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vsSK하이닉스]② ‘D램 왕좌’ 삼성 턱밑까지 추격 성공한 SK하이닉스… “EUV가 미래 승패 가를 것”

황민규 기자 2024. 3.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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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 앞에서 뽐냈던 이재용 회장의 D램 ‘자부심’
전통의 D램 강호 삼성전자, 2020년대 들어 위상 ‘흔들’
한때 3년 격차였던 기술력, 지난해 기준 ‘동일 선상’으로
전문가 “아직은 삼성의 우위, EUV 기술이 향후 관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모바일, PC, 서버 등 전통적인 수요처를 넘어 AI 프로세서에 최적화한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소품종 대량양산’ 전략으로 생산성 경쟁에 집중했던 한국 메모리 업계는 달라진 ‘게임의 법칙’을 만나게 됐다. 미세공정 기술뿐만 아니라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의 협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성공의 열쇠가 된 것이다. 조선비즈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을 비교 분석하고 향후 시장 판도를 전망해본다.[편집자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삼성전자 천안캠퍼스와 온양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 경쟁력 및 R&D 역량과 중장기 사업 전략 등을 점검했다./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시장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거죠.”

2019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9 기업인의 대화’를 마친 뒤 반도체 경기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옆에서 이를 들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삼성이 이런 소리하는 게 제일 무섭다”라고 했다. 이 회장이 말한 ‘진짜 실력’은 1990년대 이후 세계 D램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전자의 저력을 함축한다.

실제 삼성전자는 2010년대까지만 해도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에 비해 D램 기술력이 최소 1~2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술력뿐만 아니라 생산성 관리, 원가절감 기술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황 악화에 경쟁사들이 적자를 낼 때 유일하게 흑자를 내곤 했다.

이처럼 파죽지세를 이어가던 삼성전자 D램 사업의 위세는 2020년대 들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10나노미터(㎚·10억분의 1m)대에 진입한 D램 미세공정 난도가 높아지면서 기존 불화아르곤(ArF) 노광 장비를 개량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온 미세공정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에 삼성의 미세공정 전환 속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렸고, 작년을 기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기술력이 사실상 동일 선상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세공정 전환이 한계에 도달한 현시점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래 기술 경쟁력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가를 전망이다. 기존 장비의 기술적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각광받는 EUV 장비 확보는 그룹 총수가 직접 챙기는 중대 사안이 됐다. 지난해 말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을 직접 찾아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UV는 극자외선을 활용해 칩에 초미세 회로를 새기는 데 사용되는 차세대 반도체 생산장비로, 최첨단 D램의 핵심 설비다.

◇ 삼성 독식 구도에서 SK하이닉스·마이크론 가세한 ‘3파전’ 양상

삼성전자는 지난 1992년 12월 처음으로 세계 D램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념비적 업적을 세웠다. 이후 줄곧 세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실제 삼성전자 반도체 인력 중 최정예 인력은 모두 D램에 집중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의 메모리 신화가 D램에서 시작됐다는 뿌리 깊은 인식 때문이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고위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천재 엔지니어들은 모두 D램 개발팀에 가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고, D램 개발과 설계를 이끄는 팀장들은 천재 중에서도 천재만 앉힌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삼성전자가 세계 D램 시장에서 1위를 수성해 온 비결은 독보적인 미세공정 기술력이다. D램의 미세공정이 중요한 이유는 제품 성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D램은 회로 선폭이 좁아질수록 집적도가 올라가 그만큼 성능과 전력 효율이 향상된다. 전자기기의 반응속도는 빨라지고 배터리는 덜 소모한다는 의미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하나에서 찍어낼 수 있는 반도체 양이 많아지면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D램 미세공정은 과거 30나노, 20나노에서 10나노대로 진화하며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해 왔다. 10나노급 D램은 1세대(1x)-2세대(1y)-3세대(1z)-4세대(1a)-5세대(1b) 순으로 양산되고 있다. 10나노급 1세대인 1x 공정에서 삼성전자는 2016년 1분기 업계 최초로 본격 양산을 선언했고,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뒤에야 생산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0나노급 1~3세대 공정에서 늘 ‘업계 최초 양산’ 타이틀을 차지했다.

하지만 2021년 1월 마이크론이 10나노급 4세대인 1a D램을 먼저 양산하면서 이 같은 판도에 변화가 생겼다. 10나노급 4세대 개발 공정에서 EUV를 새롭게 도입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달리 마이크론은 기존 노광장비로 여러 번 미세 회로를 그려 넣는 ‘멀티 패터닝’ 기술을 사용, 더 빠르게 미세공정으로 전환했다. 이 경우 기존 방식을 완전히 바꿀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회로를 여러 번 덧그려야 하는 만큼 공정 스텝 수가 늘고 생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삼성전자가 10나노급 4세대를 기점으로 미세공정 전환 속도가 느려진 건 연구개발 조직의 관료화와 EUV 공정 전환에 따른 시행착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미세공정이 10나노급에 진입하면서 칩 설계와 생산의 복잡도가 가중된 가운데 경영진이 차세대 기술 확보에 안일했던 측면이 있다”며 “특히 EUV 장비를 D램 생산에 최적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올해 D램 승부처인 10나노급 5세대(1b)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양산에 돌입했다. 회로 선폭이 12나노에 불과한 5세대 공정은 최신 HBM(고대역폭메모리)인 HBM3E에도 쓰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공정 로드맵과 글로벌 투자은행 UBS의 자료를 종합하면 3사는 10나노급 5세대 D램 양산 물량을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대폭 확대할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에서도 지난해 1분기 20%포인트(P) 가까이 벌어졌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격차는 꾸준히 좁혀지고 있다. 지난해 3분기에는 SK하이닉스가 시장 점유율 34.4%를 차지하며 삼성전자를 3%포인트 차이까지 맹추격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펼치며 다시 점유율 격차를 14%포인트로 벌렸다. 하지만 올해 1분기 들어서는 다시 점유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손민균

◇ “삼성, D램 기술력 우위는 여전… EUV 활용 능력이 미래 승패 가른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세 기업 간 D램 기술 경쟁의 ‘본게임’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다루기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 EUV 장비를 D램 공정에 안정적으로 적용해 성능,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다. EUV 노광장비는 10나노대 초반으로 회로 폭이 좁아지는 5세대(1b) 이후 D램 생산에 필수로 투입되고 있다. EUV 장비를 D램 공정에 적용하면, 기존 장비 프로세스에서 복잡해진 생산 단계를 줄이고 효율화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의 방향성으로 D램의 선단공정 전환을 제시했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HBM과 고용량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수요가 덩달아 증가하면서, 선단 D램의 생산량을 늘리는 게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체 D램 생산량 중 1b D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3%, 11%로 예상된다.

지난 2021년 업계 최초로 EUV 노광장비를 D램 생산공정에 적용한 삼성전자는 이미 수년간 수조원대를 들여 최소 30여대의 EUV 장비를 생산 공정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쟁사보다 먼저 EUV 노광기를 D램에 활용하며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올해부터 선단 공정 전환에 보다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 역시 이천 공장에 6~7대의 EUV 장비를 들여놓으며 D램 양산을 안정화하고 있는 단계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말까지 10나노 4세대와 5세대의 생산 비중을 전체 D램 생산량의 절반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설비투자 규모는 제한적으로 유지하면서도 높은 수요가 전망되는 DDR5와 HBM3E(5세대)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확대를 위해 선단 공정 전환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SK하이닉스가 일반 D램 제품군에서 삼성전자를 오랜 시간에 걸쳐 바짝 추격해 온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D램 사업 분야에서 1위를 지키며 축적해 온 삼성전자의 노하우와 기술 경쟁력을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향후 D램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D램 양산에 도입된 EUV 공정이 좌우할 것으로 본다”며 “D램 회로 설계와 구조가 복잡해지고 공정도 미세화되고 있기에 EUV 공정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EUV 노광장비를 빠르게 도입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D램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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