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외모·인성 다갖춘 ‘만찢남’...오타니는 왜 일본서 탄생했나 [한중일 톺아보기]
“자국 선수 김하성을 뛰어넘는 절대 인기”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 소속 오타니 쇼헤이의 한국 방문 전후 상황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이 매체 포함 모든 일본 매체들이 앞다퉈 한국에서 비등한 오타니에 대한 관심도에 주목하는 모습이었죠.
실제로 지난 15일 오타니가 한국행 비행기를 탈 무렵부터 국내매체들은 ‘7억불의 사나이’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 한국에 왔다며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이 전했습니다. 야구에 대한 것뿐 아니라 방한 직전 공개된 그의 아내나 가족에 대한 소식까지 화제로 다뤘습니다.
서울 시리즈를 앞두고 그가 SNS에 몇차례 태극기 이모티콘을 올리거나 “한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라며 립서비스 하자 많은 한국팬들이 환호했습니다. 이에 한 종편방송은 “(한국에서) 이렇게 사랑받은 일본인은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모국 일본에서의 인기야 수년전 부터 이미 ‘오타니 신드롬’ 이 일어났을 정도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아 새삼스러울게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 그것도 한국에서 한국인도 아닌 자국 스타가 전례없는 관심을 끌자 흥미로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지 분위기에서 일견 우쭐해 하는 기색도 엿보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오타니의 타고난 운동능력과 체격조건, 노력 등 개인적 요소들이 작용했겠지만, 일본에서 야구가 갖는 위상 등 환경적인 것들도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야구는 일본에선 국민 스포츠로 통합니다. 일본은 법령상 국기(國技)를 정하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본인들이 야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사실상 일본의 국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야구는 일본에서 1996년 이래 올해까지 30년 가까이 부동의 최고 인기 스포츠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일본 남자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에는 언제나 야구선수가 포함되곤 합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에서 야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여전히 모든 스포츠중 가장 각광받고 있는 스포츠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특히, 최근 몇년간은 ‘오타니 효과’ 덕분인지 일본내 야구인기는 뚜렷이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야구는 인기 스포츠지만 일본에 비한다면 미미한 수준 입니다. 일본이 프로리그 출범 시점이 훨씬 앞서는 등 역사가 오래되긴했지만, 단순하게 그것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컨데, 동네 헬스장이든 공원이든 어디를 가든 야구 연습을 하거나 혼자 투구 모션을 취하는 일본인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뉴스를 틀면 날씨 예보 뒤에는 언제나 야구 소식이 가장 먼저 뒤따릅니다. 스포츠 이상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겁니다.
‘야구지식검정시험’의 존재도그들의 야구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예입니다. 2010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이 시험은 현재 매년 2차례만 실시되고 응시료도 6000엔으로 꽤 고액인데도 매년 수많은 일본인들이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야구는 1945년 패전 이후 고도성장기 샐러리맨 문화를 확산시킨 매개체였습니다. 샐러리맨 문화란 말 그대로 사무직 회사원들의 삶을 지배했던 패턴입니다. 규칙처럼 존재하는 특정한 복장, 함께 당연시 되던 야근, 회식과 관련된 문화 등이 대표적 예입니다.
고도 성장기 일본 샐러리맨들은 정서와 인간적 유대(진짜든 겉치레든)를 가족보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던 남성 동료들에게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가장 유용한 수단이 바로 야구였습니다. 야구를 모르거나 야구 이야기에 동참하지 못하면 소외됐기에 좋든 싫든 모두가 야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죠.
때문에 일본사회에서 야구는 전후 고도성장과 부흥의 시대를 상징하는 표상이었던 동시에, 자신들을 굴복시켰던 미국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써 인식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투수와 타자가 1대1로 맞선다는 점입니다. 화이팅은 야국에서 투수와 타자가 합을 겨루듯 1대1로 승부를 가리는 점이 사무라이 문화가 지배했던 일본인들에게 익숙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섬세함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종목 특성상 데이터를 통한 정교한 분석이 개입될 여지가 많은데, 이것 역시 기록하기 좋아하는 그들의 성향과 잘 맞는다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프로 출범 이전부터 야구의 저변 확대에 고등학생 야구대회인 ‘고시엔(甲子園)’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고시엔은 봄 고시엔(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과 여름 고시엔(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이 있는데, 백미는 여름입니다. 아사히신문 주최로 1915년 처음 시작된 여름 고시엔은 일본에서 야구를 엘리트 운동에서 대중 스포츠로 전환시켰습니다.
어떤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도 고시엔만큼 국민적 관심과 열병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4800개교가 넘는 일본 전역의 고등학교 중 80%인 약 4000개교(한국은 3.5%인 90여개교)가 야구부가 있고, 이들이 모두 고시엔 무대를 꿈꿉니다. 코로나19와 같은 큰 변수가 없는 한 매 경기 4만7000석에 달하는 구장이 꽉 들어차고 전 경기를 공영방송 NHK가 생중계하죠. 대회 시청률은 프로야구를 뛰어넘는 20%에 육박합니다.
대회 기간은 각 지역사회가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종의 연례행사이자 의식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인지 일본인들은 고시엔을 단순히 학생들의 야구 시합이 아닌 전국 단위 축제로 신성시하는 경향까지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고교야구에는 전통을 명분으로 한 일괄 삭발, 여성의 출전 및 그라운드 진입 불가 등 시대착오적 관습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만연한 성적 지상주의에 상명하복과 근성을 강조하다 보니 폭력 구설도 고질적으로 불거지곤 하죠.
일본의 고교야구부원수는 2014년 18만명에 육박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감소추세로, 최근 닛케이는 추세대로라면 2048년 일본의 고교야구부원수가 2014년 대비 69% 급감할 것이라며 ‘제2의 오타니’가 나올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의 고교 야구부원수 감소는 저출산으로 고등학생수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고교 야구 특유의 강압적 문화가 이를 부추키고 있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시대변화에 맞춰 점점 더 많은 학교들이 야구부원의 삭발규정을 없애거나 휴일 장시간 훈련을 줄이는 추세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닛케이는 “이 같은 흐름을 확대하는 것이 일본 고교 야구가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일본에서도 시청률 감소 등을 들어 자국 프로야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은 계속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1020 젊은 세대의 관심도가 떨어졌다는 여론 조사 결과는 한일 양국에서 모두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한국의 경우 여러요인이 프로야구 인기 저하에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WBC, 올림픽 등 국제대회 부진에서 나타나듯 국내 프로야구의 수준저하 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KBO 리그가 △선수 육성 부족 △세대교체 실패 △질적 하락 등으로 국제대회에서 계속된 부진을 겪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인프라 수준, 사회적 위상 등 여러면에서 한국과 일본에서의 야구는 똑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국 모두 야구가 아직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꼽히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 입니다. 팬들에게 수준 높은 경기를 선보이고 우수한 선수를 배출할 수 있느냐가 인기 지속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점도 같습니다.
결국 향후 양국 야구의 운명은 각국 야구계가 당면한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냐에 따라 갈리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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