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지우는 것도 작품인가?

도광환 2024. 3.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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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지운 것도 작품인가? 작품이라고 치자.

이 작품을 소장한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은 2010년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데 쿠닝이 처음 그린 드로잉을 복원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으로 설파하며 모더니즘 미술을 발효시킨 뒤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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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이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해설을 읽으면 황당한 기분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두 작가가 주인공이다.

'데 쿠닝의 드로잉을 지우다'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소장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는 사진과 신문지, 상업적 부산물 등을 캔버스에 붙인 '콤바인' 기법으로 화단에 충격을 주며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교량 역할을 한 화가다.

윌럼 데 쿠닝(1904~1997)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잭슨 폴록과 함께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화가다.

1953년 어느 날, 라우센버그가 데 쿠닝에게 말했다. "내가 작업할 작품으로 드로잉을 한 장 그려줘요"

라우센버그는 데 쿠닝이 그린 간략한 드로잉을 지우개로 지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위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데 쿠닝의 드로잉을 지우다' (1953)

흐릿한 선과 어슴푸레한 자국으로 남은 이 '작품'을 본 화단은 당황했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지운 것도 작품인가? 작품이라고 치자. 작가는 누구인가? 데 쿠닝과 라우센버그 둘 다인가?

이 작품을 소장한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은 2010년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데 쿠닝이 처음 그린 드로잉을 복원했다.

복원한 데 쿠닝의 원래 드로잉

이 작품은 액자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라우센버그는 금박이 들어간 얇은 액자에 그림을 넣었다. 한참 후에 이렇게 썼다. "액자와 드로잉을 분리하지 말 것. 액자도 작품의 일부임"

결과보다는 '개념'이다. 기존 드로잉을 지우는 섬세한 노력으로 자신의 사유와 고민을 담아낸 그릇으로서의 작품이다.

'개념미술' 선구자는 마르셀 뒤샹(1887~1968)이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으로 설파하며 모더니즘 미술을 발효시킨 뒤샹이다. 그는 라우센버그처럼 지우는 게 아니라 덧그림으로써 20세기를 대표하는 명작 하나를 남겼다.

1919년, 뒤샹은 파리 한 가게에서 '모나리자'가 그려진 싸구려 엽서를 한 장 산 뒤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었다. 알파벳 대문자로 'L.H.O.O.Q'라고 썼다.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그 여자 엉덩이는 뜨거워'라는 말이 된다고 한다.

'L.H.O.O.Q' 개인 소장

마침 이 그림을 그린 1919년은 다빈치가 사망한 지 만 400년 되는 해였다. 그에겐 다빈치의 천재성과 예술성이 중요치 않았다. 조롱과 해학을 통해 기존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새로운 도약'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까지 미술이란, 정교한 초상화로부터 내면을 감지하고, 역사화를 통해 지식을 함양하고, 정물화와 풍경화를 감상하면서 삶과 자연을 관조하는 일이 회화로부터 얻는 소중한 덕목이다.

이를 넘어 기존 문법과 관습, 제도에 도전하는 일은 용기에서 비롯된다. 용기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기초와 철학이 굳건해야만 발현된다.

개념미술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 타고난 미술 재능이 필요 조건도 아니다. 자신의 철학을 담는 의지와 사유가 한층 윤택한 가치다.

한 걸음 나아가면, 개념미술을 통해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재능과 학력, 지위와 권위를 앞세우는 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철학'을 꾸준히 다지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라우센버그는 지운 게 아니라 창조한 것이다. 뒤샹은 조롱한 게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가리킨 것이다. 혁명이고 도전이었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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