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팬이 된 후, 내 안의 못난 감정이 사라졌거든

한겨레 2024. 3. 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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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연합뉴스

새벽 4시에 일어나 인천공항으로 달려가던 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새벽이 지나고 아침을 보내고 오후가 되면, 정말 그가 나타날까?

오타니 쇼헤이(엘에이 다저스)가 어떤 선수인지, 또 내가 그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다 말하려면 책으로 써도 지면이 모자라므로(이미 한권 썼고 또 쓸 계획이다) 생략하도록 하겠다. 일본 리그를 평정하고 2018년 메이저리그로 건너갈 때만 해도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투웨이 플레이어에 도전한다는 선언은 허무맹랑한 관심 끌기로 여겨졌지만,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의 편견을 지워냈다. 수많은 시련이 그를 막아섰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21세기 야구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야구 외적으로도 흠결을 찾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며 ‘오타니 현상’이라고 불릴 만한 인기몰이를 하는 중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나는 오타니 현상 한복판에 있다. 오타니를 좋아하는 마음을 등고선으로 표시한다면 내 머리 위가 제일 높을 거라고 자신한다. 야구에 관심 없던 내가 2015년 프리미어12 한일전에서 오타니를 알게 된 이후 그가 광고 모델인 포르쉐로 차를 바꾸고, 역시 그가 광고 모델인 옷과 신발로 옷장과 신발장을 채웠다. 오타니 관련 수집품을 모아 작은 박물관을 만들고 이 과정을 정리해 책으로 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미국 리그에서 뛰는 일본인 선수를 좋아하다니. 한국에서 부는 오타니 현상에 외국 언론이 놀라는 것도 이 지점이다. 오타니가 반일 감정을 넘어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높고 견고한 반일 감정의 벽을 그는 어떻게 허물었을까?

필자(가운데 검은 모자 쓴 이)가 지난 15일 인천공항에서 메이저리그(MLB) 개막전을 위해 서울에 온 오타니를 기다리고 있다. 엘에이타임스는 오타니의 오랜 팬인 필자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의 오타니 팬인 필자를 조명한 엘에이타임스 기사. 화면 갈무리

그를 보고 있으면 상식적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위대함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존경과 대리만족의 감정이 이어지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지점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지 않는 태도였다.

수많은 사례가 있는데, 2019년과 2022년 오타니가 거듭된 부상과 지독한 슬럼프로 신음할 때가 대표적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불가능한 도전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타협(투수와 타자 중 하나만 선택하는)을 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갔다. 이건 고집이나 요행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끝없는 노력의 결과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만 봐도 알 수 있다. 언뜻 봐서는 야구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를테면 인간성과 행운을 키우겠다는 항목까지 적혀 있다. 쓰레기 줍기, 라커룸 청소, 큰 소리로 인사하기 등등 말이다. 몇달도 계속 지키기 힘든 수많은 수칙들을 그는 10년 넘게 지켜왔고, 이는 타협 없이 꿈을 향해 정진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20대에 작가라는 꿈을 이뤘지만 안정적인 삶을 위해 따로 직장을 구했다. 돌아보면 그 뒤로도 그랬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오롯이 추구하는 대신 쉽고 안전한 선택으로 타협했고 그럴 때마다 자기혐오의 감정으로 내면은 헛헛해졌다.

오타니를 응원하고 나서는 그런 식의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졌다. 내가 오타니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다. 일종의 사명감도 생겼다. 인류 역사상 흔치 않은 경지에 이른 한 인물에 관해 기록하고 수집하고 공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책(‘포르쉐를 타다, 오타니처럼’)을 쓰고 수많은 취재에 응했다. 엔에이치케이(NHK), 티브이(TV)아사히, 후지티브이, 티비에스(TBS), 니혼티브이 등 지금껏 집에 촬영하러 온 일본 방송만 10개 팀은 넘는 것 같다. 이번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 중에는 미국 엘에이타임스에 특집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한국 최고의 오타니 팬을 만나다’.

이 지점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가 떠오른다. 덧없는 연모의 대상 데이지에게 다가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운명의 물결을 거슬렀던 바보 같은 남자 말이다. 길게는 몇 시간씩 걸리는 촬영에 거듭 응하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계속 방송과 뉴스에 나오다 보면 혹시 오타니가 날 알게 되지 않을까? 나처럼 오타니에게 경도된 사람들을 모아 팬클럽을 만든 뒤로는 내가 아닌 우리가 되었다. 한국에도 너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사실을 오타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오타니가 고1 때 세웠다는 만다라트 계획표.

다저스팀 입국은 절호의 기회였다. 지난 15일,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만든 펼침막과 클래퍼(응원 도구)를 잔뜩 들고 공항에 집결했다. 전날 밤부터 대기한 회원들도 있었다. 오타니가 우릴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대형 펼침막을 설치하고 그 아래 모여 환영 구호를 외쳤다. “레츠고 다저스! 레츠고 쇼헤이!” 외국 언론은 우리 모습을 ‘한국의 오타니 팬들은 공항을 콘서트장으로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오타니가 게이트 밖으로 나올 때는 비틀스가 미국 공항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처럼 열광적인 환호가 공항을 뒤흔들었고(다저스 2루수 개빈 럭스가 실제로 쓴 표현이다) 쉴 새 없이 번득이는 카메라 플래시는 가뜩이나 예민해진 감각을 최고조로 각성시켰다. 광란의 현장에서 오타니는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우리는 더욱 소리 높여 환영했고 마침내 그는 눈을 맞추고 손을 들어 화답했다. 그리고 며칠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직접 우리 사진을 올리고 기자회견에서는 한국 팬들의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꿈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린 메이저리그 개막전 일주일 동안 나는 금쪽같은 휴가를 써가며 회원들과 함께했다. 다저스 선수들이 묵는 호텔에 함께 숙박하며 프리드먼 단장을 포함해 여러 선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고 대화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우연히 조 켈리 선수(다저스 투수)와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은 일도 재미있었다. 다만 오타니는 엄청난 취재진에 부담을 느낀 듯 아내와 함께 방에 머물렀다. 그래도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적은 내 책을 다저스 스태프를 통해 오타니에게 전해준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개막전과 2차전 직관의 경험은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나는 천국의 공연장에 다녀왔다.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경기는 결국 끝나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지만 그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서울에서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리다니! 오타니가 배트를 휘두르고 베이스를 훔치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직접 보다니. 개막전에서 에스파가 공연을 펼쳤는데, 더그아웃에 서 있는 오타니의 모습 위로 ‘넥스트 레벨’이 흐르던 장면은 정말이지… 지금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오타니의 주제가로 딱이었다.

이제 오타니는 미국으로 떠났다. 나와 팬클럽 회원들은 축제를 즐겼고 꿈도 이루었다. 회원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했던 말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저는 너무 늦게 태어나서 인간이 달에 최초로 발을 딛는 장면을 보지 못했고, 너무 빨리 태어나서 인간이 외계인을 만나는 장면도 못 볼 것 같아요. 하지만 운 좋게 오타니와 같은 시대를 살게 되었어요.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또 보자 오타니!

SBS(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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