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경쟁당 텃밭서 ‘숨은 유권자 찾기’ 개간 작업했더니…28년만에 넘어왔다 [노석조의 외설]

워싱턴 D.C./노석조 기자·조지타운 방문연구원 2024. 3. 2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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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주 조지아가 파랗게 물든 이유
바이든 극적 승리에 장기 플랜 있었다
10년간 정치 소외계층 찾아가 투표 독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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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주는 공화당 텃밭으로 분류됐지만 2020년 대선에서 당시 재선을 하려는 트럼프 대신 민주당 바이든을 택했다. 바이든은 접전을 벌이다 조지아의 선거인 16표를 가져가며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난 10년간 계속된 민주당의 '숨은 유권자 찾기 운동'이 있었다. 복숭아는 조지아의 대표 과일이다.

조만간 학교 봄 방학을 맞아 조지아 주(州)를 찾을 계획입니다. 제가 사는 북(北)버지니아에서 차로 10시간 거리입니다. 조지아를 거쳐 플로리다 올랜도 디즈니 월드까지 육로로 종단하고 닷새를 머물다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떠나기 전 조지아의 ‘정치 행적’을 살펴봤습니다. 앞서 조선일보 뉴스레터 ‘노석조의 외설(外說)’은 민주당 우세 지역인 버지니아에서 공화당 후보로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승리한 글렌 영킨 주지사의 유세 비결 스토리를 전해드렸습니다.

글렌 영킨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가 2023년 4월 25일 대만 타이완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조지아도 흥미로웠습니다. 미 동남부에 있는 조지아는 지난 40년간 빌 클린턴을 빼곤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만 찍은 ‘레드 스테이트(붉은 주)’였습니다.

부시를 초임, 재임 때 모두 지지했습니다. 신드롬 수준으로 떠오르며 전국을 휩쓴 오바마 당선 때도 조지아의 유권자 다수는 공화당의 맥캐인을 지지했습니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대선 때도 변함없이 공화당 롬니를 꿋꿋하게 찍었습니다.

트럼프가 민주당 힐러리를 누르고 당선된 2016년 대선 때도 두말할 것 없이 트럼프를 픽(pick)했습니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2002년 소니 퍼듀, 2006년 소니 퍼듀, 2010년 네이선 딜 등 모두 공화당 사람이 당선됐습니다.

언론은 조지아를 “공화당의 텃밭”이라 불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아내 멜라니아와 함께 지난 19일 플로리다 팜 비치의 모튼 앤 바바라 맨델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런데 말입니다.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2020년 대선에서, 그것도 웬만하면 된다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에서 조지아가 뜻밖의 선택을 했습니다.

트럼프를 버리고 1992년 민주당 빌 클린턴 이후 28년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 바이든을 택한 것입니다. 조지아에서 바이든은 247만여표(49.47%), 트럼프는 246만여표(49.24%)를 얻었습니다. 약 1만표차(0.23%)로 승패가 갈렸습니다.

직전 대선인 2016년만 해도 조지아에서 트럼프는 208만여표(50.44%), 힐러리는 187만여표(45.35%)를 득표했습니다. 표 차이가 20여만(5.09%)이나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4년만에 20여만의 유권자들이 공화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민주당으로 향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텍사스에서 선거 유세를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EPA 연합뉴스

조지아는 선거인 수가 16명이나 됩니다. 조지아에서의 승리로 바이든은 극적으로 트럼프의 재선을 가로챌 수 있었습니다. 조지아에서 뜻밖의 결정타를 맞은 트럼프는 조지아 선거 결과를 어떻게든 뒤바꿔보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다 화를 맞았습니다.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트럼프 표’를 더 찾아보라는 취지의 부정한 지시를 내린 혐의로 기소가 된 것입니다.

그만큼 조지아는 2020년 아주 뜨거운 주였고 논란의 중심에 있던 주였습니다. 올해 11월 대선 때도 그러할 것입니다. 조지아주의 정치적 지형과 풍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2020년 대선 결과. 조지아는 2016년 대선 때는 공화당 트럼프를 찍어 '레드 스테이트(붉은 주)'였지만, 2020년에는 남부에서는 드물게 민주당 바이든 현 대통령을 지지하며 '블루 스테이트(파란 주)'로 변했다.

그렇다면 2020년 트럼프를 찍었던 20만여명의 유권자들은 왜 4년만에 바이든으로 넘어간 것일까요? 이들 20만 유권자는 조지아의 중도층(Centrists, Moderates)이자 부동층(浮動層·Swing voters)일 것입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강한 충성도를 보이지 않고, 선거마다 다른 후보나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유권자들입니다.

워싱턴 D.C. 조지타운 정치학자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데 몇몇 교수들은 이들을 스윙 보터나 플로팅 보터(floating voters)라고 부르기보다, ‘벨웨더 보터(Bellwether Voters)’라고 칭했습니다. 벨웨더, 즉 길잡이 또는 선도자 역할을 하는 유권자라고 의미를 더한 것입니다.

그럴만한 것이 이들은 종종 경합이 치열한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의 비중이 커지면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려워 집니다. 이들 비중이 고정적으로 큰 곳은 ‘스윙 스테이트’가 됩니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은 이들 지지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경합주로 분류되는 미시건 주에서 지난달 27일 유권자들이 프라이머리(예비선거) 투표를 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조지아의 정치 지형이 달라진 이유는 다음과 같이 분석됩니다.

1. 인구 구성 변화

조지아, 특히 애틀랜타 메트로폴리탄 지역과 그 주변 교외 지역은 인구 구성이 과거에 비해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민주당 지지 경향을 보이는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히스패닉계 인구가 많이 유입됐습니다.

반면, 백인의 수는 줄었습니다. 조지아 인구는 약 1000만인데요, 2016년 백인은 전체의 44.6%이었다가 4년만인 2020년 무려 1.2%포인트 줄어 43.4%가 됐습니다.

같은 기간 아프리카계는 34.1%에서 0.5%포인트 증가해 34.6%, 아시아계는 4.5%에서 0.1%포인트 증가해 4.6%, 히스패닉은 13.8%에서 1.2%포인트 올라 15.0%가 됐습니다.

고학력자, 성소수자, 젊은 세대 유입도 두드러졌는데, 이러한 인구 구성의 변화가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 유권자 등록 및 동원과 조직화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투표를 하려면 유권자 등록을 미리 해야합니다. 자동 등록을 시행한 주가 늘어나고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다수의 주는 전통적인 등록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지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조지아에서 바로 이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신규 유권자 개척’에 나섰습니다.

이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2007~2017년 조지아주 하원의원을 지낸 스테이시 에이브럼스(51)입니다.

그는 선거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투표 참여의 중요성을 교육시켰습니다. ‘페어 파이트(Fair fight)’라는 조직을 만들어 운동을 체계화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유권자 기반을 확대하고,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지 않았던 조지아에서 새로운 지지층을 이끌어냈습니다. 숨은 표를 발굴해 기울어진 정치 지형의 운동장을 조금씩 바로 잡았습니다.

3. 코로나 대응에 대한 불만

다른 주뿐 아니라 조지아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불만은 컸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정권 교체’ 심리를 자극했습니다.

4. 우편 투표와 조기 투표

코로나 상황으로 많은 이들이 우편 투표와 조기 투표를 했습니다. 이러한 투표 방식은 민주당 유권자들 사이에서 더 널리 활용됐습니다.

이러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이 가운데 주목해야할 것은 ‘신규 유권자 발굴 운동’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책임자로, 민주당의 조지아 대첩을 이뤄낸 인물 에이브럼스를 조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에이브럼스

에이브럼스는 애틀랜타 스펠만대, 텍사스 오스틴 공공정책대학원을 나오고, 예일대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흑인 여성 정치인입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서 ‘우리의 시간은 지금이야(Our Time Is Now)’를 보면 그는 어릴 적 인종 차별을 겪으면서도 참정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할머니를 지켜보며 정치인의 꿈을 키웠습니다.

특히 그는 1965년 흑인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이 통과돼 남부 지역에서 흑인 유권자에 대한 차별적인 투표 제한 조치가 금지됐는데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또는 암암리에 흑인의 투표를 방해하고, 또 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행태와 사회적 분위기를 목격했습니다.

투표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투표하는 날 백인 경찰들과 이들의 맹견이 무서워 집 밖을 나서기가 두려웠다던 조부모의 토로를 그는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이에 그는 학부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졌고, 민주당 출신 애틀랜타 시장 밑에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일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변호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스물 아홉이던 2002년 애틀랜타 시정부의 법률고문으로 일을 했고, 2007년 주하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에이브럼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그가 2018년 공화당과 민주당을 통틀어 아프리카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주지사 후보로 지명되면서입니다. 1972년에도 바바라 조단이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 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온 적은 있습니다만, 에이브럼스처럼 정식 후보에 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선거에서 떨어졌고 2022년 재도전에도 고배를 마셨지만, 그의 출마 자체는 미 정치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됐습니다. 게다가 근소한 차로 패해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에는 총 50개의 주지사 자리가 있는데, 백인 여성 주지사는 좀 있지만, 흑인 여성 주지사는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제로(0)’로 단 하나도 없습니다. 에이브럼스는 이 제로라는 숫자를 지울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에이브럼스의 저서 '우리의 시간은 지금이야'.

에이브럼스는 더불어 주 하원의원이던 2011년 무렵부터 유권자 등록 캠페인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주지사 선거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투표장이란 곳을 평생 가보지 않았던 정치 소외계층, 무관심계층을 정치 참여의 장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누구로부터도 “투표하세요” " 투표가 당신의 삶을 바꿔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가 유권자 등록하는 법을 가르쳐줬습니다. ‘내가 무슨 정치 참여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참여해야 한다” “당신이 투표장으로 나오면 당신의 삶이 바뀔 것이다” “누구나 투표할 수 있다”라고 일깨워줬습니다.

에이브럼스의 주지사 선거에 이어 2020년 트럼프가 이길 줄 알았던 조지아에서 바이든이 1만표 더 득표하며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10년간 꾸준히 ‘정치적 개간(開墾)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에이브럼스의 노력으로 10년사이 총 80만명의 신규 유권자가 등록됐습니다.

폴리티코는 이와 관련 “에이브럼스의 정치 토양 바꾸기 전략은 조지아 선거 승리의 의미를 뛰어넘어 민주당이 열세 지역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정당들도 경쟁 정당의 텃밭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역주의를 타파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한철 장사처럼 선거 때 잠시 하다 맙니다. 대구 어디를 찾았다, 광주 어디에서 참배했다며 보도 사진을 찍는 수준입니다.

일시적으로 화학 비료를 뿌려놓고 수확할 기대를 하지 평소에 땅을 고르고 거름을 주는 고생과 노력은 잘 안 합니다. 자기 지역구 동네 이름도 모르고, 생전 살아본 적도 없는 곳에 출마를 하고 이런 후보들이 소속 정당 덕에 당선이 됩니다. A지역에 출마했다 안 되면 B지역에 출마하고, 그것도 안 되면 C지역에 안면 몰수하고 또 출마하며 그 지역의 머슴이 되겠다고 말을 하는 후보도 있습니다.

민주당 텃밭 버지니아에서 공화당 주지사가 나왔듯이, 공화당 텃밭 조지아에서 바이든이 이겼듯이 오는 한국 총선에서는 어느 지역에서 드라마틱한 결과가 나올지 기대됩니다. 이상 뉴스레터 외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독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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