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급발진 단서 놓칠까 신발 바닥까지 확인… “설계자도 조작 못하는 EDR, 신뢰성 높다”

조연우 기자 2024. 3.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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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급발진 의심 차량 분석 현장 가보니
센서 데이터 담은 EDR 분석이 핵심
급발진 의심 운전자, 페달 혼동하거나 양발 운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 전경. /조연우 기자

지난 21일 오전 10시 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 오전부터 교통과 연구원들은 사고로 망가진 차량 감정 작업에 열중했다. 13년째 교통과에서 근무한 김종혁 국과수 법공학부 교통과 차량안전실장은 카메라를 들고 사고 차량 외·내부를 촬영했다. 작은 단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신발 바닥에 있는 가속페달 문양 여부를 확인할 정도로 치밀하고 꼼꼼했다.

김 실장은 “30일 내로 사고에 대한 분석, 진단, 검사, 재현, 시뮬레이션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급발진은 제동력 상실을 동반하는 만큼 제동 장치에 결함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한 뒤 차량 실내 변속레버와 주차브레이크 레버, 가속페달과 제동페달 작동 등 차량 상태를 확인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서시장 앞 도로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차량. 사고로 승용차 7대와 오토바이 1대가 추돌했다. 국과수에서 급발진 사고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사고기록장치를 토대로 분석, 진단, 검사, 재현, 시뮬레이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조연우 기자

김 실장이 들여다본 차량은 지난 2월 29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 도로에서 갑자기 돌진해 승용차 7대와 오토바이 1대가 추돌하는 사고의 현장에서 확보한 급발진 의심 차량이다. 차량의 전면은 깡통처럼 찌그러져 있었고, 전면 유리는 사고 당시 충돌을 짐작할 수 있듯 완전히 깨져 있었다. 실내에는 사고로 터진 에어백과 곳곳에 혈흔 자국이 있었다. 당시 이 사고로 사상자 14명이 발생했다.

◇해마다 늘어나는 급발진 의심 차량…사고 상황 재현해 원인 파악

현재 김 실장을 포함해 전국 국과수에서 급발진 의심 차량을 살펴보는 인력은 총 22명이다. 국과수 본원이 10명으로 가장 많고, 서울 3명, 대전과 광주, 대구, 부산 각 2명, 제주 1명 등이다.

급발진 의심 차량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급발진은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동차가 정지 또는 낮은 속도에서 고출력의 가속도가 붙는 것이다. 국과수 감정정보관리시스템(NFI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 건수는 국과수 본원과 지방연구소 포함해 총 11건이다. 최근 5년 동안 추이를 보면 2019년 58건을 시작으로, 2020년(57건), 2021년(56건)까지 꾸준히 발생하다가, 2022년(76건)이다.

국과수 교통과는 급발진 의심 사고, 교통 보험사기, 뺑소니 등을 차량 흔적을 분석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사고 당시 상황을 완벽히 재현해 사고 원인과 사실을 밝혀낸다. 감정 업무를 위해 차량 결함·성능을 검사하고, 차량 블랙박스 영상, 폐쇄회로(CC)TV, 사고기록장치(EDR) 등 데이터를 활용해 교통사고를 해석한 뒤 고의성, 위정 여부 등 교통 범죄를 분석한다.

지난 20일 국과수에서 감정서 작성을 마친 80대 노부부 급발진 의심 차량. 차량 앞 범퍼는 찌그러지고 방향지시등은 망가져 있다. /조연우 기자

급발진 의심 사고 관련해 검사의 핵심은 차량에 장착된 EDR이다. EDR에는 각종 센서로부터 측정한 데이터를 담고 있다. EDR을 통해 차량 충돌 전 5초와 충돌 후 0.3초 동안 기록을 분석한다. 국과수는 차량에서 직접 추출한 EDR 분석으로 자동차 속도, 엔진 회전수, 가속페달 변위량, 제동 페달 작동 여부, 자동차 안정성 제어장치 작동 여부 등을 확인한다.

최근 80대 노부부가 급발진 의심 차량에 탑승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80대 운전자 A씨와 그의 아내가 조수석에 탑승했는데, 차가 과속하다가 그대로 아파트 주차장 단지 내에서 큰 충돌이 있었다. A씨의 사고 차량을 확인해 본 김 실장은 “CCTV 영상에 제동등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로 과속하다가 전방에 차량이 있으니까 좌주행하면서 피했고, 결국 아파트 경계벽에 충돌했다”며 “급발진 사고로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국과수, 급발진 인정 사례 ‘전무’…EDR 데이터 신뢰성 검증 2년간 진행

현재까지 국과수가 인정한 급발진 사례는 0건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국과수의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국과수 관계자는 “각 차량 에어백이 전개된 사고의 데이터는 덮어쓰기가 불가능한 비휘발성 메모리 롬(ROM)에 저장되는데, 이때 기록된 데이터는 삭제나 조작할 수 없게 돼 있다”며 “설계자가 와도 지우지 못하는 기록인 데다 EDR 데이터에 대한 신뢰성 검증 연구도 2년에 걸쳐 진행을 한 바 있다”고 했다.

국과수는 EDR 데이터를 추출한 뒤 데이터를 분석하고도 추가로 신뢰성을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EDR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블랙박스 속도 분석 ▲블랙박스 음향 분석(엔진 회전수 및 속도) ▲CCTV 영상(제동등 점등 상태) ▲차량 손상 상태와 주충격력 작용방향(PDOF) 일치 여부 ▲에어백과 안전띠 전개 일치 여부 ▲EDR 데이터 활용 사고재현 시뮬레이션 ▲에어백 제어장치(ACU) 스와프 등을 추가로 실시한다.

지난 21일 국과수 교통과에서 급발진 의심 차량에서 발견된 신발 바닥과 페달 문양을 비교해가면서 사고 직전에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는지 여부를 확인한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조연우 기자

국내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급발진 의심 사고 운전자는 가속페달과 제동페달을 혼동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고 운전자 대부분은 고령이거나, 운전 미숙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운전자의 운전 습관 영향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한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운전자 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60명가량이 “양발 운전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운전자 10명 중 2명이 양발 운전을 하는 셈이다. 양발 운전은 긴급한 상황 발생 시 페달을 혼동할 가능성이 크다.

국과수 관계자는 “의도치 않은 1차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인지 오류’로 브레이크가 아니라 가속페달을 사용하기도 한다”며 “렌터카나 전기차 등 익숙하지 않은 차량을 운전할 때 페달을 혼동해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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