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잃고 10년…5천개 영상으로 담담히 담은 ‘바람의 세월’

김가윤 기자 2024. 3. 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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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 문종택 감독과 김환태 감독이 지난 19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티브이(TV) 방송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기억하고 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16티브이(TV)’였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11시30분 수원역 앞. 단원고 2학년1반 고 문지성의 아버지 문종택(62) 감독은 여느 날처럼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카메라를 쥐고 있었다. 카메라가 비춘 곳에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에 참여한 가족과 시민들이 서 있었다. 평범한 아버지였던 문 감독은 참사 이후 카메라를 들었다. 당사자이면서 관찰자가 되어 세월호 가족이 있는 거의 모든 현장을 ‘촛불’처럼 비췄다.

10년이 흘렀다. 3654일 동안 문 감독이 촬영한 영상은 5천여개에 이른다. 문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 김환태 감독이 이를 추리고 이어 붙여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을 만들었다. 한겨레는 지난 13일과 19일, 경기 수원 촬영 현장과 안산 416티브이 방송실에서 모진 바람의 세월을 기록하고 정리한 두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쪽잠 자고 영상 돌려보며…“10년을 그렇게 산 거죠”

운전, 촬영, 편집, 진행까지 촬영 현장을 혼자 책임지는 문 감독은 이날 수원역 앞에서도 분주했다. 동선을 짜고, 녹화용 카메라를 설치했다. 한 손에는 휴대용 캠코더를 들었다. 휴대전화로는 라이브 방송을 켰다. “많이 함께 해주고 계십니다. 반갑고, 애틋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한데 뭉쳐있습니다.” 어느새 오십견이 생겨 움직임이 불편한 왼팔을 부여잡고 문 감독은 카메라를 바삐 움직였다. “내 일이니까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요즘은 좀 힘에 부쳐요.”

곁에 있던 문 감독의 아내 안명미(61)씨가 남편을 걱정했다. “(참사 이전) 직장생활을 할 때도 할 일이 있으면 마스터할 때까지 집에 안 들어오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이건 마스터가 안 되는 일이니. 10년을 그렇게 산 거죠.” 문 감독은 지난 10년간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날도 촬영을 마치고 문 감독은 곧장 416티브이 방송실로 가서 영상을 편집했다. 영상을 컴퓨터로 옮기는 것만도 한두 시간, 영상 완성까지 대여섯 시간 걸린다. 아내 안씨의 걱정은 문 감독의 과로만이 아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죠. 우리의 아픈 부분을 계속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쉬는 틈이라 봐야 문감독은 과거 촬영한 영상을 몇번씩 돌려보며 ‘과거의 장면’ 속에 머문다. 그럴 때 누군가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지난 13일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수원행궁 광장에 모인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을 문종택 감독이 촬영하고 있다. 김가윤 기자

문 감독이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건 2014년 8월8일이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에 나선 가족들 앞에서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가 ‘폭식 투쟁’을 하는 등 가족들을 향한 혐오가 난무할 때였다. 문 감독과 416기억저장소의 김종찬 사무국장, 단원고 2학년 5반 고 박성호의 누나 박보나씨는 “우리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해보자”고 모였다. 사진기만 다룰 줄 알았던 그가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세월호 유가족 방송 리포터 찾습니다.” 노란 종이에 글자를 써서 말없이 들고 있었던 그 자신의 모습이 문 감독의 첫 촬영 영상이다. 김 국장, 박씨는 1∼2년을 함께 했다. 그 뒤로는 아내인 안씨가 1년간 도왔다. 문 감독은 10년을 함께 또는 홀로, 세월호 가족들의 기록자 역할을 맡았다.

문 감독은 이날도 기자회견에 나온 가족들의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한 분, 한 분을 담으려고 신경을 많이 씁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현장에 일부러 찾아가기도 해요.” 문 감독의 카메라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 ‘우리도 카메라가 있다’며 든든해 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그의 카메라를 지탱한 힘이었다.

최대한 담담하게 다짐…결국 왈칵 쏟아진 눈물

그렇게 10년 동안 찍은 영상을 정리해 영화 ‘바람의 세월’을 만들기까지 문 감독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견뎌내기 위해 기록했던 영상들이, 혹시나 상업적으로 비칠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이런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3년 초부터 김환태 감독과 5000여개가 넘는 영상을 추리고 정리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0년의 세월을 더듬으며 고통스러운 기억을 곱씹는 과정이었다.

김환태 감독은 ‘당사자’라는 키워드가 영화의 핵심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회의 날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의 아버지 유경근씨가 “제발 진상규명 해주시고, 안전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주시라. 정말 부탁을 드린다”고 울면서 절하는 모습은 문 감독만이 촬영한 영상이었다. 김 감독은 “(촬영 영상을 보면) 어떤 마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해왔는지를 느낄 수 있다”며 “2018년 이후부터는 세월호가 차츰 지워지는 시간이었지만 (문 감독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우직함의 감동을 관객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화면이 양옆으로 흔들리는 장면들이 종종 있다. 김 감독은 이 흔들림이 “당사자가 가진 감정이고,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라고 설명했다.

문종택 감독이 영상 편집 등의 업무를 하는 416티비 방송실. 카메라에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라는 글자가 적힌 노란 리본과 고 문지성양이 그려진 배지가 달려 있다. 김가윤 기자

바람의 세월은 두 감독이 각자 고른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을 이어 붙인 영상으로 시작한다. 김 감독은 벚꽃이 활짝 핀 단원고의 모습을 골랐다. 그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장면이라 가장 아름다웠으면 했다”고 말했다. 문 감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날 가족들이 웃고 울며 환호하는 모습을 넣었다. 그는 “잃어버린 일상의 웃음들이 그날 하루는 다 드러났다. 그제야 ‘사람’이 된 듯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사회적 비극의 희생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 또한 놓치지 않는다.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부모가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 그 심정은 안 (당)해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며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 뒤이어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힘내세요”하고 외친다. 김 감독은 “비극적인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데,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사회에 대해 이제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시기”라고 했다.

문종택 감독이 지난 13일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 수원시민 참여 기자회견이 끝난 뒤 416티브이(TV) 라이브 방송을 마무리하는 모습. 김가윤 기자

‘최대한 담담하게’. 영화를 만들 때 두 감독이 마음을 썼던 부분이다. 하지만 문 감독은 마지막 장면 내레이션을 하며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언젠가 아이들을 만나는 날, 진실을 밝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열심을 다 했노라 말할 수 있기를. 그래서 다시 한 번 그 손을 잡아줄 수 있기를.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바람의 세월은 4월3일 개봉한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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