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내면 논문 통과?…8천억 번 출판사 "의혹 해소하겠다"

박건희 기자 2024. 3. 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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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기반 오픈액세스(OA) 출판사 MDPI
빠른 논문심사 과정·과도한 '특별호' 발간으로 부실 학술지 의혹
스테판 토체프 CEO "OA, 코로나 19 시기 큰 도움…기존 출판 시장과 상생할 것"
21일 오후 서울 HSBC 빌딩에서 열린 오픈액세스 출판기업 MDPI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는 스테판 토체프 MDPI CEO(최고경영자) /사진=MDPI


'부실 학술지' 의혹을 받는 오픈액세스 출판사 MDPI가 한국 학계에서의 불신을 해소하겠다고 나섰다. 최근 학계에서 게재료만 내면 논문을 내주는 이른바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s)'를 근절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가운데 국내 지사 설립을 앞둔 MDPI는 "(논문 심사 과정에) 의혹이 있다면 해소하고, 더 다양한 출판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18일 한국을 찾은 스테판 토체프 MDPI CEO(최고경영자)와 줄리아 스테페넬리 MDPI 과학전문위원회 총괄팀장 등은 20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미디어 세션에서 이같은 입장을 전했다.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MDPI는 상업적 오픈액세스 출판기업으로 420개에 달하는 오픈액세스 저널을 보유하고 있다.

오픈액세스(OA·Open Access)
높은 비용에 대한 장벽 없이 누구나 연구 성과물을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로 시작됐다. 연구자가 게재료를 내고 올린 논문을 누구나 내려받아 읽을 수 있다. 반면 스프링어(Springer) 등 기존 논문 출판 시장은 독자가 연간 구독료를 내는 유료 모델을 택하고 있다. 지식의 공공성과 개방성이라는 차원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학술 논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출판 모델이 오픈액세스다. 오픈액세스 출판의 수입은 독자의 구독료가 아닌 연구자가 내는 게재료에서 나온다. MDPI는 대표적인 오픈액세스 기반 학술 출판사다.

논문 게재료로 4년 새 8477억원 수익… '돈 내면 논문 실어준다' 논란 휩싸인 MDPI
국내 모 대학의 논문작성가이드. 논문 게재 전 부실의심 학술지를 주의하라는 내용이다. MDPI, 프론티어(Frontiers) 등이 거명됐다. /사진=C대 웹사이트 갈무리
한국연구재단 KRI 시스템에 등록된 대학 전임교수들의 2018~2020 년 간 논문 실적 정보를 분석해 MDPI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실적이 해당 교수의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연구. '연구 실적에 대한 요구가 강한 경우 MDPI에 논문을 게재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사진=한국경제학회 한국경제포럼 제16권 논문표지 갈무리


국내 석박사생들의 커뮤니티인 '김박사넷'에 지난해 8월 올라온 게시글. 오픈액세스 저널에 논문을 싣기 위해선 연구자가 게재료를 부담하는데 이는 연구과제 예산에 포함된다. 국가 과제의 경우 세금으로 게재료를 내는 셈이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진=김박사넷 갈무리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가 운영하는 SAFE(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는 '의심 학술지'에 대한 특징과 체크리스트를 안내하고 있다. 이중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s)는 돈만 지불하면 무조건 논문을 게재해줘 출판 윤리를 어기는 학술지를 말한다. 오픈액세스 출판 모델이 도입되며 화두로 떠올랐다. 독자가 아닌 저자에게 게재료를 받는 시스템이어서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는 등 논문 심사 과정을 간소화했다는 의심을 받는 학술지다.

SAFE가 명시한 의심 학술지의 특징으로는 △동료심사(peer-review)가 간소하거나 형식적이어서 원고 수정이나 편집이 제대로 없음(논문 제출과 출판 간 간격이 1개월 이내) △영향력 지수(IF) 등을 허위로 게재한 공격적 마케팅 △학술지 학문 범위가 너무 넓음 △편집부와 심사자의 정보가 불투명함 등이다.

서울대가 2023년 교육자료로 발행한 '부실 의심 또는 약탈적 학술지 이용 예방'에 따르면 공식적인 부실 의심 학술지 리스트는 없다. 비올리스트(Beall's List) 등 학자들이 내놓은 보고서로 그 규모를 추정할 뿐이다. 2022년 기준 부실 의심 학술지는 전 세계 약 1만 5500개 이상으로 매년 그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자료에는MDPI에 대한 내용만 따로 실려있다. "부실 의심 학술지 논쟁과 관련해 찬반 논쟁이 가장 뜨거운 출판사가 바로 MDPI"라는 것이다. MDPI는 2018년 6만 7000편 논문을 출판했는데 3년 뒤 출판된 논문 수가 24만편으로 3.6배 늘었다. 학술지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논문 1편당 게재료는 최소 500스위스프랑(약 74만원)에서 2400스위스프랑(약 365만 원)에 이른다. 이를 통해 2018~2021년 사이 전 세계 연구자들로부터 8477억원에 이르는 논문 게재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서 "MDPI의 빠른 논문심사와 특별호(스페셜 이슈) 논문의 과도한 발간이 부실 논쟁의 핵심"이라며 "MDPI는 학술지의 논문 투고에서 게재 승인까지 평균 38일이 소요되는 걸 자랑스럽게 선전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MDPI "보조 인력 6000명 투입해 심사 과정 간소화 … '논문 공장' 오명 벗겠다"
21일 서울에서 열린 MDPI 미디어 세션 /사진=MDPI

'부실 학술지' 논란의 중심에 선 MDPI가 21일 서울에서 미디어 세션을 열고 입장 표명에 나섰다. 스테판 토체프 CEO와 줄리아 스테페넬리 MDPI 과학 전문위원회 총괄팀장은 "MDPI의 논문 출판 과정은 전통적 학술 출판사와 다르지 않다"며 "의혹이 있다면 직접 만나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국의) 정책 결정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하는 얘기가 아닌 검증된 기준을 통해 의사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토체프 CEO는 "엄정한 동료심사 과정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논문 심사자(리뷰어)와 논문 편집자(아카데믹 에디터)가 매번 모든 논문을 심사하는 데 참여하며 기본적으로 학자 2명이 동료심사에 참여하지만, 필요에 따라 3명 이상의 추가 검토위원이 붙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자체 설문조사 결과 "평가자의 95%가 MDPI의 동료심사 과정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고 밝혔다.

38~40일 정도 소요되는 비교적 짧은 동료심사가 가능한 이유에 대해 토체프 CEO는 "전 세계적으로 MDPI 소속 보조 편집자(어시스턴트 에디터) 6000명이 근무 중"이라며 "논문 원고가 들어오는 즉시 학자와 편집자, 학계 사이 소통을 담당해 중간에 지체되는 시간을 줄였다"고 심사 구조를 설명했다.

스테페넬리 총괄팀장은 또 "기존 출판사에선 외부에서 초빙한 논문 편집자가 직접 동료심사 심사자를 찾고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MDPI는 이 과정에서 보조 편집자 등 인력을 활용해 그 시간을 줄인 것"이라며 "동료심사 심사자와 논문 편집자가 각자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 과정을 간소화했다"고 말했다.

과도한 특별호 발간에 대해 스테페넬리 총괄팀장은 "MDPI 뿐만 아니라 오픈액세스 출판 시장이 '논문 공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학문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는 논문을 철회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등의 노력으로 논문 공장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토체프 CEO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엔 바이러스와 관련된 연구 결과가 MDPI의 오픈액세스 시스템을 통해 연구자 사이에 바로바로 공유되면서 빠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다"며 "언제나 혁신적 연구성과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연구 결과를 공개적으로 나누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계속해서 더 좋은 연구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독료 기반의 전통적 출판 모델과 오픈액세스 출판 모델이 상생하며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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