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인하는 7월?...“달력만 보지 말고 지표를 봐라”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한 때 배낭을 메고 지리산을 종주하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전남 구례를 출발해 화엄사를 거쳐 노고단까지 올라가면 그 때부터 하늘이 노래지고 다리가 풀린다. 노고단의 높이는 해발 1507미터. 힘도 빠지고 꽤 올라온 것 같은 느낌에 내리막길을 찾게 된다. 하지만 지리산 종주는 노고단부터가 시작이다. 노고단에서 능선을 타고 반야봉 토끼봉 덕평봉 촛대봉 연하봉 등을 거처 지리산 최고 정상인 천왕봉(1905미터)까지 가는 25.5킬로미터 구간이 종주의 백미다. 이 구간을 거쳐야 비로소 산을 내려오게 된다. 처음 노고단에 올랐을 때 하산을 생각하는 것은 등산 초보중의 초보다. 지리산 종주를 뜬금없이 떠올린 것은 요즘 미국 금리 인하와 관련한 성급한 예측이 마치 노고단에서 내리막길을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미국은 지난 2022년 3월부터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렸다. 당시 연0.25%였던 금리는 2023년7월에는 연5.5%까지 치솟았다. 그 때 이후 7개월간 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금리 동결을 전후해 시장에서는 끊임없이 ‘금리인하론’이 제기됐다. 처음에는 2023년 하반기 인하론이 득세하더니 그 다음에는 2024년 상반기 인하론, 요즘에는 2024년 하반기 인하론이 대세를 이룬다.
월가의 전문가들, 그리고 이들의 의견을 인용하고 재해석하는 국내 전문가들 상당수가 비슷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예측은 지난해부터 계속 틀렸다.
이럴 땐 ‘금리인하 전망- >주가상승- >주식매입 확대- >거래량 증가- >증권사 수익확대’라는 연결고리가 작동한다. 중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경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장에서는 번번이 틀리면서도 ‘곧 금리를 내린다’는 전망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세는 ‘7월 미국 기준금리 인하론’이다. 각종 근거를 제기하고 있지만 근거보다는 ‘믿음’에 근거한 경우도 많다. ‘기준금리를 5%포인트 이상 올렸는데 경기침체가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든지 ‘물가가 2%대로 곧 안정될 것’이라든지 등등이다.
하지만 지표를 보면 꼭 그런 얘기를 하기도 어렵다. 지금은 매번 바뀌는 금리인하론을 믿기보다는 각종 지표의 움직임을 믿어야 할 때다. 어쩌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는 지리산을 종주할 때 노고단에 올라서서 곧 하산길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1월 PCE지수는 시장 예상에는 부합했지만 여전히 연준의 기준(2%)보다 높은 수준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물가가 2%선으로 안정되는 것을 확인해야 금리를 내릴 수 있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 연준 통화정책의 다른 기준인 경기와 고용지표를 봐도 금리 인하를 언급하기에는 이르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연율 기준으로 3.2%를 기록했다. 2023년 성장률도 2.5%에 달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가 2.5% 성장한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고성장이다. 미국 경제의 10분의1도 안 되는 한국 경제는 지난해 1.4% 성장하는데 그쳤다.
미국의 2월 실업률은 3.9%로 1월보다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완전고용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순간순간 고용지표의 등락은 있지만 전체적인 고용 수준은 미국 경제 역사상 가장 안정돼 있다. 물가가 여전히 높고 경제는 침체에 빠지지 않고 고용은 안정적이다.
또 한 가지 변수는 미국의 주식시장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3월18일까지 미국 다우지수는 2.7%, 나스닥 지수는 6.4%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주식시장의 최대 이슈는 금리인하 시점이었다. 그런데 금리인하 기대가 계속 어긋나는데도 주가는 연일 호황세를 보이고 있다. 양호한 기업 실적과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금리인하 불발’에 따른 실망감을 압도하면서 주가를 연일 끌어올리고 있다.
주가 상승은 개인들의 자산 가치를 높인다. 자산가치가 높아진 미국 사람들은 이를 기반으로 소비를 늘린다. 소비가 늘어나면 이는 다시 미국 경기를 끌어올린다. 이른바 ‘부의 효과’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런 이유도 미국 경기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다른 연구기관이나 투자은행(IB)들도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올리고 있다. IMF는 특히 2024년에도 미국은 여전히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도는데 금리를 내리는 것은 잘 타는 장작에 휘발유를 붓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경제지표만 놓고 보면 금리인하를 논하는 것이 시기상조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불확실성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 등 전 세계에서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은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리스크’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도 연준이 움직이려면 이런 불확실성으로 인한 경제지표 변화가 감지돼야 한다.
아직은 불확실성에 따른 지표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약간의 지표 변화가 있을 때 움직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최근 존 윌리엄스 뉴욕 연준 총재는 미국 금리인하 시점과 관련해 “달력에 기반하는게 아니며 데이터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투자자들이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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