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 기간 항공기 안에선 무슨 일이...파일럿들도 금식? 기내식은?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우리나라에 생소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성스러운 기간이 있다. 바로 라마단(Ramadan)이다. 라마단은 이슬람 달력상의 9번째 달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코란의 첫 구절을 받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스러운 시기인 만큼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은 라마단 동안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는다. 금식을 통해 인내하며 과거에 했던 잘못에 대해 속죄하고, 소외되고 굶주린 이들을 돌아본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침도 삼키지 않는다고 한다.
라마단은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다. 국가마다 권위 있는 종교 기관이 새로운 달로 바뀌기 전날 초승달을 관측한 뒤 라마단의 첫날을 각자 발표하기 때문에 시작일이 하루 정도 차이 날 수 있지만 대체로 수니파는 사우디를, 시아파는 이란의 발표를 따른다. 필자가 거주하는 UAE의 경우 3월10일부터 4월9일까지 한달동안 라마단 기간이다.
비행기 조종사라고 해서 라마단의 예외는 아니다. 중동항공사에서 근무하는 필자의 특성상 비행을 하다 보면 옆에 앉은 조종사가 무슬림인 경우가 많은데 라마단 기간엔 일몰 때까지 물도 마시지 않아 조금 눈치가 보이곤 한다.
물론 기장은 “신경쓰지마~ 너 마시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해”라면서 날 안심시키지만, 그래도 도리상 남은 옆에서 물도 안마시고 쫄쫄 굶으며 금식하고 있는데 어떻게 혼자 어떻게 벌컥벌컥 음료수를 마시고 쩝쩝거리면서 밥을 먹겠나. 결국 나도 최대한 배려하는 차원에서 조용히 눈치보며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라마단 기간 때는 평소 하는 항공기 조종 일 외에 하나의 임무가 더 부여된다. 바로 정확한 일몰 시간이 언제인지 알아내서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해주는 역할이다. 일몰이 지나야만 그날의 라마단이 끝나고 물과 음식을 먹을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시간이 됐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기장 혹은 사무장이 기내방송으로 승객들에게 안내하고 나면 비행기 안은 작은 축제 분위기로 바뀐다. 중동 특산물인 다디단 대추야자를 오물오물 씹고, 하루 내내 못 마셨던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음식도 마음껏 흡입하면서 그날 고생했던 자신을 치하한다.
이렇게 낮 동안 금식을 한 이슬람교도들은 해가 지면 가족과 친척, 소외된 이웃 모두 함께 푸짐한 식사를 즐긴다. 이를 ‘이프타(Iftar)’라고 하는데 ‘금식을 깬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긴 단식 후 충분한 영양 공급을 위해 쌀과 구운 고기를 주 식단으로 모자랐던 영양분을 채운다.
때문에 라마단 기간 때는 저녁 이프타 뷔페를 찾아가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많은 레스토랑들이 푸짐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에 비무슬림에게 있어서도 라마단은 즐길만한 요소가 있는 행사다. 보통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 내외면 평소에 비싸서 가지 못했던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즐길 수 있으니 가격도 나쁘지 않다.
최근 라마단 풍경이 예전과 비교해 달라지고 있다. 예전만 해도 라마단 기간이면 레스토랑들이 낮에는 커다란 커튼을 쳐서 내부를 안 보이게 해놓고 영업했는데 최근 몇 년전부터 아무 규제 없이 문을 활짝 열고 영업을 개시했다.
예전에는 라마단 기간동안 워낙 규제가 까다롭다 보니 많은 식당들이 아예 문을 닫아버려 현지 언론이 ‘라마단 기간 중 이용 가능한 식당’을 소개하는 기사를 펴내기도 했지만 이젠 ‘라떼는 말이야~’식의 옛날 얘기가 됐다.
국제적인 관광도시인 두바이는 여행자들을 위해 라마단 기간에도 관광명소와 레스토랑, 가게를 평소처럼 운영한다. 일몰 뒤 가족, 친구들과 이프타를 즐길 수 있도록 쇼핑몰과 레스토랑의 영업시간을 자정 이후로 연장하는 등 도시의 밤은 라마단 기간에 더욱 길어지고 깊어진다.
물론 이슬람의 성스러운 라마단이라고 해서 모든 무슬림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 휴전이 불발된 채 전쟁의 공포 속에서 올해 라마단을 보내게 됐다.
미국과 유럽 나라 등 중재국들은 라마단 시작 이틀만이라도 일단 짧은 휴전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이조차도 불발됐다. 핵심 조건에 대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의 견해 차이가 워낙 큰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잇단 무력 충돌을 지속하면서 확전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재 가자지구의 상황은 처참함 그 자체다. 이스라엘을 피해 공중에다가 구호물자를 투하하고 배로 생필품을 실어서 나르는 등 각고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엔은 현재 가자지구의 4분의 1이상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며 특히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올해 라마단은 어지러운 중동 정세로 인해 평소처럼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는 것 같다. 금식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그 원래 취지처럼, 이슬람과 중동에 평화가 어서 찾아오길 바란다.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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