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전기, 비트코인 대신 옥수수에"

한재범 기자(jbhan@mk.co.kr),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2024. 3. 24. 17: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애그플레이션에 전세계 비상
비트코인 채굴 1위 아이슬란드
"귀중한 에너지 농업에 재배치"
日, 카카오 등 식품원재료 상승
67개 제품 가격 26일부터 인상

농산물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하는 '애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상 기후에 따른 기상 이변 등의 영향으로 곡물 가격이 치솟자 자국 농산물 자급도를 높이는 한편, 가격 폭등을 억제하기 위해 농산물 수출을 전면 제한하는 등 식량 안보를 두고 세계 각국이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정부는 식량 안보를 위해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전력을 최근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옥수수 등 농업 분야로 재배치할 것이란 방침을 밝혔다.

아이슬란드는 그간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자들의 피난처로 자리매김해왔다. 수력발전과 지열발전을 통해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한 전력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는 인구밀도 기준 비트코인 채굴 1위로 알려져 있으며, 아이슬란드 내 수십 개의 비트코인 그룹이 소비하는 전력량은 120㎿로 아이슬란드 가구 전체의 전력 소비량보다 많다.

이 같은 비트코인 채굴 붐에 아이슬란드 정부가 적극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아이슬란드 내 친환경 전력이 대부분 비트코인 채굴에 쓰이게 되자 정작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농업 생산에 사용될 전력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겨울 아이슬란드의 식료품 공장들은 친환경 전력 부족으로 에너지 수요를 석유와 디젤 발전기에 의존해야만 했다고 FT는 전했다.

그뷔들뢰이귀르 소르 소르다르손 아이슬란드 환경부 장관은 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귀중한 에너지는 데이터센터에서 기타 산업(농업)으로 재배치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이슬란드 정부의 이 같은 기조는 최근 유럽 내 식량 안보를 둘러싼 우려가 고조된 가운데 나온 것이다. 최근 이상 기후와 공급망 차질 등 겹악재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자 농산물 수입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자성이 아이슬란드 내부에서 나오던 차였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는 "전 세계적으로 고립주의 경향이 커지고 있다"면서 "아이슬란드는 수입 옥수수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공급망 차질에 따른 리스크를 고려했을 때 옥수수를 직접 재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현재 곡물의 1%, 채소의 43%만 자국 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또한 아이슬란드 국토 중 5분의 1 정도만 농업 생산에 사용되고 있다.

애그플레이션 위기는 아시아 국가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이 대표적이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초콜릿 과자, 레토르트 카레 등 67개 품목 제품 가격이 26일부터 순차적으로 인상된다고 보도했다. 일본 식품 회사 메이지는 초콜릿 과자 제품 가격을 오는 6월 1일부터 최대 33% 인상할 예정이다. 초콜릿 제품의 가격이 인상되는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두 번째다.

메이지는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 원두 가격이 급등해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주요 생산국인 코트디부아르·가나 등에서 이상 기후로 생산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국제가격의 지표가 되는 런던 선물시장에서 카카오 가격은 이달 중순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까이 오른 t당 6000파운드대를 기록했다. 이 같은 원가 상승에 따른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과자 외에 일본 내 올리브유 가격도 뛰고 있다. 주산지인 스페인 등에서 가뭄이 계속되면서 수입물가가 오르고 있어서다. 닛케이에 따르면 식용유 업체들은 오는 5월부터 업소용 식용유 가격을 최대 80% 올릴 계획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애그플레이션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원인은 폭염, 가뭄, 산불 등 이상 기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잦은 기상 이변 등으로 주요 농업 생산국들의 농업 산출량이 감소했고, 이는 국제 곡물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농업 생산국인 인도는 기상 이변으로 양파 수확량이 급감해 수출 제한을 무기한 연기했다. 23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향후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양파 수출 금지 조치를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인도는 지난해 12월 국내 양파 가격이 치솟자 가격 안정화를 위해 이달 31일까지 수출을 금지했다. 작년 여름 강수량이 120여 년 만에 최소치를 기록하는 등 이상 기후로 양파 수확량이 급감해서다.

인도의 수출 규제가 이어지면서 방글라데시나, 아랍에미리트(UAE) 등 인도 양파에 의존하던 국가들에서도 수급 차질에 따른 가격 인상 사태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서남아시아에서는 양파가 주식에 필수 재료로 들어가는 만큼 타격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한재범 기자 / 도쿄 이승훈 특파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