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경제산책] 밸류업하려면 애널리스트를 자유롭게
객관적 분석대로 싣지못하고
천편일률 매수 권고만 가득
美선 금융위기 이후 책임강화
객관성 없으면 아예 발표 막아
자율·소신 기초한 분석으로
투자자 신뢰 회복 필요하다
증권사의 다양한 직군들 중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애널리스트가 아닐까 한다. 훌륭한 교육과 냉철한 판단으로 무장된 이들은 멋진 옷을 입고 근사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증권사를 중심으로 1100명 정도의 애널리스트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증권사 앱이나 포털을 통해 이들의 보고서를 볼 수 있다. 애널리스트마다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대해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우리가 모르던 정보와 직관을 많이 제공해 준다.
그런데 애널리스트의 기업 보고서 맨 위쪽을 보면 숫자가 적혀 있다. 바로 그 기업에 대한 애널리스트의 투자의견 점수이다. 1은 강하게 팔라는 권고이고 5는 강하게 사라는 권고이다. 바로 이 숫자가 문제이다.
위의 그래프를 보자. 파란색 막대는 시가총액이 가장 큰 9개 기업의 2021년 6월에서 2024년 3월 사이 주식 수익률이다. 2021년 6월은 코스피가 코로나 이후 가장 최고점에 다다른 시점이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같은 기간 애널리스트들의 해당 주식에 대한 권고 수준의 변화가 있다. 모두 4 →4이다. 모든 주식에서 가격이 오르고 내리고에 상관없이 3년 동안 변함없이 평가점수는 4이다.
여기서 4는 강력하게 사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주식을 사라는 권고이다. 포스코나 SK하이닉스와 같이 20% 이상 상승한 주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라는 신호 4를 보낸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머지 주식가격들은 평균 40%가 하락했는데 4라는 매수 신호를 계속 보낸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주로 증권사에 소속된 한국의 애널리스트들은 여러 곳의 눈치를 봐야 한다. 본인의 객관적인 분석대로 보고서를 쓰고 투자의견 점수를 주었다가는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대형 기업들은 증권사들의 영업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중요한 영업인 인베스트먼트 뱅킹(Investment Banking)에서의 일거리와 최근 급속히 증가하는 기업의 퇴직연금과 관련된 일거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소속된 증권사는 물론이고 기관, 기업, 고객의 눈치를 모두 봐야 하기 때문에 매도 의견은 고사하고 중립 의견도 내기가 쉽지 않다. 앞의 데이터 가이드(Data Guide) 자료에서 아무리 눈 씻고 봐도 매도 의견을 가진 기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유럽에서도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우호적인 평가가 문제가 돼왔지만 점점 감소하는 추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레터(letter·일종의 권고안)를 통해 애널리스트의 보고서에서 소속된 증권사의 책임을 강화했다.
특히 미국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심사하는 직원은 가장 노련하고 경험 많은 애널리스트이다. 이들은 보고서가 발표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용을 고치기도 한다. 미국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 내용에서 더욱 객관성과 정확성을 담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까? 우리나라에서도 금융투자협회 규정을 바꿔 애널리스트가 쓴 보고서를 발표하기 전에 증권사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비전문가 사무직원이 체크리스트 한 장 작성하고 끝내는 완전히 요식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애널리스트의 자유로움과 소명의식이다. 증권사 또한 평판도(reputation)가 장기적인 이익의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객관적인 주식 권고와 보고서가 생산될 수 없다.
이번에 정부에서는 국내 주식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정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과가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국내 주식의 제자리 찾기를 도와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애널리스트들의 자율적인 평가도 중요한 요소이다. 투자자들이 애널리스트들의 정보를 신뢰한다면 시장 참여자들이 증가하고 시장의 안정성과 유동성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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