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미술사의 살아있는 역사, 그의 생애와 발자취 담긴 ‘이길범: 긴 여로에서’ [전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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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을 훌쩍 지나 구순을 넘기고 어느덧 100세를 바라보는 이의 눈에 담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70여년의 화업, 한 세기라는 생애 긴 여로를 걸어온 우당 이길범 작가의 발자취를 통해 수원을 포함한 한국 미술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지난달 27일부터 경기도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이길범: 긴 여로에서’에서는 온화하면서도 담백한 조형성을 가꿔온 이길범 작가가 수학기에 그린 작품부터 최신작까지의 작품 22점을 선보인다.
전시에선 ‘영모화조(새, 짐승, 꽃)’와 ‘인물’, ‘산수풍경’ 등 3가지 주제로 구분된 그의 대표작과 1940년대 습작과 집필서와 삽화가로 활동하던 작가의 젊은 시절 및 은사 이당 선생과의 추억이 담긴 아카이빙 자료 70여 점이 공개됐다.
1927년 수원군 양감면(현 화성시)에서 태어난 이길범은 17세가 되던 1944년 산수, 화조, 인물 등 전 분야에서 큰 명성을 떨쳤던 이당 김은호(1892~1979)를 만나 사제의 연을 맺었다. 이당 선생이 학생들을 지도했던 교습기관인 낙청헌 화숙을 비롯해 그의 문하에서 보낸 6년의 시간은 이길범 작가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출품을 앞두고 이당 선생은 제자가 스승보다 대성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길범에게 ‘우당’이라는 호를 지어주기도 했다.
영모화조는 이길범 작가에게 가장 의미 있는 소재로 꼽힌다. 작가는 지난 1949년 제1회 국전에서 따뜻한 봄볕 아래 노니는 오리를 담은 화조화 ‘춘난’으로 입선하며 등단했다. 1981년 수원백화점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의 대표작도 꿩과 까치를 그린 영모화였다. 낙청헌 화숙의 채색화풍 작화 경향은 시적 정취가 풍기는 이길범의 서정적인 화풍의 밑거름이 됐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의 수학기이자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인 ‘오수’(1948) 등을 만날 수 있다.
이길범은 근대기 마지막 어진(御眞) 화가였던 스승 김은호의 화풍을 수련하며 정밀한 필치와 품격있고 우아한 채색기범을 익혔다. 이에 6·25전쟁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했던 그가 작가로서의 재기를 위해 제4회 국전에 출품한 ‘추향’(1955) 역시 인물채색화였다. 이후 1988년부터 이길범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증과 심사를 거쳐 지정되는 정부 표준영정 제작에 세 차례 참여하며 인물화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전시에선 대중에게 가장 각인된 작가의 대표 인물화이자 그를 정부표준영정 작가로 만들어준 첫 작품인 조선 22대 왕 정조의 어진(1988), 정조대왕의 충신이자 수원화성 축성의 주역이었던 조선 후기 무신 조심태의 초상(2011)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영정 작품이 견고함과 위엄성을 자아낸다면 은은하게 피어난 연꽃과 담백한 색채로 표현된 여인의 모습이 담긴 ‘청아’(2003) 등의 인물화에서는 생기로움과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이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온화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특히 산수풍경화는 수원 작가로서 이길범의 정체성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소재는 수원화성이다.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 있던 묘를 최고 명당으로 꼽히던 수원부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명했는데, 삽화가 시절 이길범의 예명이 ‘이화산’이었다는 일화를 통해 고향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작가는 1982년 수원의 첫 한국화 동인 성묵회 결성을 시작으로 수원 미술계를 이끌어 왔다.
옅은 먹과 청량한 청색이 어우러진 대표작 ‘수원화성’(연도미상)을 비롯한 산수풍경화에서는 기나긴 여로를 지나 전통적 소재와 화법에서 자유로워지는 작가의 현대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실제 세상의 물리적 크기나 관점에서 나아가 대상을 재조합하거나 상상을 바탕으로 회화화하며 독특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채영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한국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조명이 부족했던 수원작가에 대한 재평가와 연구의 일환이자 수십 년간 지역을 빛내온 원로작가 이길범을 조명하는 자리”라며 “작가의 온화하고 담백한 미감이 주는 정서를 공유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6월9일까지.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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