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은 잘 갈 수 있을까”…이런 걱정도 잠시뿐, 그새 아이는 또 훌쩍 자랍니다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4. 3. 2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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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새로 시작한 것이 있다. 수영이다. 특히 수영은 다른 운동에 비해 큰 결심이 필요한 종목인 것 같다. 일단 준비물이 많다. 수영복과 수영 모자, 수경을 구비해야하고 이들을 담을 가방과 세면도구도 챙겨야한다. 게다가 수영은 실제 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탈의실의 키를 받고 탈의를 한 후 온 몸을 깨끗이 씻고 난 후 수영복을 입어야한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고 남들 앞에 서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겨우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서 수영장에 입장을 하고 나면 얼른 물 속에 들어가서 몸을 좀 가렸으면 좋겠는데, 준비운동이 웬 말이냐. 5분간의 준비운동을 하고 난 후에 초급반 레인을 찾아갔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킥판을 하나씩 들고 발차기를 하고 있다.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쭈뼛쭈뼛 서 있자 그제야 선생님이 나를 쳐다본다. “처음이세요?” “네..”, “아니, 아예 처음배우시냐고요”, “네? 아, 초등학교때 잠깐 배우긴 했는데...”, “그럼 얼른 도세요!” “네?” “빨리, 빨리”

아, 어렸을 때 수영을 배웠다는 말을 도대체 왜 한걸까 후회를 하면서 앞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 발차기를 하며 겨우 한바퀴를 돌고 나니, 갑자기 선생님의 외침이 들린다. “자!이제 킥판 놓고 자유형 한바퀴!” “네???(울상)”

내 차례가 되었지만, 수영 1일차 수린이인 나는 킥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선생님이 눈빛과 손짓으로 말한다. ‘킥판 이리 내!’

울며 겨자먹기로 자유형을 시작했다. 물은 물대로 먹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겨우 한바퀴를 돌았다. 물론 모든 수영 수업이 다 나의 경험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놀랍게도 나보다 일주일 후 들어온 분들은 ‘정말 처음’이어서 유아풀에서 발차기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 분들이 한주만 먼저 나왔으면 나도 저 팀에 껴서 유아풀에서 수영을 배우며 수영 강습 연착륙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고 괜시리 나홀로 원망을 해보기도 했다.

‘워킹맘의 생존 육아’ 연재기에 왜 쌩뚱맞게 수영을 배운 얘기를 늘어놓고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도전은 최근들어 내게는 가장 새로우면서도 낯설고 떨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육아와는 무관해보이는 이 경험이 첫 아이의 입학 과정에서 나에게 생각보다 큰 용기를 주었다.

첫 아이의 첫 입학은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참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내 아이가 저 큰 학교에서, 저 많은 학생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설렘을 앞섰다. 3월 초 적응기간에는 생각보다 너무 짧은 시간만 학교에 머물다 돌아오는 데 살짝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그 시간마저 아이에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우려가 됐다. 오늘 내 아이는 친구를 몇명이나 사귀었을까,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은 똑바로 했을까, 급식은 몇 숟가락이나 먹었을까, 돌봄 교실엔 홀로 찾아갈 수가 있을까, 화장실은 어떻게 갈까, 사소한 것들에 마음이 졸아들었다.

한없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 때 긴장되던 수영 수강 첫날을 떠올렸다. 이른 새벽 일어나 수영장 키를 받는 방법조차 몰라 카운터를 서성이던, 탈의실 락커룸에 들어가 내 번호를 찾아 헤메던, 대 선배님들이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는 모습을 곁눈질 해 가면서 환복을 마치고, 강습레인 앞에서 민망함과 쑥쓰러움에 어쩔 줄 몰랐던 순간들을 말이다. 수영을 끝낸 첫날 녹초가 되어 돌아오면서 다음 수업이 조금은 두려웠더랬다. 하지만 두번째 수업을 가는 날은 적어도 탈의실에 들어가는 길을 헤메지는 않았다.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요령껏 입고 다른 회원들과 같이 줄을 서 킥판을 잡고 수영장을 돌았다. 세번째 가는 날엔 심지어 옷을 넣어두기 편한 위치에 있는 락커 번호를 외워 그 번호의 키를 달라고 요청까지 했다. 배영을 배우며 물을 잔뜩 먹고 켁켁댔더니 선생님은 카리스마 있게 “수영하면서 이정도 물은 먹어도 되죠”하셨다. 조금 더 다니다보니 정말 선생님 말처럼 코에 입에 물이 들어가도 요령껏 숨을 쉬어가며 배영을 하고 있었다.

실제 입학 후 아이가 하루 하루 적응하는 과정을 보니 나의 걱정과는 별개로 아이는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교문 앞에서 헤어지던 첫날에는 교실과 반대쪽으로 갔지만 이튿날이 되자 자기 반을 잘 찾아갔다. 이름 붙이기 같은 쉬운 숙제지만 엄마가 먼저 챙기지 않아도 숙제와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려고 노력한다. 유치원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고 그립다고 잠시 눈물을 짓다가도 오늘은 친구를 두 명 사귀었다고 즐거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분명 두려움이 클 테지만, 온 몸으로 부딪히며 하나씩 깨우쳐가고 있는 나의 딸이 참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적당한 긴장감과 불안감은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하지 않던가. 긍정 심리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마틴 셀리그먼 역시 낙관적인 사고방식이 바탕이 된 긴장감은 목표 달성과 정확한 판단력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막 입학을 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긴장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조금씩 안도하고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학생이 된 아이들도 학부모가 된 부모들도 조금씩 모든 상황이 익숙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우고 부모는 아이들을 믿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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