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시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한국 문학 쾌거”

김진형 2024. 3. 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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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발간 ‘날개 환상통’ 선정
한국 작가 사상 최초 수상 기록
“놀랍도록 독창적이고 대담해”
원주·춘천서 문학 활동 시작
페미니즘 시학 선구자로 평가

“사실은 겨드랑이가 푸드덕거려 걷습니다/커다란 날개가 부끄러워 걷습니다/세 든 집이 몸보다 작아서 걷습니다/비가 오면 내 젖은 두 손이 무한대 무한대”(김혜순 시 ‘날개 환상통’ 중)

원주여고를 졸업하고 춘천 등에서 활동한 김혜순 시인이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미국의 저명한 출판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을 수상, 전세계 문단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이며 1975년 상 제정 이후 ‘번역시집’의 수상도 처음이다.

▲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 번역시집 첫 수상작 주목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는 최근 뉴욕에서 자서전·전기·비평·소설·논픽션·시 등 6개 부문에 걸쳐 ‘2023년 최고의 책 수상자’를 발표했다. 시 부문에서는 유일하게 번역시집으로 최종 후보에 오른 김혜순 시인의 ‘날개 환상통(Phantom Pain Wings)’이 선정됐다.

‘날개 환상통’은 김 시인이 등단 40주년인 2019년 발간된 그의 13번째 시집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최돈미 시인이 영어로 번역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말 선정한 ‘올해 최고의 시집 5권’에도 포함됐었다. 협회는 이 시집에 대해 “놀랍도록 독창적이고 대담하게, 전쟁과 독재의 여파, 가부장제 사회의 억압,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삶의 고통, 이를 극복하는 의식을 대안적 상상의 세계로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지난 21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열린 시상식에서는 미국 출판사 뉴디렉션 퍼블리싱의 시집 담당 에디터 제프리 양이 “젠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이렇게 또 하나의 아시아 여성을 선택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 시집은 최돈미 시인과 함께 썼기에 그와 함께 받는 것”이라는 소감을 대독했다.

김 시인은 지난 해 7월 하버드대 도서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T. S. 엘리엇 메모리얼 리더’로 선정돼 낭송회를 갖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시집을 번역한 최돈미 시인은 비무장지대(DMZ) 소재의 시집 ‘DMZ 콜로니’로 전미도서상을 받았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각인시킨 쾌거”라며 “수상을 계기로 전 세계 독자들이 김혜순 작가의 환상적인 시 세계에 매료되고, 한국 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김 시인에게 축전을 보냈다. 수상 이후 주요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23일 알라딘 ‘시·소설·희곡’ 부문 2위에 오르는 등 호응 속에 출판사 측이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 강원에서 시작한 ‘시’의 길

강원여성문학인회를 창립한 이영춘 시인은 2002년 원주여고 교장 재임 시절 김혜순 시인과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마련, 그 내용을 교지 ‘진달래’에 수록했다. 이영춘 시인은 당시 졸업생들에게 김 시인의 시집을 선물 했다.

김혜순 시인은 해당 인터뷰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원주여고를 다닐 때가 아닌가 한다. 아무도 몰래 시노트를 가지고 있었고 세상의 모든 별처럼 많은 작가들의 현란하고 깊은 사유가 나를 문학의 세계로 끌고 갔다”고 밝혔다. 이어 “학창 시절은 잠이 많은 지각 대장이었고, 왕 내숭이어서 누구에게도 시를 쓰고 읽었다는 말을 안했다. 수학 시간과 교련 시간은 지옥이었고, 국어시간과 국사 시간은 눈이 초롱초롱했다. 한 마디로 말해 혼자 뜬구름을 잡고 있었다”고 했다.

김 시인은 미래파와 페미니즘 시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가족주의 등 억압에 갇힌 여성성을 탐구하는 방법을 시로 제시해 왔으며, ‘여성시’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다. 한국여성의 몸으로 직접 느낀 고통, 타자들의 이야기, 역사적 사건 등을 내면화한 후 새로운 상상력 위에 글을 써내려 갔다. 특히 이번 수상은 여성, 아시아인, 시인 등 문단 내 비주류적 정체성이 북미 문학과 공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는 강원 최초의 여성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강원대 재학시절 지역 문인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1955년 당시 강원 울진(현 경북) 출생으로 원주여고를 졸업하고 강원대를 다니다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로 옮겨 졸업했다.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돼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9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어느 별의 지옥’,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등과 시론집 ‘여성, 시하다’’ 등을 펴냈다.

2019년 ‘죽음의 자서전’으로 그리핀 시문학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스웨덴 시카다상 등 굵직한 상을 다수 받았다. 2013년 강원도민일보 김유정 신인문학상 시 부문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서울예대 명예교수로 활동중이다. 김여진·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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