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5일!] "거기 가봤어?"… 돼지 키우던 곳이 '환상의 나라'로

최문혁 기자 2024. 3. 2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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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용인자연농원, 에버랜드로 명칭 변경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테마파크 에버랜드의 옛이름은 용인자연농원이다. 사진은 신규 에버랜드 BI(Brand Identity) 선포 행사. /사진=삼성물산
1996년 3월25일. 용인자연농원이 에버랜드로 명칭을 바꿨다.

국내 최초 테마파크인 자연농원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테마파크의 역사를 말한다.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자연농원은 에버랜드라는 이름으로 더 화려하게 거듭났다.

자연농원이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꾼 것은 단순한 개명이 아닌 완전한 이미지 변신이었다. 글로벌로 나아가려는 삼성물산의 포부를 담았다. '황토에 내일을 꿈꾸는' 자연농원은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가 됐다. 에버랜드는 지금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테마파크다.



요즘 애들은 모르는 용인자연농원의 탄생


1976년 4월17일 에버랜드의 전신인 용인자연농원이 개장했다. 사진은 동양TV의 용인자연농원 개장기념축하공연을 보기 위해 야외공연장에 모인 관람객. /사진=삼성물산
1976년 4월17일 개장한 용인자연농원의 입장료는 어른 600원, 어린이 300원이었다.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높은 입장료임에도 개장과 동시에 자연농원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테마파크가 되기 이전 자연농원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자원농원의 시작은 국토 개발의 시범사업장이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60년대 우리나라에는 민둥산이 많았다. 참혹했던 전쟁의 흔적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황량한 땅에서 기회와 희망을 발견했다. 이 창업회장의 뜻에 따라 삼성은 경기 용인시 산간지역의 땅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부지를 사들인 삼성은 가파른 산지에 온갖 종류의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은 자라난 나무와 수확한 열매 등을 팔아 수익을 남겼다.

토양이 좋지 않은 곳에는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1960년대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에서는 고기 소비량이 증가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에 양돈사업을 권장했고 삼성도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양돈사업은 삼성에 엄청난 수익을 가져왔다. 돼지는 소에 비해 생산 속도가 빨랐으며 양돈 과정에서 나오는 퇴비는 나무를 키우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1973년 돼지 614마리로 시작한 양돈단지는 6만마리 이상으로 커졌다.

이후 돼지고기 공급량이 급증하면서 고기 가격이 폭락해 농가들의 원성이 커지자 1980년대 후반 정부는 기업양돈 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삼성은 양돈사업을 정리했다.

이 창업회장은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미국과 스위스를 꼽았다. 이 창업회장은 당시 후진국이던 우리나라에서 작지만 강한 국가 스위스를 꿈꾸며 자연농원을 꿈과 희망을 담은 테마파크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국내 최초의 테마파크가 탄생했다.

당시 자연농원은 국민 경제의 빠른 성장에 힘입어 첫날 입장객 2만5000여명을 기록할 정도로 국민적 인기를 누렸다. 동물원과 식물원 위주로 구성된 자연농원은 이후 1981년 후룸라이드, 1982년 우주관람차, 1983년 바이킹 등 여러 놀이기구를 최초로 국내에 들여오며 진정한 테마파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영광의 순간 얻은 새 이름,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용인자연농원이 이름을 에버랜드로 바꿨다. 사진은 에버랜드 브랜드를 소개하는 당시 캐릭터 킹코와 콜비. /사진=삼성물산
1996년 3월25일 국민적 인기를 누리던 국내 최초 테마파크 자연농원이 개장 20주년을 맞아 이름을 에버랜드로 바꿨다. 사람도 그러하듯 새로운 이름을 내건 에버랜드는 많은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같은해 여름인 7월12일 개장한 한국 최초 워터파크 '캐리비안 베이'였다. 캐리비안 베이는 개장 당시 세계 최대 실내외 복합형 워터파크였다. 에버랜드라는 이름이 등장한 지 3개월여 만에 개장한 워터파크는 그만큼 상징적이었다.

1990년대 당시 자연농원은 기존의 영농단지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동물원, 식물원, 놀이시설 등 진정한 테마파크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글로벌 테마파크로서의 새 이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자연농원의 개명은 1990년대 중반 불어온 세계화 열풍의 결과다. 특히 자연농원의 영문 명칭인 'Farmland'는 농토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테마파크이자 리조트로의 변화를 꿈꾸던 삼성물산에게 명칭 개정은 필수적으로 다가왔다.

이에 삼성물산은 세계적인 BI(Brand Identity)전문회사 랜도사와 함께 자연·발견·전설 등 3가지 기조를 살려 이름과 로고를 변경했다. 에버랜드의 '에버'는 영원함을 뜻하고 '랜드'는 자연과 포근함을 상징한다. '네이처휠'로 불리는 바람개비 모양의 심벌마크는 정열, 환희, 평화, 사랑, 신비, 모험을 상징하는 6개의 색으로 이뤄졌다.

에버랜드라는 이름을 얻은 직후인 1996년과 1997년에는 2년 연속 입장객 순위 세계 8대 테마파크로 선정됐다. 또한 1996년 관광진흥촉진대회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하고 1997년 한국 50대 히트상품에 선정되는 등 에버랜드라는 이름은 자연농원이 쌓아 올린 영광의 끝에서 날개를 활짝 폈다.

현재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에버랜드의 하루 최고 입장객과 최저 입장객 모두 자연농원이던 시절 기록했다. 하루 최고 입장객 수는 1995년 6월5일 기록한 12만443명이고 최저 입장객 수는 1977년 1월20일 기록한 2명이다.

최저 입장객 수 2명을 기록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영하 14도의 추운 날씨에 방문객이 없어 조기 마감을 걱정하던 순간 강원도 속초에서 이른 아침 자연농원을 찾은 노부부가 걸어왔다. 차마 문을 닫을 수 없었던 직원들은 노부부를 입장시켰다. 노부부는 한파로 놀이기구를 타진 못했으나 자연농원을 느긋하게 거닐었다고 한다.

최문혁 기자 moonh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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