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지금,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누는 기쁨” [인터뷰]

조혜정 기자 2024. 3. 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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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이탈리아 출신 사제 빈첸시오 보르도. 그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김대건 신부의 김,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담아 ‘김하종’으로 지었다. 그는 사제의 신분이지만 스스로를 주방에서 밥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일주일에 6일, 하루 평균 500여명의 한 끼 식사를 책임지는 그는 언젠가 ‘안나의 집’을 아무도 찾지 않아 문을 닫는 날을 꿈꾼다.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홍기웅기자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가 되는 ‘집’

김하종 신부(67)는 오전 5시부터 깨어 있다. 함께 사는 신부 2명과 미사와 기도를 드린 후 9시에 출근하기 전까지 이메일이나 메신저 체크로 간단히 업무를 시작하고 출근길엔 청소년 쉼터, 노숙인 자활시설을 들러 잠깐이라도 그들의 얼굴을 보며 안부를 묻는다. 사무실에 도착해선 안나의 집 대표로서 본격적인 행정 업무를 본다. 확인할 것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여기저기 부탁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렇게 정신 없이 오전 일과를 보내고 나면 어느새 밥할 시간이 된다. 식사시간은 3시부터지만 일찌감치 급식소를 찾아온 손님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1998년 모란역 근처 식당 한 편에서 80여명에게 식사를 대접했던 것이 지금은 하루 500명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도시락을 만들어 나눴습니다.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 돕고 싶어 사제가 됐고 그들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때로 힘든 일도 있지만 이들에게 배우는 점이 더 많습니다.”

김 신부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네 명의 스승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스승은 인도 출신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그의 작품을 통해 아시아를 알게 됐고 간디, 부처, 공자, 그리고 김대건 신부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시아 문화를 공부했다. 그 덕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고 사제서품 전 이미 한국행을 결심했다.

두 번째 스승은 한 장애인이다. 한국에 들어와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1992년에 성남으로 왔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위해 할 일을 찾던 중 우연히 낡은 집에 가게 된다. “지하에 있는 집에 들어서니 옅은 전등에 기대어 한 남자 분이 누워 계셨습니다. 20대 때 건설노동자로 일하다가 허리를 다친 이후로 거동이 불편해진 분이었는데 주변 이웃들이 그를 기억하면 하루에 한 끼 먹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굶는다고 하더군요.”

김 신부는 급한 대로 집 청소를 한 후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김 신부는 문득 “한 번 안아 드려도 될까요” 물은 후 그를 안았다. 잘 씻지 못한 육체에선 냄새가 났지만 김 신부는 그를 안는 순간 참된 마음의 평화, 기쁨, 행복을 느꼈다. “그 순간 신께서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 평생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분은 막연히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었던 저의 마음에 확신을 주신 두 번째 스승이시죠.”

삶이 아름다운 선물

IMF 외환위기가 찾아온 1998년 김 신부에게 오 마태오씨가 찾아왔다. 모란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오씨는 외환위기 이후 모란시장 광장에 새벽부터 몰려드는 실업자들을 마주하고 수소문 끝에 김 신부를 찾았다. 어르신들을 위해 밥을 짓던 신부에게 오씨는 하루 한 끼도 해결하지 못하는 젊은 노숙인들을 도울 의향이 있는지 묻고,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마태오 형제님이 먼저 저에게 식당 일부 공간을 제공하고 식사 준비를 후원하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일자리를 잃고 잘 먹지도 못하는 실업자들을 도와야 할 것 같다면서요. 마태오씨 본인도 부자가 아니었고 보통의 식당 사장이었지만 있는 그대로 나눠주신 덕분에 그 씨앗이 자라 오늘의 안나의 집이라는 커다란 나무가 됐습니다.”

세 번째 스승 오씨 덕에 만난 네 번째 스승은 바로 노숙인들이다. 김 신부는 가난과 고통에 매몰되기보다는 자신이 건네는 빵 한 조각, 옷 한 벌에 감사하며 “삶이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말하는 노숙인들을 만나 “인간으로서, 사제로서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존재, 청소년

안나의 집은 최근 청소년 문제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할 일이 없어 노숙인이 된다고 알고 있지만 김 신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은 일거리가 충분히 많고 외국인 노동자가 없다면 공장 운영도 멈추고 농촌 사회도 무너질 겁니다. 그러면 왜 이들은 일을 안 하고 노숙인이 됐을까. 이 분들은 각자 어떤 ‘문제’를 갖고 있어 노숙하는 겁니다. 심리적·정신적 고통, 사회적·육체적·경제적 문제 등을 안고 있죠.”

김 신부는 노숙인들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의 원인을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 봤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최소한의 사랑과 관심,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고, 그들이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진다는 것.

“노숙인들과 홀몸어르신에게 식사 대접하는 것만큼 청소년들을 올바르게 이끌고 사랑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신부와 안나의 집 사회복지사들은 매일 밤 아지트(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를 타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을 찾아간다. 사회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게 하고 그들이 원한다면 단기 쉼터에서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도 가정 복귀가 힘든 경우엔 중장기 쉼터에 입소해 혼자 생활이 가능할 때까지 생활하도록 지원하고 집과 생활 편의를 제공한다.

현재 안나의 집 쉼터 안팎에서 관리하고 있는 청소년은 100여명. 아이들의 교육비, 식비, 의류비뿐 아니라 용돈까지 책임지다 보니 어르신들 식사 대접과는 차원이 다른 부담이 따른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질수록 소외된 사람들은 일상을 따라가기 더 힘들어집니다.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멀어지기 전에 사랑, 음식, 옷, 공부를 제공하는 것은 아이들의 인권이에요. 아이들이 길 위에 있는 것은 부모뿐 아니라 사회와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최근 김 신부는 안나의 집 25주년을 기념해 그간의 소회를 담은 책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를 출간했다. 40%의 보조금과 60%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안나의 집은 500여명의 노숙인, 100여명의 청소년, 55명의 직원과 1천명의 봉사자들이 사는 큰집이다. “바쁜 일상 중 1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그 시간을 나눠주세요. 그 1시간이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아무도 모릅니다. 조건을 앞세우기보다 지금,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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