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113) 세계 최대규모 주류전시회 프로바인 “소주는 알아도 안동소주는 몰라요.”

박순욱 선임기자 2024. 3. 2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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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소주 7개 업체, 독일 프로바인(ProWein, 와인/스피릿전시회) 부스 마련해 첫 참가
방문객 “안동소주는 처음 알았다”는 반응 대부분…시음 후에는 “놀랍다”
전주 이강주, 애플리즈, 진도홍주, 오미로제 등 전통주수출협의회 회원사도 출품
독일 증류주 전문가 조언 “녹색병 소주 유명세를 잘 활용, 프리미엄 소주 전략 펴야”
“안동소주도 500년 전통에 기대지 말고 제품향상 노력 끊임없이 해야” 지적도
프로바인 제5관에 자리한 안동소주 부스를 20여명의 외국 언론인들이 찾아, 안동소주 시음을 하고 있다. 안동소주 7개 양조장 대표는 올해 처음으로 프로바인 행사에 참가했다. /박순욱 기자

“흔히 알려진 녹색 병(저렴한 희석식소주를 의미)에 든 소주가 아니라 500년 전에 쌀로 만든 증류주 안동소주가 한국의 진짜 소주(real soju)다. 안동소주는 한국 소주의 기원이다.”(줄리아 멜로)

호주 출신의 한국 전통주 전문가 줄리아 멜로(Julia Mellor)씨의 진행으로 지난 10일 독일 뒤셀도르프 프로바인(ProWein,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와인전시회) 제5관에서 마련된 포럼장에서 안동소주 시음회가 열렸다. 이날 시음회에 참가한 20여명의 외국인들은 기존에 마셔본 녹색병의 알코올 도수 낮은 소주가 아닌, 40도가 넘는 증류식 소주를 맛보며 ‘소주의 신세계’를 체험했다. 그래서 이들의 반응 또한 제각각이었다. “소주는 알고 있었지만, 안동소주는 몰랐다”, “평생 처음 맛보는 술이다”, “시음한 술에서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독일식 양배추 김치) 향이 난다”(알코올 도수 높은 증류주에서 흔한 매운 향이 난다는 의미), “곰팡이 향(꼬리꼬리한)이 난다”(소주를 만들기 전 발효 단계에 들어가는 누룩향이 난다는 의미) 등의 다양한 시음평을 내놓았다.

프로바인 행사 첫날에 열린 안동소주 시음회 포럼. 20여명의 참석자들이 7개 안동소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음을 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이날 시음회에 참가한 한국인 이효빈(독일 뒤셀도르프 거주)씨는 “다양한 안동소주를 독일에서 처음 맛보는 귀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안동소주 시음회에는 명인 안동소주, 민속주 안동소주, 진맥 안동소주, 회곡 안동소주, 올소 안동소주, 명품 안동소주, 일품 안동소주 총 7개 안동소주 브랜드가 참가했다. 시음회를 진행한 줄리아씨는 2009년 한국에 영어를 가르치려 왔다가 막걸리에 반해 서울에 ‘더 술 컴퍼니’ 회사를 차려, 한국 전통주를 해외에 알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 소주의 시작은 고려말로 보는 견해가 절대 다수다. 몽골이 일본 원정을 위해 안동에 병참기지를 두면서 증류주 기술을 한국에 처음 전했다는 것이다. 해서 우리나라에서 소주를 처음 빚은 곳이 안동이며, 안동소주가 우리나라 소주의 기원이라고 보는 것이다.

2024 프로바인에 참석한 7개 안동소주 양조장 대표들. 안동소주는 프로바인 참석을 계기로 안동소주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사진 왼쪽부터 맹개술도가 박성호 이사, 명품안동소주 민병규 대리(수출대행업체 소속), 회곡양조장 권용복 대표, 명인안동소주 박찬관 대표, 안동소주 올소 신형서 대표, 일품안동소주 김임동 이사, 민속주 안동소주 김윤근 본부장. /박순욱 기자

‘한국 소주의 기원’ 안동소주를 생산하는 7개 양조장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프로바인(국제와인/증류주전시회)에 처음으로 참가해, 외국인 방문객 대상으로 시음행사를 가지는 등 제품 홍보에 적극 나섰다. 프로바인은 지난 3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독일 뒤셀도로프 메세에서 열렸다. 안동소주의 역사는 500년이 넘었지만, 작년에 안동소주협회가 만들어진 것을 계기로, 안동소주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해외수출을 확대하는 등 안동소주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안동소주의 프로바인 참가 역시 안동소주협회(박성호 회장, 안동진맥소주 이사)가 주관했으며, 해당 지방자치단체인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예산을 지원했다.

명인안동소주 박찬관 대표(왼쪽 두번째)가 프로바인 부스를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1994년부터 매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프로바인(ProWein)은 B2B(기업간거래) 형태로 열리는 국제주류전시회 중 세계 최대 규모로 꼽힌다. 올해 프로바인에는 65개국 5400여개 업체들이 부스를 차렸다. 독일에서 열리지만, 독일 참가사 비중은 11% 정도다. 이탈리아 와인 업체 1200개사, 프랑스 750개사, 독일 720개사, 스페인 680개, 포르투갈 330개사가 참여했다. B2C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행사 관람은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사흘간 열린 행사장을 찾은 와인/스피릿 전문가는 135개국에서 온 4만7000명으로 파악됐다.

민속주 안동소주의 3대인 김윤근 본부장이 도자기 병을 들어보이고 있다. 고 조옥화 명인(무형문화재)의 손자다. /박순욱 기자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증류주특별관(ProSpirits)이 신설돼, 제5관 전체를 전세계 증류주 제조업체와 관련 업체 420개 기업(40개국)이 참가했다. 안동소주를 비롯한 한국 업체들 역시 5관에 부스를 차렸다. 프로바인 한국대표인 라인메쎄 박정미 대표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스피릿(증류주)에 대한 관심이 해마다 높아가고 있어 올해 프로바인에는 별도로 증류주특별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사흘 간 안동소주 부스에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고, 준비해간 시음주 상당량이 소진되는 등 호응이 높았다.

독일 프로바인 안동소주관 진맥소주 부스를 지키고 있는 맹개술도가 박성호 이사(안동소주협회장), 김선영 대표 부부. /박순욱 기자

한국공동관에는 안동소주 7개 업체 외에 전주 이강주, 진도홍주, 애플리즈, 오미로제, 부자진 등 한국전통주수출협의회 회원사 38개 업체 53개 제품이 함께 선보였다. 안동소주와 전통주수출협회가 사이좋게 절반씩 부스를 나눠, 회원사 제품 홍보 자료와 제품을 진열해놓고 부스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시음을 권했다. 전주 이강주 조정형 명인, 대대로영농조합(진도홍주) 김애란 대표, 전통주수출협의회 한임섭 회장(애플리즈 대표), 오미나라 문성훈 부사장 등도 사흘간 부스를 지키며, 한국 전통주의 우수성을 알리려고 애썼다. 한국전통주수출협의회 한임섭 회장은 “10여년전부터 한국 전통주를 해외에 알리려고 각종 국제주류전시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글로벌 시장에 두각을 나타내려면, 품질 고급화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걸 매년 깨닫는다”고 말했다.

전통주수출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애플리즈 한임섭 대표. 애플리즈는 매출의 90% 이상을 수출이 차지할 정도로 해외매출 비중이 높다. 10여년전부터 해외주류박람회장 등을 부지런히 찾아다닌 덕분이다. /박순욱 기자
프로바인 행사에서 독일 에이전트 협의를 한 전주이강주 조정형 명인(왼쪽 두번째). 왼쪽 첫번째는 조 명인의 딸 조성연씨, 세번째는 독일 소주할래 허영삼 대표, 그다음은 전주이강주 이철수 사장. /박순욱 기자
프로바인 행사에 참가한 대대로영농조합법인(진도홍주) 김애란 대표. 김 대표는 "진도홍주는 쌀소주를 증류하는 과정에 지초를 사용,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말했다. /박순욱 기자
프로바인 행사에 참가한 문경 오미나라 문성훈 부사장. 바이든 미대통령 방한 때 식전주로 선정된 오미로제 결, 그리고 오미로제 연 시음을 진행했다. /박순욱 기자

올해로 30회를 맞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프로바인 행사에는 사실상 한국 업체들이 처음 참가한 만큼, 바이어상담을 통한 수출계약 같은 가시적인 성과는 당장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국관을 찾은 대부분의 방문객 역시 소주(저렴한 희석식소주를 의미하는 녹색병)는 알고 있었지만, 안동소주는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또, 안동소주를 시음한 방문객들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도 그럴것이 안동소주가 부스를 차린 5관에는 420개의 전세계 유명한 위스키, 보드카, 브랜드, 데킬라 전문업체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딱히 안동소주가 맛의 우위를 점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때문에 부스를 차린 7개 안동소주 대표들은 바이어 상담보다는 안동소주를 처음 알리는데 만족해야 했다. 박찬관 명인안동소주 대표는 “외국인들에게 안동소주를 널리 알리려면 프로바인 같은 국제행사에 지속적인 참가가 선행돼야 한다”며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와중에도 전주 이강주의 선전은 돋보였다. 전주 이강주는 이번 프로바인 행사 기간 동안 유럽의 이강주 판매를 총괄할 독일의 수입업체를 선정했다. 뒤셀도르프에서 10여년간 의료기기 비즈니스를 해온 허영삼 대표가 그 당사자로, 그는 작년 9월, 독일 현지에서 전통주전문 수입업체 ‘소주할래(Soju Halle GmbH)’를 설립, 전주 이강주, 논산 양촌양조 등 5개 국내 전통주 양조장 제품의 유럽 판매를 대행할 예정이다. 허영삼 대표는 “뒤셀도르프 한인학교에는 외국인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주 시장도 유럽 현지에서 덩달아 커질 것”이라며 “한국의 전통술을 한군데 모아 전시, 홍보할 수 있는 전통주갤러리를 독일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주 이강주 조정형 명인도 “영국, 네덜란드에도 이강주 지사가 있지만, 앞으로는 독일 에이전트를 유럽 판매 총괄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수출 의뢰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월영, 담소 등의 안동소주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는 회곡양조장은 귀국 직후에 독일, 벨기에측 바이어의 연락을 받았다. 회곡양조장 권용복 대표는 “도자기병에 든 월영 안동소주 제품(600ml)을 수입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며 “확보해 둔 증류원액이 그리 많지 않아 3000병 정도를 보낼 수 있을 것같다”고 말했다.

태사주를 프로바인 행사에 출품한 올소 안동소주 신형서 대표. 안동의 유명한 떡인 버버리찰떡 생산자이기도 하다. /박순욱 기자

저렴한 녹색병 소주를 ‘가짜 소주’로 폄하하지 말고, 녹색병 소주의 유명세에 올라 타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프로바인 제5관 증류주특별관 구성에 컨설턴트로 참여한 독일의 증류주 전문가 다이벨(Deibel)씨는 “한국의 소주라는 카테고리는 유럽에 이미 상당부분 알려진 만큼, 안동소주는 그들(녹색병 소주)과 다르다고 하면 유럽의 소비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프리미엄 버전(프리미엄 소주)이라고 접근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녹색병 소주를 적으로 보지 말고, 그 유명세를 잘 활용해, 후발주자인 안동소주를 알리는데 녹색병 소주를 적극 활용하라는 충고다.

프로바인에 참가한 회곡양조장 권용복 대표가 제품들이 진열된 전시장 부스를 소개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사실, 전통의 안동소주 입장에서는 희석식소주를 제대로 된 소주로 인정하기 어렵다. 무릇 소주란 국내산 쌀로 막걸리를 빚어, 이를 증류한 술만이 소주라고 부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감미료도 일체 타지 않는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한국의 녹색병 소주는 어떻게 만드는가? 외국산 농산물로 알코올 도수 95% 주정을 만들어 여기다 물을 많이 타고 또, 단맛을 내기 위해 감미료까지 넣은 술이 녹색병 소주다. 녹색병 소주가 아무리 많이 수출돼도 국내 농가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희석식소주 제조업체들이 국산 농산물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동소주 세계화를 위해 녹색병 소주의 유명세를 활용하라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주정에 물 탄 술이 소주라고 알고 있는 세계인이 태반인데, 안동소주는 녹색병 소주와는 아예 근본이 다른 술이라고 하면 낯선 안동소주를 알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 녹색병 소주도 소주가 맞고, 다만 안동소주를 비롯한 쌀소주는 프리미엄 소주라고 알리는 게 효과적이라는 게 다이벨씨의 조언이다.

사실, 소주의 원조가 안동소주라는데는 별 이견이 없지만, 안동소주가 현재 국내 전통주시장에서 어느 양조장이나 본받고 싶어할 정도로 품질 좋은 소주를 만들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적지 않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통주시장에서 안동소주가 점하고 있는 시장 사이즈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안동소주도 더 이상 500년, 700년 역사에 기대지 말고 양조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레시피를 새로 개발하는 등 품질 향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은 안동소주 내부에서 이미 나오고 있다. 작년부터 ‘안동소주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역시 최근 안동소주의 ‘경북도지사 품질 인증’ 기준을 마련하고, 안동소주의 품질 향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 전통주 전문가는 “현재 안동소주는 레시피, 제조공법, 숙성기간, 용기 디자인 측면에서 전국의 여타 양조장에 견주에 볼 때 특별한 강점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안동소주 브랜드를 모를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제품 향상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로바인 행사를 마친 안동소주 참가자 일행들은 독일 뤼데스하임에 있는 증류소 아스바흐를 방문, 현지에서 만든 브랜디 시음을 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안동소주의 세계화, 그래서 지금이 시작이다. 이번 프로바인 참가를 주관한 안동소주협회 박성호 회장은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증류식 소주가 있다는 걸, 이번에 안동소주를 통해 처음 알았다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프로바인 참가의 큰 수확”이라며 “제품향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동시에 해외공략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안동소주의 수출도 머지않아 날개를 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작년 안동소주 매출은 170억원 정도, 이중 수출은 7억원으로 4%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이번 프로바인 참가는 ‘안동소주 세계화’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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