 그의 몸이 마비되기 시작했어요. 그해 12월 숨을 거뒀죠. 카피탄은 골초였기 때문에 업체는 농약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했어요. 병원에서도 확실히 말을 하지 않았죠.

카피탄이 유명해진 건 그해 8월 필리핀 대법원이 공중 살포를 금지하는 다바오 시 조례를 위헌으로 판결했기 때문이에요. 대법원은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생명, 자유, 재산을 박탈할 수 없다’고 이유를 들었어요.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업체의 재산을 두고 한 말이예요. 2001년 부키드논(Bukidon)을 시작으로 민다나오 섬의 여러 지자체에서 조례로 규정한 공중 농약 살포 금지를 사실상 무력화한 거죠.

단 하나의 품종 ‘캐번디시’가 지배하는 세상

바나나 박사의 집은 바나나 플랜테이션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 부근이었어요. 옛날에는 찻길이 없는 오지였지만, 지금은 일본 자본이 합작한 스미후루가 ‘고산지 바나나’를 개발한 곳이에요.

바나나 박사는 거기서 나는 풍미왕, 감숙왕 바나나만 먹고사는 걸로 알려졌어요. 하지만 소문과 달리 집안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바나나가 걸려 있어 놀랐습니다.

“나는 다국적 업체의 바나나를 끊었소. 라툰단, 하트, 사바… 필리핀에서 소량 재배되는 품종이 더러 있어요. 대량 재배해서는 이윤이 남지 않아 거대 식품자본이 선택하지 않을 뿐이지.”

그리고 말을 이었습니다.

“바나나가 기후변화 때문에 멸종할 거라고? 어림없는 소리. 정부 지원을 받고 산업을 유지하려고 사람들 눈을 돌리려는 수작일 뿐이오. 지금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사람들이 먹는 바나나가 무엇인지 아나? ‘캐번디시’라는 단 하나의 품종이오. 당신들, 맛이 다른 바나나를 먹어 본 적이 있나? 단 하나의 품종이 세계의 시장과 식문화를 지배하고 있단 말이지. 그게 정상으로 보이나? 지구 46억년 역사에서 없던 일이네.”

바나나 공부를 많이 한 와트슨이 대답했습니다.

“네. 저도 들었습니다. 지금의 바나나는 씨가 없는 야생종의 돌연변이를 포기나누기를 해서 늘린 거라고요. 그래서 사실상 지구에는 캐번디시의 클론만 존재한다는 거죠.”

“공부 많이 했구만. 그래서 유전자 다양성이 빈약하지. 그럼, 병충해에 취약하기 마련이야. 캐번디시 전에 다국적 업체들이 키우던 그로미셸 품종은 파나마병이 돌아 반세기만에 사라졌다네. 그때, 그들이 반성하고 다품종 재배로 돌아서야 했는데, 운좋게도 캐번디시를 발견해 지금에 이른 거지. 그래놓고 기후변화 핑계를 대면서 바나나의 미래를 논한다는 건 정말 웃기는 일일세.”

바나나 박사는 옷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나는 지금 다품종 소량 재배의 가능성을 보기 위해 야생 바나나를 찾아다니고 있어. 다양한 품종의 바나나를 세계 사람들이 비싸게 사서 조금 먹는 것, 그게 나의 꿈이라네. 바나나는 귀한 음식이야. 그게 정상이라고.”

“편지를 보낸 분이 박사님입니까?”

“내가 유튜브에 말하면 무도한 이곳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잘 써주시게나.”

바나나 박사는 마체테(정글 칼)를 들고 고산지대 밀림으로 떠났습니다. 달콤한 바나나 향기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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