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작은 중국…‘제2의 차이나타운’ 수원특례시 고등동 [지역을 변화시키는 외국인]⑥

이호준 기자 2024. 3. 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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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지식 식당에서 직원 체험...20년 넘게 자리 지킨 ‘송화강반점’
동포와 정 나누고 동네 정보 얻어 중국인에 인기 전국 명소로 유명

앞서 K-ECO팀이 찾은 신흥 외국인 집주 지역은 각각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공단 주변에 위치해 일자리를 목적으로 외국인이 자리를 잡은 곳들이 있는가 하면, 기존 언어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터를 내리기도 하는 등 서로 다른 포인트가 있다. 그럼에도 외국인이 밀집해 거주 중인 곳에는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장소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고향 생각이 절로 나게 하는 ‘현지식 식당’이 바로 그곳이다. K-ECO팀은 제2의 차이나타운으로 불리고 있는 수원 ‘고등동’을 찾아 중식당에서 직원으로 직접 일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⑥ ‘제2의 차이나타운’ 수원특례시 고등동

■ “니하오” 中 식당에서 맛있는 교류…‘차이나’는 사랑방

'제2의 차이나타운'인 수원특례시 고등동에 위치한 중국인들의 '사랑방'인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윤원규기자

“欢迎光临(환잉꽝린)”

수원특례시 고등동 갓매산 삼거리에 있는 중국 현지식 식당 ‘송화강반점’에 들어서자 이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잊게 됐다. 가게 곳곳에 쓰여있는 한자로 어지러울 즈음 “어서 오세요”라는 뜻의 중국어 “환잉꽝린”이 들려왔다.

가게의 협조를 받아 직업 체험을 시작하게 됐는데, 직원은 물론 대부분 손님이 중국인이기 때문에 송화강반점 아르바이트 취업 조건엔 ‘언어 능력’이 필수였다. 대학생 때 닦아둔 중국어 실력으로 주문을 받는 등 업무에는 자신있었지만, 그 자신감도 잠시. 오랜만에 느껴보는 중국인들의 큰 목소리와 소리치는 듯한 말투에 순간 당황하자 일은 꼬이기 시작했고, 허둥대는 모습에 사장님이 직접 나서 주문을 받아주기도 했다.

일이 손에 익을 무렵 한 중국인 부부가 들어와 자리에 앉자 자연스레 물컵과 물, 앞접시, 메뉴판을 들고 가 인사를 건넸다.

“라차오그어리(매운 바지락볶음), 단차오퐌(달걀 볶음밥), 그리고 카스 피지오(맥주) 2.”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몰아치는 주문에 정신없이 메뉴를 받아 적은 뒤 주방에 건네주자, 주문 내역을 다시 알아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쭈뼛거리며 테이블 쪽으로 향하는데 사장님이 급하게 붙잡고는 “단골이라 항상 시키는 메뉴가 있다”며 “걱정하지 말고 다른 테이블을 신경 써라”고 했다.

'제2의 차이나타운'인 수원 고등동에 위치한 중국인들의 '사랑방'인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윤원규기자

단골이라는 말에 눈여겨보던 테이블. 부부가 주문한 메뉴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고 음식을 전달하면서 ‘단골이 된 이유’를 조심스레 물었다.

남자 손님은 “우리 부부가 한국에 온 지 8년 정도 됐다. 처음 고등동에 왔을 때 이 식당에서 동네 정보도 많이 얻는 등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며 “가끔 중국에서 놀러 오는 친구나 지인, 가족들과는 항상 이곳을 방문해 나만의 방식으로 사장님께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송화강반점은 이 부부를 비롯한 많은 중국인에게 ‘사랑방’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2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영업해 온 송화강반점은 고등동 중국인 주민들이 최신 동네 정보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장소이자, 동포를 만날 수 있는 교류의 장이다.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서 많은 중국인이 모임 장소로 찾는다. 단골도 많아 식사 시간대 손님이 몰리기 시작하면 대기는 기본, 포장도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송화강반점은 고등동이 차이나타운이 되는 그 시작부터 함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년 전 고등동 번화가에 자리를 잡은 송화강반점은 동네에 유일무이한 중국 식당이었고, 이러한 이유로 자연스레 중국인들의 모임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또 제각기 다른 손님들의 입맛을 맞춰주는 가게의 배려도 돋보인다. 손님의 입맛과 취향에 맞춰 음식을 내놓으면서 음식과 서비스, 배려에 만족한 손님이 단골로 굳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송화강반점 사장인 구동매씨(51, 한국계 중국인)는 “인근에서 제일 오래된 중식당이기 때문에 고등동 중국인이 전국에 있는 중국 동포를 (송화강반점으로) 초대하는 등 모임과 교류 장소로 많이 찾는다”며 “다같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커뮤니티 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마라탕 가게·자율방범대 체험해 보니

영업 준비 중인 마라탕 가게에서 재료를 정리하는 모습. 윤원규기자

고등동에 있는 장량마라탕. 전 세계 5천개 이상의 가맹점을 가지고 있는 중국 최대 마라탕 프랜차이즈 업체에서의 체험은 색달랐다.

본격적인 점심시간 대 영업 전, 아침부터 가게는 분주하다. 밤사이 약간의 먼지가 내려앉은 테이블, 의자를 꼼꼼하게 닦고 매장 바닥을 반짝반짝 빛이 나게 치우다 보면 어느새 마라탕에 들어가는 신선한 재료들이 하나둘 배달된다.

매일 아침 수원유통센터에서 배달 온 스무개가 넘는 재료들을 일일이 손질하고 각각의 자리에 맡게 배치하면 오픈 첫 단계가 끝이 난다. 마라탕의 생명과도 같은 비법 소스, 손님들이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디핑 소스들을 제자리에 채워 놓고 나면 어느새 영업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영업이 시작되자마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하나둘 가게를 찾았다. 주말인 탓에 가족 단위 손님이 주를 이뤘다. 종업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대화가 이뤄져 놀라웠다. 가게에서 틀어둔 음악 소리는 묻힌 지 오래다.

손님이 많아 재료는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특히 마라탕의 육수가 되는 청경채, 배추 같은 채소들이 인기가 많아 채워 놓기가 무섭게 다시 바닥을 보였다. 미리 손질해 둔 덕에 무리 없이 빈 재료통을 몇 번이고 채우기도 했다.

마라탕집의 숨은 대표 메뉴인 만두도 인기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김 사이로 뽀얗게 자태를 드러내면 여기저기에서 만두를 주문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에 20㎏씩은 판매돼 매출 효자다.

가게에서 판매 중인 만두를 찜기에 정리하는 모습. 윤원규기자

한바탕 정신없었던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시간에 접어들면 대부분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들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중국인 혼밥 손님은 몇 명인지 묻는 말에도 별 대꾸 없이 빈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고는 마라탕 재료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원하는 재료를 담고는 그제야 종업원을 찾아 재료를 넘긴다.

최근 국내 MZ세대를 중심으로 마라탕이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일까. 혼밥족 사이에는 드물게 한국인 손님도 있었다.

아무래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다 보니 ‘진짜’ 현지의 맛을 느끼고 싶어서 방문하기도 한다고. 특히 주말엔 한국인 손님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수원역 인근에 놀러 왔다 ‘제2의 차이나타운’인 고등동에서 마라탕을 먹고 만족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음식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가게에서 일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 종업원 최숙자 씨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자마자 (마라탕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마라탕이 인기가 많아서 종종 한국 손님들이 고등동까지 찾아오는 걸 보면 신기하다”면서도 “현지식이라 조금은 다를 수 있는데도 대부분 입맛에 맞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가게 밖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손님이 빠져나간 식당은 달그락거리는 식기 정리 소리만 가득했다. 빈 수저통을 채운 뒤 남은 재료를 치우고 틈새까지 깔끔하게 닦아내면 새벽 1시가 다 돼서야 진짜 영업이 끝난다.

시끌벅적했던 모습은 어디간지 모르게 적막만 흐르는 불 꺼진 가게를 뒤로한 채 집으로 가는 길, 언어도 생활방식도 전혀 다른 중국인과 한국인이 ‘마라탕’이라는 음식으로 하나 되는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번진다.

수원특례시 고등동자율방범대와 함께 지난 12일 밤 방범활동을 진행했다. 윤원규기자

고등동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이번에 진행한 직업 체험은 자율방범대다. 특히 고등동처럼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치안에 대한 수요가 높은 만큼 다른 지역보다 자율방범대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내국인들에겐 여전히 치안 불안에 대한 선입견이 남아 있는 만큼 자율방범대 직업 체험을 통해 이러한 선입견이 사실인지 고등동의 밤을 책임져 봤다.

고등동자율방범대는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 형광색 조끼를 입고 골목 구석구석을 살피며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행인을 경찰에 인계하거나 고등동 내 재개발 구역에서의 방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자율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9시 고등동 자율방범대 초소 앞. 형광색 외투를 입고 오른손에는 빨간 경광봉을 든 자율방범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황재성 고등동자율방범대장을 필두로 평일 오후 9시부터 12시까지 순찰차와 보도를 이용해 고등동 일대를 순찰한다.

반짝이는 불과 함께 자율방범대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과 함께 찾은 곳은 고등동 일대 번화가. 함께 순찰에 참여한 지난 12일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시끌벅적했다.

이윽고 자율방범대원들의 ‘매의 눈’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도로에선 차가 오가는 길가로 행인이 길을 건너는 등 위험천만한 모습이 펼쳐졌고, 이들은 소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런 상황에 나서 현장을 수습, 정리했다. 하지만 대원들의 ‘매의 눈’이 무색하게도 신변을 위협할 만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 가게가 즐비한 큰 골목을 돌아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네온사인과는 정반대의 어스름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고등동 내 재개발 구역으로 현재는 약 20%의 주민만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도 자율방범대원들의 ‘매의 눈’은 여전했다. 아직 불이 켜져 있는 집들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한편,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 공간들을 빠짐없이 살폈다.

황재성 고등동 자율방범대장은 “고등동에 중국인이 많이 살고 있어 치안에 대한 걱정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중국인이라고 영화에서 비치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싸우는 건 본 적도 없고, 서로 조심하려는 모습도 있어 우려하는 것보다는 치안이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고등동에는 고등동자율방범대 외에도 또 다른 자율방범대가 있어 밤 안전을 수호한다. 주 4회 도보로 순찰 활동을 펼치는 고등동 부녀자율방범대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고등동 먹자골목 등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 활동을 진행, 혹시 모를 사건 사고에 대비한다.

인근 지동에서는 외국인들로 구성된 외국인자원봉사단이 방범 활동을 진행한다. 중국인 비중이 높아 중국계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동에서의 의사소통에도 불편함이 없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에서 8시까지 한 시간 동안 동 순찰을 진행, 지동의 안전한 저녁 시간을 책임진다.

노순자 수원시중국동포야간순찰단장은 “외국인, 특히 중국인이 많아 생기는 치안에 대한 걱정을 줄이고자 우리 스스로 방범 활동에 나섰다”며 “치안을 높이는 것은 물론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경기남부 최대 ‘차이나타운’ 고등동, 어떻게 성장했나

중국어 간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수원 고등동 일대의 모습. 오종민기자

그렇다면 ‘제2의 차이나타운’이라 불리는 고등동은 어떻게 성장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부터 고등동 일대에 한국계 중국인이 하나둘 모여 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계 중국인들이 모여 살기 전부터 고등동에는 수원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이 위치해 있어, 수원에서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연결시키는 버스 대중교통 허브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 2001년 도시정비계획 등의 이유로 터미널이 이전하며 이 일대 상권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유동 인구가 감소하니 인근 가게들의 타격은 불가피해졌다. 임대료는 저렴해졌고, 공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임대료가 저렴해지자, 그 틈을 탄 한국계 중국인들이 하나둘 발을 붙이기 시작했다. 서울 대림동, 안산, 시흥 등 전국 각지에서 소문을 들은 한국계 중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터를 잡은 것이다. 또 고등동 바로 앞에는 수원역이 위치하다 보니 이곳에 정착한 한국계 중국인들에겐 인근 도시로 일하러 나갈 때도 안성맞춤이었다.

중국어 간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수원 고등동 일대의 모습. 오종민기자

공인중개사 A씨는 “2000년대 초만 해도 권리금이 없었는데, 중국인들이 들어와 장사하며 북적이다 보니 권리금도 생기고 월세도 올라갔다”며 “현재는 33㎡(10평) 기준 권리금은 평균 2천만~3천만원 정도에 형성돼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선 모든 정보는 고등동에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고등동에는 읍면동 단위로 보면 수원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수원에는 총 6만8천633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데, 이 중 고등동이 5천60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고등동과 인접한 매산동이 4천437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들 중 대다수의 국적은 한국계 중국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등동은 ‘제2의 차이나타운’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권분석시스템에 따르면 고등동 주민들의 월평균 소비액은 156만원이었는데, 이는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시흥 정왕본동(93만원)이나 안산 원곡동(41만원) 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이 같은 흐름에 힘입어 수원시는 지난 2022년 고등동 갓매산로 일대를 ‘아시아 푸드스트리트’로 꾸몄다. 이보다 앞서 수원시와 경기도는 고등동 인근 매산동 역전시장 지하에 ‘다문화 푸드랜드’를 조성해 중국, 우즈베키스탄, 태국 등 아시아 음식점들이 입점하기도 했다.

경기일보DB

■ 이전한 경기도청, 사라진 성매매 집결지…고립되는 고등동

이같이 고등동은 제2의 차이나타운으로서 위상을 쌓아가고 있는 반면, 인근 지역으로부터 고립되는 등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특히 고등동은 경기도청이 지난 2022년 4월부터 광교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그나마 이 일대를 오가던 도청 공무원들의 발길마저 끊겼다. 이 때문에 고등동 안팎으로 ‘도청 공무원들이 빠지니 중국인들밖에 안 남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도청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B씨는 “중국인들이 더 유입되면 기존의 내국인 대상 상권도 중국인들에 맞춰 바뀌게 된다는 건데, 솔직히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며 “수천명 공무원이 있던 도청마저 이전하니 매출에 영향은 큰 상황이다. 고등동은 이미 ‘중국 동네’가 됐다”고 밝혔다.

옛 성매매 집결지가 위치했던 곳에 디저트 카페 등 다양한 가게가 들어와 활성화되고 있다. 오종민기자

또 인접한 매산동에선 지난 2021년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 이후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에서 고등동과 ‘거리두기’를 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현재 이곳은 성매매 집결지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 감성의 양식당, 카페 등이 새롭게 자리 잡은 상태로, 중국 가게들이 즐비한 길 건너편 고등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 건물주들은 중국인들에겐 아예 세를 내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공인중개사 C씨는 “옛 성매매 집결지 내 위치한 건물에 새롭게 들어온 가게 중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곳은 없다”며 “이미지를 바꾸려 하는 곳에 양꼬치 등 중국 가게가 들어오면 이미지가 안 좋아지다 보니 건물주들은 중국인에 임대를 내주려 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편견을 넘어 이웃이 되기 위한 노력

수원 고등동 행정복지센터와 바르게살기운동위원회가 외국인 쓰레기 분리 배출 안내서를 배포하고 있다. 고등동 행정복지센터 제공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등동에선 지자체와 시민단체 차원에서 도시 청결 등 외국인과 내국인의 공생을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22일 오전 고등동 먹자거리 일대는 전날 저녁 시끌벅적했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했다. 거리는 정리된 느낌이었지만, 곳곳엔 담배꽁초가 무단으로 버려져 있었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크고 작은 쓰레기봉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아침 시간대 고등동 일대를 청소하던 A청소업체 직원은 “고등동이 다른 동네에 비해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혼합해 배출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 쓰레기 분리수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이 많은 탓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쓰레기 분리수거가 생활화돼 있지 않은 중국인 등 외국인에게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고등동 행정복지센터는 연 1회 안내 책자를 배포, 쓰레기 배출 방법을 교육한다.

지난 2022년부터 고등동 행정민원팀과 시민단체 바르게살기운동위원회는 고등동에 거주하는 외국인 대상으로 정확한 쓰레기 분리배출 방법을 안내하기 위해 중국어와 영어로 번역한 쓰레기 분리배출 홍보물을 제작해 상가와 주택가를 직접 돌며 전달했다. 2022년 시범 운영을 거친 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분리배출 홍보 캠페인을 진행하며 외국인들의 쓰레기 분리배출 인식 개선에 나섰다.

채소영 고등동 행정민원팀장은 “고등동이 수원시내에서 가장 외국인 비율이 높은 동네이기 때문에 문화가 다른 탓에 쓰레기 무단 투기가 많았고, 이를 개선하고자 바르게살기운동위원회가 배포할 수 있는 생활 쓰레기 분리수거 안내문을 제공하게 됐다”며 “꾸준한 안내를 통해 쾌적한 고등동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 수원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진행한 다문화가족 대상 진학과정 설명회. 수원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공

동 차원을 넘어 수원시는 수원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여러 지원 단체를 조성해 화합과 공존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 이주민과 원주민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돕는다.

수원시는 이달부터 오는 11월까지 외국인 주민이 2천명 이상인 동 12곳을 선정, 이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전문가 교육 및 이주민-원주민의 상생 방안 토론 및 의견 수렴 등 온전한 사회 융화를 위한 활동을 진행한다.

수원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자녀 양육을 위한 진학설명회, 다문화 아동 이중 언어교육과 같은 가족사업은 물론, 취업 기초 소양 교육, 한국 사회 적응 교육 등 사회통합 사업과 성평등·인권 사업 등을 통해 다문화사회에 걸맞은 다문화 감수성 향상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이외에도 수원시는 외국인복지센터, 글로벌청소년드림센터 등을 통해 이민자 조기 적응 교육, 다문화 예비학교, 수준별 한글 교육 등을 통해 성별, 연령별로 필요한 교육이 제때 공급될 수 있도록 다양한 외국인 교육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조남철 수원시 다문화정책과장은 “수원시에 사는 외국인들은 다른 지역의 외국인들과 달리 돈을 벌어 다시 고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아닌 정주형 외국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앞으로도 시는 이들이 온전히 정착해 내국인들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K-ECO팀


※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겠습니다.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김정규 기자 kyu5150@kyeonggi.com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오종민 기자 fiveb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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