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사려다 모닝 샀다”…돈없는 20대 허세? 돈있는 3050 ‘경차도 중고’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4. 3. 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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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중고 경차 판매 증가
더 좋은 차 대신 필요한 차
가치소비, 심리·경제적 여유
벤츠 E클래스(왼쪽)와 기아 모닝 [사진출처=벤츠, 기아]
“모닝 사려다 벤츠 샀다”

들어보셨을 겁니다. 자동차 ‘견물생심’ 폐해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처음엔 1000만원대 예산으로 경차인 기아 모닝을 사려다가 좋은 차를 볼수록 욕심이 덩달아 커져 결국 모닝보다 5배 이상 비싼 벤츠(주로 E클래스)를 샀다는 뜻이죠.

소비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소비는 사람의 욕망을 반영합니다. 소비 욕망에 중독되면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됩니다.

생리학에서 감각 자극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변화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베버의 법칙’은 소비에도 영향을 줍니다. 견물생심을 더 자극합니다.

벤츠를 상징하는 삼각별 [사진출처=벤츠]
경제학에서는 ‘감각’을 ‘가격’으로 바꿉니다. 자동차 구입에 적용해보겠습니다.

차를 살 때는 100만~200만원에 달하는 사양(옵션)은 쉽게 선택하면서 만원짜리 물건을 살 때는 500~1000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죠.

기업이나 판매자는 베버의 법칙을 통해 소비자가 더 비싼 옵션이나 제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합니다.

견물생심과 베버의 법칙이 판매자보다 소비자가 가진 제품 정보가 매우 적은 ‘정보 비대칭’과 결합하면 소비자는 필요 이상의 비용을 쓰게 됩니다.

모닝을 구입할 때 사양을 추가하다 더 비싼 현대차 아반떼나 기아 셀토스로, 다시 고급 사양을 선택하고 좀 더 폼 나는 차종으로 바꾸다 보면 벤츠 E클래스를 사게 되죠.

적정 수준에서 멈추지 못하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지출하게 됩니다. 과도한 소비는 손해와 피해로 이어집니다.

소비자는 처음에 원했던 가치를 얻지 못한 채 기업이나 판매자의 이득을 대신 챙겨주는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되는 기아 모닝(왼쪽)과 벤츠 E클래스 [사진출처=기아, 벤츠]
“벤츠 사려다 모닝 샀다”

벤츠와 모닝이 자리를 바꾸니 낯설게 느껴지시지 않나요. 신차 시장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중고차 시장에서는 간혹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같은 값에 경차는 물론 프리미엄 수입차도 살 수 있는 곳이 중고차 시장이기 때문이죠. 모닝 값에 벤츠 E클래스를 구입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며 벤츠 E클래스를 사러갔다가 경제적인 모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중고차 시장은 정보 비대칭이 심한 곳이어서 침수차를 속아 살 수도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사진=한주형 기자]
사실 브랜드 가치가 주는 심리적 만족도를 제외하면 중고차 시장에서 경차가 벤츠 E클래스보다 훨씬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중고차의 만성 고질병인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고장이 나더라도 경차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수리비, 세금, 기름 값 등 유지비도 저렴하죠.

중고 벤츠 E클래스는 정보 비대칭으로 소비자가 차 상태를 자세히 모른다는 단점과 비싼 수리비 때문에 배(구입비)보다 배꼽(유지비)이 더 큰 애물단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신차 대신 중고차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집니다. 차종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경차를 선택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경차는 수요도 많아져 중고차로 사더라도 감가가 상대적으로 더딥니다. 나중에 되팔 때 손해를 덜 보게 된다는 뜻이죠.

신차 판매 ↓, 중고차 거래 ↑
1000만원 이하에 판매되는 중고 벤츠 차량 [사진출처=엔카닷컴]
실제로 지난해부터 고금리와 경기불황 여파로 지난해부터 중고차가 많이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1~2월 판매된 중고차는 39만7914대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9만3717대보다 4197대 증가했습니다.

신차는 올들어 2월까지 25만6787대 팔렸습니다. 전년 동기의 27만7999대보다 2만1212대 감소했습니다.

중고차 시장에서 경차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의뢰해 2022~2024년 국산 중고차 거래 톱5를 집계한 결과입니다.

지난 2022년에는 현대차 그랜저(HG)가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기아 모닝(TA), 그랜저(IG), 쉐보레 스파크, 아반떼(AD) 순이었습니다.

국산차 중에서는 임원차로 사용돼 심리적 만족도가 높다고 평가받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싼 그랜저가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경차 대표주자인 모닝이 2위, 스파크가 4위를 각각 기록했지만 기아 레이는 톱5에 들지 못했습니다.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높은 현대차 그랜저 [사진출처=현대차]
지난해부터 경차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닝(TA)이 그랜저(HG)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달성했습니다.

스파크는 그랜저(IG)를 4위로 끌어내리고 3위, 레이는 아반떼(AD)를 밀어내리고 5위를 기록했습니다.

올해는 경차 기세가 더 세졌습니다. 올 1~2월 모닝(TA)은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스파크는 그랜저(HG)를 잡고 2위가 됐습니다.

뉴 레이는 4위 그랜저(IG)에 이어 5위, 레이는 6위를 각각 기록했습니다.

뉴 레이는 지난해에는 9위에 그쳤습니다. 올해는 5단계나 올랐습니다. 뉴 그랜저(IG), 카니발(YP), 아반떼(AD), 쏘나타(YF)를 제쳤습니다.

중고 모닝, 30~40대 선호도 1위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높은 경차인 모닝 [사진출처=케이카]
중고 경차는 누가 주로 샀을까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돈 없는 20대가 싼 맛에 ‘생애 첫차’로 많이 구입했을까요?

아닙니다. 20대보다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30~50대가 선호했습니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를 통해 올 1~2월 성별·연령별 중고차 거래 톱5를 산출해본 결과입니다.

남성은 그랜저를 가장 많이 구입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모닝, 쏘나타, 아반떼, 카니발 순이었죠.

여성은 모닝을 가장 선호했습니다. 아반떼, 그랜저, 스파크, 쏘나타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경차를 더 많이 산다는데 분석 결과도 비슷했습니다.

대신 올해에는 남성도 경차를 좀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모닝이 쏘나타와 아반떼를 제치고 2위를 기록해서죠.

경차는 일반적으로 남성이 선호하는 차종 3위권 밖에 있었지만 올해는 2위를 달성했습니다.

신형 모닝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는 경차보다는 준중형·중형세단을 선호했죠. 모닝은 3위를 기록했습니다.

30~40대는 경차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모닝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스파크도 톱5에 포함됐습니다.

30대의 경우 모닝, 아반떼, 그랜저, 쏘나타, 스파크 순이었습니다. 40대는 모닝, 그랜저, 카니발, 스파크, 쏘나타 순으로 많이 샀습니다.

경차를 세컨드카는 물론 퍼스트카로도 사용해야 가능한 순위입니다. 알뜰 살림에 도움이 되는 엄빠차(엄마·아빠차)로도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0~60대도 30~40대 수준은 아니지만 20대보다는 경차를 많이 샀습니다.

50대는 그랜저, 모닝, 쏘나타, 아반떼, 스파크 순으로 선호했습니다. 60대 이상도 비슷했습니다. 그랜저, 모닝, 쏘나타, 아반떼, 싼타페 순으로 많이 구입했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이 정도면 됐지
경차값에 살 수 있는 중고 수입차 [사진출처=엔카닷컴]
자동차업계는 중고 경차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경기 상황에 있다고 분석합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합리적 소비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하죠.

‘이왕이면 다홍치마’보다는 ‘이 정도면 됐다’며 중고차 시장에서 경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경차 구입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3불(불편·불안·불만)이 안전·편의성 향상으로 상당부분 해소된 것도 한몫했다고 풀이합니다.

요즘 차는 예전과 달리 품질이 좋아져 부품만 제때 갈아주면 큰 문제없이 10년 이상 탈 수 있습니다.

경차 운전자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비교적 얌전하게 차를 운전하기 때문에 차 상태도 상대적으로 괜찮습니다.

벤츠 인증 중고차 [사진출처=벤츠]
물론 중고 경차만 사야 알뜰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러 살 필요도 없습니다. 차는 자신이 필요한 차를 사야 합니다.

벤츠가 주는 가치를 추구한다면 모닝 대신 벤츠 E클래스를 살 수도 있습니다. 중고차를 선택해 구입부담을 덜 수도 있습니다. 벤츠 인증 중고차는 신차 못지않게 품질도 우수합니다.

다만, 벤츠 E클래스든 모닝이든 무리해서 구입하는 것은 피하는 게 낫습니다.

가치는 더 비싸거나 더 좋은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에서 나옵니다.

경기불황기에는 가치 소비가 여유를 가져다 준다. [사진출처=매경DB]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의 심리가 호황·불황 등의 경기상황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가 나쁘다고 여기면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생기고, 결국 소비가 얼어붙고 경기는 더 악화된다고 하죠.

반대로 모두 경기가 좋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소비가 더 활발해지면서 경기가 한층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리스크를 취하려는 심리를 자극해 주가도 상승한다고 하죠.

개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꼭 필요한 것을 알뜰하게 구입하는 가치 소비를 지향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지금은 중고 모닝을 샀지만 멋진 벤츠가 진짜 필요해졌을 때 ‘내돈내산’으로 즐겁게 구입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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