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냄비 속 개구리의 잘못된 진실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2024. 3. 2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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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개구락지(개구리)의 생리, 생태 등 그 속살을 본다. '개구리도 옴쳐야(움츠려야) 멀리 뛴다'는 말은 아주 바빠도 마땅히 일을 준비하고 주선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개구리 낯짝(대가리)에 찬물 붓기(끼얹기)'란 어떤 자극을 줘도 조금도 먹혀들지 아니함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형편이 나아진 사람이 어렵던 지난날을 잊고 잘난 체함을, '성균관 개구리'란 자나 깨나 글만 읽는 사람을 빗댄 말이다. 또 견식이 좁아 저만 잘난 줄 알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을 '우물 안 개구리(정저지와, 井底之蛙) 같다'고 한다. 논틀밭틀을 맨발로 쏘다니다 보면 참개구리(논개구리)가 나를 천적인 줄 알고 발등에 오줌을 찍 깔기고 내뺀다. 옛날 시골에서는 참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먹어 단백질과 칼슘을 보충했다.

개구리는 물과 뭍을 들락거리며 산다고 양서류(兩棲類, amphibian) 또는 '물뭍동물'이라고 부른다. 양서류는 꼬리가 있는 유미류(有尾類)인 도롱뇽 무리와 꼬리가 없는 무미류(無尾類)인 개구리 무리로 나뉘며 우리나라에는 17종의 양서류가 살고 있다. 양서류는 자외선에 매우 약해 많은 양서류가 멸종했다.

양서류는 앞다리에 발가락이 4개, 뒷다리에 5개가 있고 보통 참개구리(frog)는 뒷다리의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web)가 있으나 나무에서 주로 사는 청개구리(tree frog)는 물갈퀴 대신 발가락 끝에 둥근 주걱 모양의 빨판(pad)이 있어 나뭇잎이나 유리벽에도 착착 달라붙는다.

건장하고 멋진(잘난) 상대와 짝짓기하려고 온 사방에서 씨내리(♂)들이 한껏 목청을 드높여 아등바등 소리를 내지른다. "나 이렇게 건강하고 잘 생겼으며 빼어난 유전자를 가졌다. 씨받이(♀)들아, 나를 배필로 골라달라"며 개구리 수놈들이 사무친 사랑 노래를 부른다. 또한 개구리도 다른 동물처럼 ♀('비너스의 거울'을 상징함)는 음치로 소리를 못 내고 ♂('군신의 창'을 상징함)가 울음주머니를 부풀렸다 오그렸다 하면서 와글거린다. 또 한 놈이 무논에서 "개골개골" 소리를 지르자 넓은 무논의 온 수놈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고 또 어느 순간 딱! 그친다. 좀 쉬었다가 다시 고래고래 외친다. 이렇게 사방에서 와글거리니 포식자(捕食者)가 잡아먹을 놈을 조준(照準)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수컷들의 합창은 암컷을 부를 뿐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작전이기도 하다. 저기에 한 마리의 암놈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여러 마리의 수놈이 뒤엉켜 바동거리고 있다. 암놈이 알을 낳자마자 수놈들이 거기다 사정(射精)하니 전형적인 체외수정이다.

드디어 올챙이가 떼를 지어 흙탕을 치면서 논다. 이 집 올챙이와 옆집 것을 뒤섞어서 놓았더니 유전인자가 같은 피붙이끼리 서로 모인다. 이런 것을 친족인지(親族認知, kinship)라 하며 근친교배를 피하려고 그런다.

'프로기즘'(frogism)이란 늙을수록 사람의 온기나 정이 그리워 어울리려고 하는 원초적 본능을 이른다. 그리고 새끼올챙이는 아가미와 꼬리가 있고 초식성이라 긴긴 창자가 돌돌 말렸다! 그러나 탈바꿈한 개구리는 허파가 생기고(축축한 살갗에서 주로 피부호흡을 함), 꼬리가 사라지며 육식성으로 바뀐다. 또 잠자리 유충인 학배기가 올챙이를 먹지만 개구리는 잠자리를 먹어서 먹고 먹힘이 역전되고 만다. 개구리는 반드시 살아 있는 벌레만 먹는다.

그리고 염상섭의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해부한 개구리에서 김이 무럭무럭 난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개구리는 변온동물이라 개구리 몸에선 김이 나지 않는다.

또 '냄비 속 개구리'란 개구리를 찬물에서 천천히 데우면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마침내 죽게 된다는 것인데 천천히 일어나는 변화는 잘 느끼지 못함을 이른다. 그러나 이는 19세기의 실험들이 잘못 전해진 것이란다. 끓는 물에 데어 죽을 개구리가 아니다.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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