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허구헌날 싸움질할때…묵묵히 무기 만들던 ‘이들’이 나라 지켰다 [Books]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3. 2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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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조선의 만능 대장장이 서날쇠는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칼과 조총 등 병장기를 수리하거나 새로 만드는 중대한 임무를 맡는다.

25년간 신문기자로 일했던 저자가 한국과 일본에서 직접 만나 취재한 우리 사회 마지막 대장장이들은 물론 신화나 역사 문헌, 문학·미술·음악·영화 등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장간과 대장장이들의 이야기까지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정보를 한 데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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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나라 지킨 숨은 영웅
세계 첫 다연장 로켓 개발 돕고
무기·농기구·기계 만들었으나
역할의 중요성 인정받지 못해
저자, 대장간 수백년 역사 추적
김득신 18세기作 ‘대장간’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조선의 만능 대장장이 서날쇠는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칼과 조총 등 병장기를 수리하거나 새로 만드는 중대한 임무를 맡는다. 서날쇠의 대장간은 쓸 데 없이 싸움질만 하는 조정 신료들보다도 훨씬 생산적이었고, 청군의 공성전을 막아내며 50일 가까이 버티게 한 핵심 군수기지나 다름 없었다. 서날쇠는 도처에 깔린 적진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조가 남한산성에 지원군 동원을 명하는 임금의 격서를 방방곡곡 전달하기도 한다.

서날쇠의 모델이 된 조선의 실존 인물 서흔남은 실제로 병자호란 이후 전쟁에서의 공으로 천민 출신임에도 벼슬을 받았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됐다. 간의(천체 관측기기), 앙부일구(해시계) 등을 제작한 조선 최고의 기술자이자 관료였던 장영실 역시 대장장이 출신이었다. 장영실은 최해산이 1447년 세계 최초의 다연장 로켓인 신기전을 개발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간 ‘대장간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대장간과 대장장이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낸 책이다. 25년간 신문기자로 일했던 저자가 한국과 일본에서 직접 만나 취재한 우리 사회 마지막 대장장이들은 물론 신화나 역사 문헌, 문학·미술·음악·영화 등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장간과 대장장이들의 이야기까지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정보를 한 데 엮었다.

대장장이는 현대사회로 치면 공학 기술을 토대로 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였다. 한때는 이런 대장장이 신분이 기술자로 우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장장이들은 맨손으로 농기구부터 각종 연장, 무기, 기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면서도 철저히 무시 당해왔다. 세종의 총애를 받은 장영실조차도 훗날 탄핵을 당하고 만다. 저자는 “우리가 하찮게 여기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장간을 좀 더 깊고 폭넓게 들여다보자는 차원에서 꾸민 책”이라고 밝혔다.

“첨단 무기, 첨단 기술이라고 할 때의 ‘첨(尖)’이라는 글자는 뾰족하다는 뜻으로도, 날카롭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뾰족하면서 단단한 창, 날카로우면서 무르지 않은 칼을 만드는 부류가 대장장이다. 그들의 일터인 대장간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금속 소재 산업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대장간은 생동하는 기술 박물관이다. 그곳에 첨단기술 산업의 원형질이 숨쉬고 있다.” (p.7)

이야기는 구순이 다 돼가는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의 하루로 시작된다. 열 다섯 살부터 지난 70여 년을 대장장이로 지낸 그는 지금도 매일같이 쇳덩이 위로 망치질을 한다. 요즘 누가 대장간을 이용할까 싶지만 대장간 손님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필요한 연장 등을 주문하기도 하고, 고장 난 것들을 고쳐달라며 가져오는 이들도 있다.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굴을 채취하는 데 사용해온 ‘조새’라는 도구는 인천의 몇 안 남은 대장간에서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동·서양의 예술 작품에서 서로 다르게 그려진 대장장이의 다양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일례로 조선의 화가 김홍도, 김득신, 김준근 등이 그린 풍속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들은 흥에 겨운 모습이다. 하지만 18~19세기 스페인 화가 고야의 회화 ‘대장간’에서 대장장이는 어두운 표정으로 작업에 집중한다. 또 미국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2003)에서 해적들이 쓰는 전투용 검을 만드는 젊은 대장장이 윌 터너(올랜도 블룸)는 천민 출신임에도 명문가 딸을 흠모해 결국은 사랑을 쟁취하는 열정 넘치는 사나이로 등장한다.

‘대장간 이야기’는 머지않아 자취를 감출 지 모르는 대장간과 대장장이들의 지난 수백 년 역사를 집요하게 파헤쳐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대장장이들의 드러나지 않았던 업적들을 깨닫게 된다.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갖고 있었던 조선에서 장영실이 좌천되지 않았다면, 또 서흔남 같은 유능한 대장장이들이 방방곡곡에서 그들의 역할을 독려 받았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장간 이야기 / 정진오 지음, 교유서가 펴냄,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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