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박물관의 일그러진 자화상 [세계의 창]

한겨레 2024. 3. 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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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눈처럼 현재 여의도 국회는 매우 조용하다.

이런 기회에 필자는 몇년 전 여름학교 일환으로 독일 학생들을 데리고 간 국회박물관이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할 겸 다시 한번 방문했다.

2년 전에 국회박물관이 새로 개관했을 때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은 "민주주의를 꽃피운 자랑스러운 성취는 물론 어두웠던 국회의 발자국도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야 대한민국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국회박물관은 이 개악을 "혁신"으로 포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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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4·10 총선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폭풍의 눈처럼 현재 여의도 국회는 매우 조용하다. 피리 부는 사나이들이 이번에도 유권자들을 유인하러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에 필자는 몇년 전 여름학교 일환으로 독일 학생들을 데리고 간 국회박물관이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할 겸 다시 한번 방문했다. 2년 전에 국회박물관이 새로 개관했을 때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은 “민주주의를 꽃피운 자랑스러운 성취는 물론 어두웠던 국회의 발자국도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야 대한민국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박물관 단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막상 가보니 전시는 역시 훨씬 더 풍부하고 깔끔해졌고, 국회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더 자세히 조명한 덕에 국회라는 장에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았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회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특히 최근 끊이지 않은 탈민주적 편법 사건에 관한 한 과거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의 접근은 의도된(?) 만큼 실천되지 않고 있다. 국회 개혁의 구체적인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마지막 전시실에 있는 두 사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는 2004년에 개정된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에 관한 설명에서 “지구당을 폐지하고 후원회의 집회에 의한 금품 모집을 금지하는 등 저효율의 정당구조와 고비용 선거구조를 혁신했다”는 해설이 적혀 있다. 물론 수십년 동안 정당의 지역구 단위의 부패 문제가 심했었고 지구당이 핵심적인 범죄 온상이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구당 자체가 아니라 지구당 조직이 운영되는 방식이 결정적인 문제였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로는 2004년 지구당의 무조건적인 폐지는 소위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앞세워 결국 교각살우와 같이 건전한 정당정치에 필수적인 당내 민주주의의 기반을 오히려 더욱 침식시킨 사건이다. 그런데도 국회박물관은 이 개악을 “혁신”으로 포장한 셈이다.

다른 사례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 (…)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국회의원 의석수가 해당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 득표 비율과 연동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라는 2019년 선거법 개정에 관한 설명이다. 우선,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비례대표제 도입을 아예 보이콧한 사실과, 민주당은 법안 표결 직전에 자기들이 추진한 개혁안을 스스로 대폭 약화시킨 것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울러, 이 문구로는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국회 의석의 10%에 불과한 최소한의 비중으로 제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또 개혁의 핵심인 ‘연동’을 우회하는 꼼수 차단장치를 개정법에 두지 못한 결정적 과오는 물론 뒤늦게라도 이를 방지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은 무책임에 대한 설명도 없다. 또한,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을 수월하게 하고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개혁의 원래 핵심 목표를 도외시한 채, 거대 정당들이 위성정당을 운영했다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언급도 생략됐다.

지구당 폐지는 결국 정당의 보스와 그를 추종하는 내부 특정 세력의 카르텔만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비상식적이며 반민주적인 후보자를 공천해 벌어진 공천 파동과 무관하지 않다. 또 국회 내 거대 양당 독점은 더욱 강화되어 오히려 비례의석 1석을 더 줄인 2024년 선거법 셀프 개정을 아무도 막을 수 없게 했다. 국회 내 담합세력들이 역사적 과오로 거듭 민주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는데, 민주시민 교육을 맡고 있는 국회박물관조차 이 어두운 면들을 은폐하는 듯하니 대한민국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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