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쌓는 직업 변호사·기자, 덕 쌓는 직업 의사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3. 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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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변호사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공천 파동을 보면서 변호사나 기자는 공직을 맡기에 위험한 직업이라는 평소 생각을 새삼 다지게 된다.

한국미래변호사회는 지난 22일 성명에서 “변호사 출신 후보가 특정 사건을 수임했다는 이유로 과도한 사회적 비난을 받는 현실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형사사건 피고인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것은 우리 헌법이 천명한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라며 “변호사 윤리 장전은 사건 내용이 비난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가 수임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나쁜 놈’도 변호 받을 수 있어야 법치국가다. 그러려면 기꺼이 나쁜 놈을 변호할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 조수진 후보에 여론이 화가 난 것은 그가 그저 아동 성폭행범을 변호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아동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성폭행당했을 가능성을 증거도 없이 주장했다. 모든 변호사가 이렇게 막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제삼자에게 억지로 혐의를 씌우는 것이 버릇이 된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안 그래도 그런 경향이 있는 우리 국회가 더 무시무시해질 것이다.

조 후보는 그 외에도 다수의 성폭력, 미성년자 추행 사건에서 가해자 측 변호를 맡았다. 말하자면 나쁜 놈 중에서도 ‘지저분한 놈’을 주로 변호했던 모양이다. 이런 일로 돈을 벌면서 밖으로는 민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며 ‘진보·인권변호사’로 행세한 것이 위선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 지적에 나는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조 후보라고 왜 ‘괜찮은(decent) 사건’을 수임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다. 조 후보 정도의 평판과 실력으로는 지저분한 사건밖에 수임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모든 노동은 나름대로 신성하다. 그걸 함부로 욕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민변이 뭐 별것인가. 나는 민변을 ‘변호사 시장의 위계에서 하위그룹에 속하며 그 박탈감을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으로 보상받고 싶어하는 변호사들의 모임’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원래 민변은 조수진 후보 같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는 곳이다. 거기서 무슨 위선을 느낀다면 민변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쁜 놈을 변호하는 일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변호인 스스로는 행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직업적 성취와 도덕적 시민의 가치가 분열하는 직업은 그게 안 좋다. 거기서 유능함을 인정받아 더 많은 사건을 수임하고 그래서 부자가 되고 좀 덜 나쁜 놈들 혹은 선악 경계가 애매한 사건으로 옮겨타는 것, 그게 성공한 변호사의 삶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쌓게 되는 ‘업(業)’, 카르마가 있다. 그 카르마가 인생역전의 순간에 발목을 잡는다. 조수진 변호사처럼.

조수진 후보 낙마로 ‘벼락공천’을 맞게 된 한민수 대변인은 기자 출신이다. 기자도 카르마를 많이 쌓는 직업이다. 한민수 후보는 국민일보 논설위원 시절인 2016년, 서울 송파을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은 최명길 후보를 두고 이렇게 썼다. “최 후보는 당초 대전 유성갑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당내 경선까지 치렀다. 경선에서 지자 당 지도부는 곧바로 그를 송파을에 전략공천했다...하루아침에 날아온 최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 골목 번지수나 알고 있을까?” 비유가 썩 좋지 않다. 요새 누가 자기가 사는 동네 골목의 번지수를 기억한단 말인가. 그리고 소재가 너무 뻔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런 후보가 한둘이라야 기사가 되지...대충 지면 때우려 쓴 기사다.

대충 쓴 기사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긴다. 기자들은 남을 터는데 명수이지만 털기에 기자만큼 만만한 직업도 없다. 인터넷에 그의 모든 생각과 과거와 단견과 철없음, 극단성, 정파적 치우침, 반페미니즘, 친일, 성향으로서의 반(反) 5·18이 시간순으로 뜬다. 기자들은 모두가 ‘조만대장경’을 하나씩 갖고 있다. 어떤 주제로도 털면 털린다.

한민수는 운이 좋다. 선거에 임박해 후보가 바뀌는 바람에 산 같은 하자가 발견된다 한들 공천이 철회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더불어민주당에 강북을은 국민의힘으로 치면 강남갑 같은 곳이다. 바보만 아니면 당선된다. 어떤 사람들은 카르마를 쌓을 만큼 쌓았는데도 운명의 힘으로 그것을 뛰어넘어 버린다. ‘논두렁 정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을 쉽게 비판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공직은 피하는 게 안전하다. 기자는 잘난 거 하나 없는 주제에 온갖 입바른 소리는 다 하는 직업이고 그걸 잘해야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중에 정치할 욕심에 책잡히지 않을 기사만 쓰면 그 기사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기자를 해선 안 된다.

변호사와 기자가 카르마를 쌓는 직업이라면 의사는 덕을 쌓는 직업이다. 지난해 겨드랑이에 종기가 났는데 주변 피부과는 다 피부시술만 해서 종기를 째 줄 곳이 없었다. 인터넷에 물어 오래된 아파트 상가 피부과를 찾아갔더니 60대 의사가 몇 번의 칼질로 완치시켜 주었다. 그 고마움이여. 진료비로 몇천원을 결제하고 나오기가 무안할 만큼 고마웠다. 20년 전에는 다른 곳에 난 종기를 그 분야에서 이름난 병원에서 수술받았다. 20년째 씻은 듯이 살고 있다. 이런걸 인술(仁術)이라고 한다. 이름 모를 그 의사 선생들에게 복이 있기를. 자신의 호구지책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직업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자와 변호사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다. 내 평생 그 종기수술같은 기사를 한 번이라도 쓰고 갔으면, 누구에게도 불쾌감을 주지 않고 세상을 종요롭게 하는 그런 기사를 단 한 번이라도 썼으면...

의대정원 문제와 관련하여 의사들이 싫어할 칼럼을 몇 번 썼고 그때마다 악플세례를 받았다. 아마 이 칼럼에는 ‘지금 의사들을 놀리는 것이냐’는 글이 달릴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직업으로서의 의사를 존경한다(애초 문과형이라 동경해 본적은 없다). 그들의 인술 덕분에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로 50대를 보내고 있다. 직업상의 성취가 타인과 자신의 행복을 순증시키기만 하는 직업은 흔치 않다. 내가 알기로는 의사가 거의 유일하다. 그 위대함을 의사들 스스로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것은 의사들이 부자가 되고, 우리 사회의 귀족이 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일이다. 이제 피기 시작한 벚꽃이 다 지기 전에 의사들이 병원으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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