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칼럼] `의료대란` 부른 복지부의 막무가내식 개혁

강현철 2024. 3. 2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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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신문총괄 에디터

주역 64괘 중 49번째인 혁괘(革卦)는 변혁의 도(道)를 논하고 있다. 연못(택·澤) 속에 불(화·火)이 있는 형상이다. 주역은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개혁이 성공하려면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려 적절한 시점에,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정도를 지켜야 한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개혁에 대한 여론이 높더라도 거듭 검토하고, 실행할 때도 세밀한 곳까지 치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정부의 '의료개혁'은 낙제점이다.

의대 정원 확충을 둘러싼 의정 간 갈등이 의료시스템을 위협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전광석화식으로 2000명 증원분에 대한 대학별 인원배정까지 끝마쳤지만, 의사들은 수용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갈등을 지켜보면서 가장 의문이 드는 건 왜 꼭 2000명이어야 하나라는 점이다. 정부야 의사탓을 하겠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을 악화시킨 건 보건복지부의 초강경 일변도 무능한 정책 추진이 한 요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복지부의 가장 큰 잘못은 정책의 본말과 선후를 바꿨다는 사실이다. 증원이 핵심이 되면서 필수·지역의료 문제는 '2000명 증원'에 모두 휩쓸려갔다. 복지부는 2000명 증원 결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후 변경은 없다면서, 사실상 의사들과의 협상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장·차관은 연일 "의사 갑질 신고하면 30억" 등 저급한 막말로 의사들을 겁박했다. 의대 교수들이 정부가 대화의 장을 만들면 사직을 철회할 수 있다고 하고, 의료계 석학단체인 의학한림원조차 "증원 근거의 편향된 선택, 졸속 교육현장 조사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지만 복지부는 2000명 증원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일본 미국과 비슷하며, 의대 정원은 동결됐지만 매년 30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정년 후에도 일하는 의사들이 늘면서 의사 수 증가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높다는 의사들의 주장은 배제됐다. 전국 40개 의대 학장들이 교육여건상 수용 가능한 증원 규모는 350명이라고 밝혔는데도 2000명을 밀어붙였다.

대학별 정원이 배정 기준조차 발표되지 않은 채 '깜깜이' 확정된 후에도 세종시 공무원들이 많은 충청도에 혜택을 몰아줬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복지부가 진짜 의료개혁을 하려했다면 수가 조정,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완화 등 필수·지역의료 강화 조치 방안을 먼저 내놓은 후 의대 정원을 논의했어야 했다.

복지부는 또 의사들을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집단으로 매도, 국민들과 갈라치기 했다. 의사들은 존경받는 선생님에서 하루아침에 '의새'들로 추락, 명예를 잃었다. 병원을 떠난 1만여명의 전공의들은 싱가포르 등의 의사자격시험을 알아보고 있다. 대형 병원들은 환자가 급감, 적자가 하루 수십억원씩 쌓여가는 중이다. 의대 교수들은 제자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며 사직서를 쓰고 있으며, 동네 개원의들도 동참할 움직임이다.

사직 전공의 처벌이 법적으로 정당한지, 고등교육법이 최소 입시 1년10개월 전에 대입 정원을 발표하도록 하고 있는데도 8개월 앞두고 의대 정원을 늘린 게 맞는 건지 수많은 법적 분쟁 또한 예고되고 있다.

대형 병원들이 문을 닫고, 실력있는 의사들은 떠나고, 필수의료 문제는 더 심화되며, 의사들을 길러내는 도제 시스템은 파괴되고, 건강보험료 부담은 늘어나게 될 것인데, 2000명 증원이 이 모든 댓가를 감내할 만큼 의미있는 일인 것일까? 정부가 일본처럼 단계적 증원 방식을 택했더라면 이런 상황까진 오진 않았을 것이다.

복지부의 막무가내식 정책은 윤 정부에 '비민주적이며 불통·오만한 정부'라는 이미지마저 덧씌우고 있다. 의사들은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탈원전을 밀어붙인 문재인 정권의 정책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있다.

"제 가슴에 품은 한조각 붉은 마음과 같은 꿈은 이제 헛된 것이 됐다." 지역의료에 한 평생 몸담았던 충북대 의과대 심장내과 배장환 교수가 사직하면서 남긴 글이다. 주역과 시경에선 나라의 대권을 장악하고 만민 위에 있는 것은 '호랑이 뒤를 따라가는 것 같고(리호미·履虎尾), 얇은 얼음을 밟는 것과 같다'(여리박빙·如履薄氷)고 했다. 지도자라면 늘 삼가고, 두려워해야한다는 뜻이다. 신문총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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