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우 “술만 안 마셔도 인생 두 배로 삽니다, 노래에 취합시다”

정상혁 기자 2024. 3.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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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歌曲 작사·작곡해 공연
배우 강석우 음악 인생

배우 강석우(67)씨는 황급히 집으로 향했다. 시상(詩想)이 사라질까 봐. 방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걸터앉아 상념을 적어 내려갔다.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내한 공연장에 앉아 가사집을 읽는데 단어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초췌한 이마. 그 쓸쓸한 문장을 읽는 순간 동작대교에 노을 지는 풍경이 떠올랐어요.” A4 용지를 빼곡히 채운 글을 줄이고 줄이자 가사가 됐다. “초췌한 내 이마에 노을이 물들 때/ 희미해진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리….” 흥얼거리며 거기에 곡을 붙였다. 2016년, 그의 첫 가곡(歌曲)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리움조차’.

요즘은 대본보다 악보를 더 자주 본다. 지난 18일에도 그는 악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서울 목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최근 작사·작곡한 가곡의 음원 제작을 위해 악기 연주를 녹음하는 날이었다. 오는 29일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배우 강석우와 함께하는 봄, 시를 노래하는 가곡의 밤’ 공연도 연다. 지금껏 직접 쓴 가곡 여덟 곡을 소개하는 자리. 신곡 네 곡도 처음 발표한다. 대구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으로 평가받는 ‘동무 생각’ 배경지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자극적인 세상이죠. 정서가 너무 빨라졌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 순한 노래가 필요합니다.”

◇배우에서 음악인으로

녹음실에서 악보를 든 채 웃고 있는 배우 강석우씨. 대구 공연에서는 그가 쓴 가곡을 소프라노 강혜정·김순영, 바리톤 송기창·이응광·이동환이 가창할 예정이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왜 가곡인가요?

“가곡은 ‘노래로 부르는 시’예요. 마음이 정갈해지죠. 어려서부터 가곡을 들어야해요. 요새 트로트 부르는 애들 보면 걱정스러워요. 그게 애들 감성이 아닌데…. 예전에는 공중파 TV에서 가곡을 뮤직비디오처럼 틀어줬어요. ‘대학가곡제’도 있었고요. 지금 젊은 세대는 ‘바우고개’라든지 ‘내 마음의 강물’이 뭔지도 모를 거예요. 가곡의 대(代)가 끊길 것 같다는 위기감이 있어요.”

곡은 언제 어디서 쓰시나요?

“움직여요. 자연스레 그 순간이 와요. 2017년에 오스트리아 여행을 갔는데요, 베토벤이 칩거하고 유서까지 쓴 하일리겐슈타트에 들렀어요. 베토벤이 살던 집을 지나 산책로를 걸었죠. 해는 뉘엿뉘엿 지고 예배당에서 종소리 들리고. 생전 고통받던 그 남자의 뒷모습이 떠올랐어요. 눈물 속에 미소 짓는, 한 남자를 보고 있네, 바람은 부는데…. 그날 숙소에서 바로 가사를 썼는데 다듬는 데 10개월 걸렸어요.”

작가 정신이네요.

“제 마음에 안 드는데 세상에 내놓을 수 없죠. 요행을 바랄 수는 없지 않겠어요. 얼마 전에 신곡 ‘가을 그리고 겨울’을 녹음하는데 성악가 표정이 어둡더라고요. 저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날 밤 악보 찢어버리고 새로 썼어요.” 이날 녹음실에서 만난 바리톤 송기창(54)씨는 “곡이 훨씬 좋아졌다”며 웃었다.

◇삶의 매 순간 노래가 있었네

1979년 개봉한 영화 '여수'에 출연했을 당시 모습. 데뷔작이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은 없다. 강씨는 “내 음악의 원천은 교회 주일학교”라고 했다. “다섯 살 때 서울로 이사 와서 어머니 따라 교회를 다녔죠. 퇴계로5가에 있던 충현교회.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성가대 하면서 음계와 화성을 배웠어요. 어려도 제대로 못하면 성가대에서 잘릴 정도로 지휘자 선생님이 엄했죠.”

무섭지는 않았나요?

“성가대 경연대회만 나가면 1등이었어요. 프라이드가 생기니 즐거웠어요. 그리고 이해가 금방 금방 됐어요. 건반도 남들 치는 거 뒤에서 보면서 배웠고요.”

영재였던 건가요?

“6학년 때 학교 앞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어요. 선생님이 ‘지금 저 소리 무슨 음인지 아는 사람?’ 하시길래 대답했죠. 솔요. 건반을 쳐보시더니 ‘맞네’ 하시더라고요. 음악적인 소양은 있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요.”

초등학교 시절 충현교회 성가대로 활동했던 배우 강석우(맨 오른쪽 위). /강석우 제공

중학교 밴드부에서 드럼을 치고 지휘로 교내 합창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넉넉지 못했던 시절, 진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재수 끝에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기겁하셨죠. 크리스천 집안에서 불교대학 가는 것도 모자라 연기까지? 그래서 ‘영화음악 만들려고 한다’고 둘러댔어요.” 실제로 ‘대학가요제’에 나가기도 했다. 예선에서 미끄러졌지만.

그런데 배우가 됐네요.

“1978년 영화진흥공사에서 ‘남녀 신인 배우 모집’을 했어요. 1회였어요. 친구가 알려주더라고요. 해보라고, 뽑힐 것 같다고. 프로필 사진을 정면·측면·전신 석 장 내야하는데 한 장에 당시 2500원이었어요. 돈이 어딨겠어요. 친구들이 모아서 줬어요.”

한 방에 합격하셨죠?

“남녀 딱 한 명씩 뽑았거든요. 경쟁률이 800대1 정도. 그리고 웃긴 게 그 대회가 이듬해 사라졌어요. 마치 저 배우 만들어주려고 누가 설계한 것처럼요. 전부 어머니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데뷔작부터 화제였다. 1979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 ‘여수’에서 당대 최고의 여배우 윤정희와 호흡을 맞췄다. 스물두 살 때였다. 이후 드라마 ‘보통사람들’(1982), 영화 ‘겨울나그네’(1986)까지 순탄한 흥행이 계속됐다. “남들이 어찌 볼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었어요. 영화 하나로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았거든요. ‘여수’는 개런티도 못 받았는데요.”

촬영은 즐거웠나요?

“한국은 ‘술 권하는 사회’ 아닙니까. 첫 만남부터 헤어질 때까지 술이에요. 제가 술을 못해요. 분위기를 못 맞추니 외톨이였죠. 어느 정도는 제가 거부한 면도 있지만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공연장 다니고, 그림 보러 가고요. 음악 많이 들었죠. 명동이든 방배동이든 소문난 음악 카페가 있으면 가서 죽치고 있었어요. 윌리 넬슨이나 사이먼 앤 가펑클 같은 팝송을 많이 들었어요. 색소폰에 꽂혀서 선생님들 찾아다니며 배우기도 하고요. 그 시간들이 지금 빛을 보는 것 같아요. 술만 안 마셔도 인생 두 배로 살 수 있어요.”

◇음악 어려워하지 마세요

라디오 방송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옮긴 2017년 오프라인 공연. /크레디아

그의 이름이 대중에 다시 한번 각인된 건 라디오 덕분이었다. CBS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했다. 매일 고민했다. 그 역시 라디오로 ‘한상우의 나의 음악실’을 들으며 클래식을 공부한 청년이었기에. “클래식은 어렵다”는 인식을 깨고 싶었다.

애청자가 무척 많았습니다.

“학생처럼 공부했어요. 물론 작가가 있긴 해도, 어설프게 인터넷에서 주워 읽은 걸로는 버틸 수가 없거든요. 재미도 있어야 하고요. 클래식과 클래식 바깥 이야기를 쉽게 연결하려고 했어요.”

매일 7년이었네요.

“진짜 수도하듯이 살았어요. 웬만하면 저녁 6~7시에는 집에 들어갔어요. 숙면하려고 노력했고요. 마음이 고요해야 하거든요. 안 그러면 다음 날 아침이 복잡해요.”

문외한도 마음 편히 듣는 방송으로 소문나면서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앞세운 클래식 공연도 2017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전석 매진. “그래도 가장 큰 성과는 ‘10시 가곡’ 코너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매일 아침 10시면 우리나라 가곡을 틀었다.

왜요?

“우리 정서에 맞는 깊은 노래가 많아요. 처음 PD에게 제안하니 반응이 별로였어요. 그래서 생방송에서 즉흥으로 선언해버렸죠. 앞으로 매일 한 곡씩 틀겠다, 직접 작곡에도 도전하겠다. 약속하면 꼼짝없이 지켜야 하잖아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지난 18일 녹음실에서 만난 배우 강석우, 소프라노 김순영, 바리톤 송기창씨(왼쪽부터). 대구 공연에서 신곡 '그대의 찬가'를 부를 예정인 김순영씨는 "노래가 맑다"며 "작곡가의 성격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TV조선 건강 프로그램 ‘다시 사는 이야기-기사회생’도 진행한다. 그 역시 기사회생한 적이 여러 번이다. 2021년이었다. “헬스장에서 양말을 벗는데 허리에서 ‘뻑’ 소리가 나면서 쓰러졌다”며 “병원에 실려가는 바람에 생애 처음 라디오 펑크를 냈다”고 말했다. “화장실도 기어서 갈 정도였는데, 그래도 다음 날에는 복대 차고 녹음하러 갔습니다.”

눈도 안 보이셨죠.

“이듬해 코로나 백신 3차 접종하고 눈이 컴컴했어요. 특히 왼쪽 눈이 옅은 먹물 칠한 것처럼요. 라디오 진행도 더는 할 수가 없었죠. 밤에 불 다 끈 집을 걸어다니면서 ‘이게 내 현실이 되면 어떻게 하나’ 싶고…. 눈 감고 노래 많이 들었어요. 다행히 한 달쯤 지나니 괜찮아졌습니다.”

아내 나연신(58)씨의 지극정성이 있었다. 첫눈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지만, 프러포즈 대사가 “우리 부모님 모시고 살 수 있느냐”였던 남자.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알겠다”고 답한 여자.

아내를 향한 헌정곡도 쓰셨죠?

“제목이 ‘시간의 정원에서’ 입니다. 30년 넘는 세월 함께해준 고마움. 10개월 동안 썼어요. 부부 금실은 인생의 목적을 ‘가정’에 두면 좋아지는 것 같아요. 다투면 한두 시간 안에 먼저 사과합니다. 아내도 툭툭 잘 털어주고.”

‘석우’(石雨)는 예명이다. 비온 뒤 돌처럼 깨끗하게 살라며 지난해 작고한 김수용 감독이 지어줬다. 강씨는 지난해 집에서 고급 오디오를 싹 치웠다. “하이엔드부터 진공관까지 여러 대 있었는데, 하나 남기고 다 처분했어요. 미리 예열도 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날 잡아야 들을 수 있는 건데 너무 큰 덩어리처럼 느껴져서요.” 그는 조만간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드라마 ‘종말의 바보’에 출연한다. 소행성 충돌이 예정된 지구 종말 200일 전.

그 순간이 오면 뭘 하실 건가요?

“끝까지 살 방도를 궁리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음악을 들어야겠죠. 침착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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