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병하며 요양사 자격증 ‘일석이조’…제도 구멍은 숙제

한겨레 2024. 3. 2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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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진 사회복지사와 함께 하는 ‘재가요양’ ③ 가족요양사가 주도하는 재가요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가족의 재가요양을 위해 수많은 ‘가족요양사’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남편·자녀와 부모·손자 등 폭넓게 가능
‘하루 1시간, 월 20시간 근무’만 인정
‘중증 수급자’ 돌봐도 ‘중증가산금’ 제외
미비한 제도에 ‘개선’ 목소리도 높아

남편, 부인, 부모님 등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된 가족을 돌보기 위해 별도의 시간을 투자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을 가족요양사라고 부른다.

노인장기요양 등급자(수급자)에게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가족요양사의 범위는 매우 넓다. 부인, 남편, 딸과 아들, 며느리, 사위, 형제자매, 손자, 손자며느리, 손자사위, 배우자의 형제자매, 외손자, 외손자며느리, 외손자사위, 부모(양부모 포함) 등이 가족요양사로 일할 수 있다.

가족요양사들에 의한 재가요양의 현장을 가보자.

ㄱ요양사(84, 강서구)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출범 바로 직전 해인 2007년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부인을 지금까지 18년째 돌보고 있다. 부인은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2010년에 갑자기 건강이 악화했다. 이듬해인 2011년 ㄱ요양사는 손수 요양보호사자격증을 따서 재가요양의 일급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섰다.

전신마비에 소변줄을 낀 부인을 화장실까지 옮겨서 씻기기 어렵게 되자 복지용구의 하나인 이동욕조를 대여해 목욕할 때마다 거실에 펼쳤다가 회수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또 소고기와 인삼 같은 좋은 식재료를 갈아 죽을 만들어 꼬박꼬박 하루에 2끼씩 부인의 식사를 챙기고 있다.

ㄱ요양사는 현재 양쪽 무릎이 좋지 않아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싶지만, 자신이 수술을 받으면 부인의 재가요양에 차질이 생길까봐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식들에게 수술비 부담을 주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ㄴ요양사(46, 마포구)는 50대 젊은 나이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2년간의 입원생활 끝에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2011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욕창 예방을 위해 한 시간에 한 번씩 몸 자세를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밤에도 곁에서 쪽잠을 자야 할 정도로 중증인 어머니의 재가요양에 힘쓰느라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과 혼인이 쉽지 않았다.

기관지를 절개해 유동식을 공급받고 소변줄을 끼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는 월 1회 병원 가정간호사의 방문간호를 받고 연 2회 응급차를 호출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등 간병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함께 사는 남동생의 지원이 없다면 누나 혼자 열성을 다해도 어머니의 재가요양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남동생은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는 정규직 야간 일자리에 취업해서 번 돈으로 간병비를 보태는 것은 물론, 낮 시간대에는 어머니 곁을 지키는 등 효성이 지극하다.

20대 후반부터 어머니 재가요양에 매진해온 ㄴ요양사는 요즘 근골격계 건강이 좋지 않아 일반요양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일주일에 세 차례 초저녁 시간대에 세 시간씩 이뤄지는 일반요양사의 방문요양서비스 시간대를 활용해서 헬스장을 다니고 있다.

2남1녀 중 둘째 아들인 ㄷ요양사(66, 성동구)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2011년에 요양보호사자격증을 땄다. 어머니는 처음 2년간은 거의 일어나지 못했지만 ㄷ요양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씩 호전될 기미를 보이자 어머니를 부축해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어머니 혼자 안전손잡이를 잡고 걸을 정도가 되자 ㄷ요양사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는 ‘재활훈련’을 생활화했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감지한 ㄷ요양사는 5년 전부터는 평일 오전에 세 시간씩 일반요양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식사와 간식거리 준비, 방 청소 같은 일은 자신이 도맡아 하고, 일반요양사에게는 ‘어르신과 함께 화투치기’ 등 어머니의 인지능력 퇴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문요양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족요양사에게도 ‘중증케어 가산금’ 지급해야

노인장기요양 1·2등급을 받은 수급자들은 대부분 침대에 누워서 생활할 정도로 중증이어서 돌보는 데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숙련된 요양사가 아니면 중증 수급자를 돌보기 힘들다.

정부는 이런 사정을 감안해 1·2등급 수급자에게 하루에 세 시간 이상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반요양사에게 하루 3천원의 가산금을 지급한다. 이 가산금을 ‘중증케어 가산금’이라고 한다. 가족요양사는 급여 수준이 일반요양사에 비해 훨씬 열악함에도 중증케어 가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가족요양의 세 사례 가운데 ㄴ요양사는 어머니가 1등급이어서 온종일 케어해야 함에도 중증케어 가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루 3천원씩 한 달 30일 기준으로 산정하면 월 9만원에 불과하다.

가족요양사는 대부분 하루 한 시간씩 한 달에 20시간만 요양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간주해 그에 해당하는 급여를 지급하도록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다만 수급자가 폭력 성향, 피해망상, 부적절한 성적 행동 등 문제행동을 보이거나, 배우자 가족요양사의 나이가 65살을 넘길 경우에는 하루에 90분씩 한 달에 45~46.5시간 요양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규정해 일반적인 가족요양사에 비해 2배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을 뿐이다.

ㄴ요양사 같은 수많은 가족요양사가 중증 수급자를 돌보기 위해 24시간 돌봄체제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 20시간밖에 요양서비스 시간을 인정받지 못한 채 중증케어 가산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은 개선돼야 한다는 게 재가요양 현장의 목소리다.

재가요양의 질 관리 중심축은 사회복지사 방문수행

정부는 내년부터 방문요양센터가 가족요양 수급자에게 제공하는 방문요양급여 현장 가운데 절반 이상에 사회복지사 등을 보내서 급여관리(방문수행)를 하지 않으면 해당 월에 가족요양사가 제공한 전체 방문요양급여의 10%를 삭감하기로 했다. 올해는 계도기간이다.

가족요양 수급자를 대량으로 확보하기 위해 가족요양사들에게 급여를 조금 더 주는 유인책을 쓰는 대신 사회복지사의 방문수행을 포기하는 방문요양서비스 업체들이 나타나 몸집을 키워가자 이를 제어하기 위해 급여 삭감 카드를 들고나온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방문수행을 포기하는 것은 사회복지사를 고용하지 않음으로써 인건비를 줄여 가족요양사들에게 주는 급여 인상분을 조달하는 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의 방문요양서비스 현장에 대한 월 1회 방문수행은 재가요양의 질을 관리하는 중심축임에도 의무화되지 않아서, 가족요양사 급여의 열악함을 이용한 업체들에 의해 방문수행 포기 사태가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가족요양이 오래 진행되면 될수록 가족요양사들은 지치고 고립되고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의 방문수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일반요양보다 크면 크지 적지 않다.

가족요양사에게 자격증은 ‘일석이조’

요양사 자격증은 가족의 재가요양을 도우면서 일정 수입도 올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집 근처에 있는 요양보호사교육원에서 320시간의 교육을 받은 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운영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240시간의 강의실 교육과 80시간의 재가요양센터 및 요양원에서의 실습과정을 통해 자신의 노후건강을 성찰해보는 가외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올해부터 늘어난 80시간의 교육과정은 대부분 치매 관련 내용이다. 지난해까지는 요양보호사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도 인지활동형 방문요양서비스를 하려면 ‘치매 교육’을 따로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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