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사직할 결심, 무단퇴사할까?[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32)

2024. 3. 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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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사직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근래 ‘사직’이 화두입니다.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한 전공의, 대학병원 교수의 사직서 제출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직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퇴사하기 한 달 전쯤에 회사에 사직 의사를 말합니다. 늦어도 2주 전쯤에는 말합니다. 사직을 언제 말해야 하는지 노동법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습니다. 회사가 새로운 사람을 찾을 시간을 주거나, 일을 넘겨주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주는 예의의 차원입니다.

반대로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알려야 합니다. 만약 회사가 이를 지키지 않고 30일 전에 해고 통보를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30일 치의 임금을 직원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26조). 하지만 이 규정은 사장이 근로자를 해고할 때 적용되고, 근로자가 사직할 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직원은 언제든지 일을 그만둘 수 있고, 강제로 근로를 하게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퇴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7조). 만약 특별한 계약 기간이 없다면, 어느 한쪽이 계약을 끝내겠다고 통보할 수 있습니다. 사직서를 언제 제출할지는 법에 정해진 날짜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통보를 받고 나서 한 달이 지나면 계약이 끝나게 됩니다(민법 제660조 제2항). 이 규정은 회사가 직원의 사표를 받아주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퇴사가 당혹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회사와 근로자 간의 사이가 최악의 경우, ①회사가 사직서 수리 전까지 취업 규칙상 무단결근으로 징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②이 기간이 퇴직금 계산 시 평균임금 산정 기간에 들어가게 돼 퇴직금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한편 ③회사가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예도 있습니다.

특히 근로계약상 “퇴직원을 퇴사 30일 이전에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은 다수 발견됩니다. 이 규정을 근거로 근로자가 사표를 제출한 후 근로계약이 해지되기 전에 직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실제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지 많은 질문이 있습니다.

■ 무단퇴사 손해는 입증이 어렵다

일단 “무단퇴사 시 회사에 1000만원을 지급한다” 같은 규정은 무효입니다. 노동법에 ‘위약 예정의 금지’ 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근로기준법 제20조). 그러면 회사는 실제로 손해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로자 퇴사로 인한 실제 손해 입증이 어렵습니다.

A사와 B씨는 2017년 3월 2일 머시닝센터(금속가공·절삭) 작업에 관한 고용계약을 맺었습니다. B씨는 입사한 지 4년이 다 돼가는 2021년 2월 25일 A사에 퇴사 통보를 하고, 다음 달 12일 퇴사했습니다.

회사는 근로자의 퇴사 과정에서 적절한 인수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근로계약서상 3개월 이전에 통보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회사는 1억400만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회사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의 인수인계 불이행이나 그로 인한 구체적인 손해 발생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손해와 퇴사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봐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광주지방법원 2022나59720). 많은 사건에서 이처럼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 무단퇴사 책임을 인정한 최근 사례들

그런데도 몇 개의 사건은 ‘성난 사장님’에게 일부 승소를 안겨주었습니다.

#1. 어느 안과 병원 사례에서는 의사인 근로자의 급작스러운 퇴사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의사 C씨는 2016년 3월 2일부터 D안과의원에서 성형안과 및 소아안과 봉직의(페이닥터)로 근무했습니다. C씨는 2018년 5월 8일자로 사직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근로자의 일방적 사직으로 인해 원고는 근로자가 전담하던 성형안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의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피고의 사직이 일방적이며 30일 이전 퇴직원 제출의무를 규정한 근로계약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수술 취소 환자, 다른 병원으로의 전환, 추가 진료 취소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고, 인정된 총합계액은 695만5340원(청구금액은 약 6000만원)이었습니다(고양지원 2018가단89721). 실제 손해를 입증한 사례입니다.

#2. 갑은 중국음식점 사장, 을 1은 총괄 매니저, 을 2는 조리원입니다. 근로계약서 제10조에는 “30일 전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적인 책임을 모두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을 1·2는 돌연 퇴사하고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갑은 ‘평균 매출이 1억원이었는데, 을 1·2의 퇴사로 4000만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손해배상책임은 3500만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1)일단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근로계약서는 근로자를 대체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취지인데, 인수인계를 충분히 했다는 등의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들의 행위는 이 사건 근로계약 제10조를 위반했다’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2)피고들이 부담할 손해배상 범위(금액)에서는 ‘매출이 감소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피고들의 퇴사로 인해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그 금액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직권으로 정했고(민사소송법 제202조의2), 을 1은 100만원, 을 2는 30만원이었습니다(순천지원 2022가단62458).

#3. 천안지원 2020가단112498 사건도 비슷합니다. 근로계약서에 ①무단퇴사 금지 ②인수인계 조항이 있고, 실제로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한 후 7일 만에 인수인계 없이 퇴사한 경우 계약위반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입니다. 역시 법원이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2017년에 시행)에 따라 금액을 재량껏 정했고, 인정된 금액은 500만원이었습니다(청구금액은 1억3000만원).

정리하면, 근로계약에 특별한 규정(①30일 전 무단퇴사 금지 ②인수인계 의무)을 두고 있고, 실제로 근로자가 협의 없이 퇴사한 경우 근로자의 책임이 일부라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 손해를 입증하지 못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민소법 제202조의2 규정을 적용해 직권으로 손해를 산정하기도 합니다.

※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손해배상 액수의 산정):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구체적인 손해의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운 경우에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에 의하여 인정되는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손해배상 액수로 정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근로자로부터 돈을 받기에는 소송비용 문제가 있습니다. 위 소송들은 “소송비용 중 90%는 원고(사용자)가,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라고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소송비용을 고려하면 사용자가 돈 받을 게 없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무단퇴사는 과거보다는 문제가 되기는 합니다. 노사가 이 문제로 다투기 전에 상대방이 바라는 게 뭔지 이해하고 조금씩 실천하는 게 어떨까요?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비비의 노래, ‘밤양갱’)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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