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 ‘진보 중년’을 아십니까

정시행 기자 2024. 3.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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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진보 콘크리트 지지층
4050세대 해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인 세대는 누굴까. 20~30대 MZ? 10대? 틀렸다. 바로 40~50대다. 뚜렷한 세대적 특성(cohort)을 공유하는 이들은 20년 넘게 '진보의 섬'이 되고 있다. /일러스트=김영석

중년에 이르면 세상일에 미혹돼 갈팡질팡하지 않고, 하늘의 뜻마저 알게 된다고 했다. 마흔 살 불혹(不惑)과 쉰 살 지천명(知天命)의 의미다. 이 무르익은 나이엔 삶의 이치를 깨달아 노인과 자식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어줄 거라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진보 중년’의 시대가 닥치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40~50대 중년이 가장 진보적인 세대가 됐다. 60~70대 이상 부모 세대와 10~30대 조카·자식 세대가 보수화되거나 사안에 따라 지지 정당을 유연하게 선택하는 것과 달리, 4050의 진보·좌파 색채는 이념의 외딴섬처럼 떠 있다. 이들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진보였다. 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문화·정치적 효능감은 다른 세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년의 사내와 여인들, 무슨 불덩이를 가슴에 품고 사는 걸까.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이달 초 조국혁신당 창당 후 갤럽이 여론조사를 했다. 29세 이하 지지율 0%, 30대 1%, 60대 8%, 70대 1%…. 그런데 40대와 50대만 각각 11%, 18%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조국혁신당은 자녀 입시 비리로 2심까지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대표가 ‘3년(현 정부 남은 임기)은 길다’ ‘검찰 독재 종식’ 같은 구호를 내걸고 만든 당이다.

같은 조사에서 40대와 50대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 신당의 지지율 합계가 각각 58%, 51%로 과반이었다. 특히 40대에선 민주당 지지율(47%)이 국민의힘(22%)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그래픽=송윤혜

2022년 대선 방송 3사 출구 조사에선 40대 유권자의 이재명 후보 투표율이 60.5%, 윤석열 후보 35.4%로 역시 가장 심한 진보 쏠림을 보였다. 2021년 지방선거 재·보선 때도 서울·부산에서 국민의힘 소속 시장 후보들이 당선될 때 유독 40~50대만 민주당 후보를 더 많이 찍어 화제가 됐다.

선거 때마다 중년이 모인 인터넷 카페와 단톡방이 들끓는다. “우리가 진보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다이아몬드 지지층이지!”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보수 찍을 일 없다”며 ‘1찍’ 인증을 줄줄이 올린다. 한쪽에선 “저도 40대지만 여러분 이해 안 됩니다” “제발 정신들 차리세요”란 한탄도 나온다.

폭주하는 진보 중년을 보는 20~30대는 어리둥절하다. “도대체 꼰대들 왜 이럼?” “자기들도 수험생 자식 키우면서 조국 지지하는 게 말이 됨?” 젊은 층은 몸은 쇠하기 시작하나 심장이 끓는 중년을 ‘진보 대학생’이라 비웃고, 어르신들도 ‘영포티(young forty·젊은 척하는 40대)’에 혀를 찬다.

지난 2023년 9월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지호 기자

배고픔 모른 X세대

통상 40대는 자산을 모으고 자녀를 키우며 안정을 희구하는 경향과 함께 보수화되는 연령 효과(age effect)가 나타나는 시기다. 그런데 이 땅의 4050은 연령 효과를 거스르는 첫 변종 세대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현 40~50대는 2차 베이비 붐 세대다. 40대 인구가 792만명, 50대 869만명으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머릿수가 많다. 30대 657만명, 20대 619만명, 10대 465만명, 10세 미만 333만명으로 쪼그라드는 다음 세대를 압도한다. 지금 조직과 사회의 허리를 이루는 4050이 60대, 70대로 갈수록 계속 한국 정치·사회 지형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청소년기부터 뚜렷한 세대적 특성을 공유해 왔다. 1970년대 초반~1980년대 초반 태어나, 산업화의 과실이 축적된 80~90년대 고도성장기와 민주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며 성장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배고픔을 모른 세대’로 일컬어진다.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른 '신인류 X세대'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선일보DB

이들이 중·고교에 다니거나 대학 신입생이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다. 서태지 팬덤은 탈이념과 탈권위, 개인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폭발하던 시기, ‘우리는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신인류의 문화 독립 선언이었다.

1990년대엔 대학 진학률이 두 배 폭증했고, 세계화·정보화 바람에 해외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이 유행했다. 천리안·하이텔 등 초기 인터넷 커뮤니티가 생겨 또래와 정서적 경험을 빠르게 공유할 수 있었다. 당시 10~20대는 세상이 규정할 수 없는 독보적 존재란 뜻에서 ‘X세대’로 불렸다.

2002년 ‘꿈★은 이루어진다’

풍요와 자유의 시절에도 아직 남아 있는 권위주의 문화와 이념의 그늘은 X세대를 무겁게 짓눌렀다. 49세 연구원 박모씨는 “고교생 때 ‘네 욕망에 충실하라’는 서태지와 015B 노래를 듣다 교련복 입고 군사훈련받곤 했다”고 술회했다. 교내 체벌은 만연한 반면, 속속 결성되던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교과서를 덮고 좌파 역사 서사를 가르쳐 학생들 피를 끓게 했다.

박씨는 “1994년 대학에 입학하니 86 운동권 선배들이 무용담을 풀고 주한 미군 철군가를 들려줬다. 토플 공부만 하면 ‘의식 없는 놈’으로 찍혔다”고 했다. 배꼽티에 귀 뚫고, 삐삐에서 핸드폰으로 갈아타던 X세대의 무의식에 왠지 모를 운동권 부채감이 싹텄다.

50세 중견기업 임원 신모씨는 “대학 졸업 직전 터진 1997년 IMF 사태는 ‘보수 대통령(YS)은 무능하다’ ‘기성 질서는 잘못됐다’는 인상을 깊이 남겼다”고 했다. 사실 X세대는 IMF의 타격을 정통으로 맞진 않았다. 이들은 고졸이든 대졸이든 취업 잘되고 내 집 마련도 쉬웠던 마지막 세대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자산 축적 속도가 가장 빠른 세대로 꼽힌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4강에 진출했다. 당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환호하던 젊은 붉은 악마 응원단의 모습. '우리가 광장에 모이면 못할 일이 없다'는 집단 효능감을 안긴 기억이다. /조선일보DB

X세대가 한창 대학에 다니거나 갓 사회에 나온 2002년은 기념비적 해였다. 6월에 축구 대표팀이 붉은 악마 응원에 힘입어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썼다. ‘우리가 광장에 모이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집단 효능감을 안겨준 강렬한 기억이었다. 9월엔 여중생 효순·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데 대한 반미(反美) 시위가 일었다.

그리고 노무현이 왔다. 언더도그였던 노무현 후보가 온라인 팬클럽 노사모와 함께 민주당 경선 돌풍을 일으키더니 12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마이뉴스와 딴지일보 등 신생 인터넷 매체가 20대에 집중해 불길을 퍼뜨렸다. 46세 대기업 부장인 김모(여)씨는 “당시 친구들 중 노무현 안 찍은 애들은 이상하게 보였다”며 “내 손으로 처음 뽑은 대통령은 노무현이고, ‘진보는 정의롭고 깨끗하다’는 편견이 한동안 각인됐다”고 말했다.

2002년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진보 정권을 재창출했다. 한국 최초의 정치인 온라인 팬클럽 '노사모' 회원들이 환호하는 모습. /조선일보DB

툭하면 보수 정권·검찰 탓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가족의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X세대 영광과 노사모의 자부심으로 뭉쳤던 젊은이들이 돌연 피해의식을 갖게 된 사건이다.

49세 변호사 한모씨는 “광화문 노제에 달려가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모르는 또래들과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김제동이고, 김어준 방송만 듣는다”며 “검찰, 보수 언론과 싸우는 조국을 지지한다. 다시는 검찰에 속지 않겠다”고 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족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서울 광화문 노제에 몰려나와 오열하는 지지자들. 이들이 10년 넘게 검찰과 보수 정권에 깊은 원한을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조선일보DB

진보 중년은 30대 때 직장과 가정에서 자리 잡느라 분투하는 동안 보수 정권이 이어지자 ‘내가 살기 힘든 건 보수 탓’이란 반감을 굳힌 경우가 많다.

45세 주부 정모씨는 이명박 정부인 2010년 결혼했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이런 절망적인 나라에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사실 난임이었다. 사정 모르는 시부모가 “정치가 너희 인생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자 연을 끊었다.

정씨 부부는 요즘도 이재명·조국 대표의 범죄 혐의에 대해 “왜 보수의 거악은 놔두고 진보의 작은 흠만 들추느냐” “검찰을 뒤집어엎어야 한다”란 게시물을 올린다. 48세 공무원 이모씨도 “2014년 세월호 참사는 문재인이 대통령이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태극기 ‘2찍’들과는 평생 얽히기 싫다”고 말한다.

이런 선배들을 보는 2030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정규직을 독식하고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 값 상승 덕을 본 중년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 정치 구도를 왜곡한다” “우린 상승의 기회 자체가 박탈됐는데 중년 좌파는 ‘MZ는 역사의식이 없다’고 훈계만 한다”는 성토를 쏟아낸다.

지난 2019년 서울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 입시특혜 의혹 진상 규명 촉구 3차 촛불집회. 당시 20~30대는 문재인 정부와 진보 진영에 등을 대거 돌렸고, 중년층 중에서도 맹목적 진보와 결별하는 이가 속출했다. /조선일보 DB

중년층 상당수는 2019년 조국 사태를 계기로 맹목적 진보를 손절했다. 친노·친문을 자처했던 47세 공기업 직원 양모씨도 그런 경우. 그는 “보수 정권이건 진보 정권이건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보수는 개인이 노력해 용 되는 걸 막지는 않는다”며 “그런데 진보가 ‘가재·붕어·개구리로 행복하게 살라’고 선동하며 자기들 특권만 챙기니 신물이 나더라”고 했다.

50세 금융사 임원 강모씨도 “노무현은 유일신, 문재인은 신의 아들, 유시민·조국은 사도로 섬기고 나머지는 악마화하는 다단계 집단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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