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자들의 정의·진리 독점… 쪼개지는 민주주의[북리뷰]
르네 피스터 지음│배명자 옮김│문예출판사
극단·분열 치닫는 美사회 고발
인종·젠더 등 예민한 주제다룰때
단어 잘못 말했다간 ‘캔슬 컬처’
급진적 소수의 新독단주의에 일침
‘잘못된 단어’는 독일의 진보 성향 잡지 ‘슈피겔’의 워싱턴 특파원이 극단과 분열로 치닫는 미국 사회를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그동안 ‘진보의 무기’로 여겨졌던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과한 집착과 만나 어떻게 변질되는지 분석하고, 이를 포퓰리즘과 함께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으로 꼽는다. 2020년 대선을 지켜본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인종, 젠더 등 예민한 주제를 다룰 때 단어 하나만 잘못 말해도 경력이 끝장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이 급증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새로운 독단주의”로 명명한다. 소위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소수의 사람이 모든 정의와 진리를 독점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의견을 제압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의견의 통로를 좁히려 애쓰는 기이한 상황”이라면서 현실 감각을 잃고 ‘정체성 정치’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명쾌하고 과감한 필치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속도감 있게 추적한다. 특히, ‘사건’의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풍부한 사례를 가져온다. 예컨대,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쌓고 서평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에 오른 이안 부루마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미국 사회 ‘캔슬 컬처’(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에 대한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 됐는지 살피며, 물리학자이자 시카고대 교수인 도리언 애벗이 과학자들의 큰 영예인 존 칼슨 강연에 초대됐다가 왜 거부당하게 되는지 그 과정도 생생하게 재현한다.
부루마는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라디오 진행자의 회고담을 잡지에 싣기로 결정했다가 여론 재판을 받는다. 기사가 트위터를 중심으로 ‘디지털 폭풍’을 일으켰고 결국 부루마는 편집장 자리를 떠나게 된다. 소설가 이언 매큐언 등 일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그를 위한 성명서를 냈으나, 미투(Me Too) 운동이 거셌던 당시(2018년) 분위기 속에서 그는 속수무책으로 ‘캔슬’당한다. ‘뉴요커’ 칼럼니스트 지아 톨렌티노는 “최근 반대 세력이 우주의 균형을 되돌리려 애쓰고 있다”며 부루마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저자는 무죄 선고를 받은 이를 다른 방식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중의 심리를 존중하면서도, 그의 기사조차 꺼리는, 즉 ‘공개 포럼’ 형태를 허락하지 않는 냉혹함에 문제를 제기한다.
애벗은 존 칼슨 강연을 앞두고 “우리와 맞는 연설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취소된다. 원인은 과거에 올린 유튜브 영상이었다. 애벗은 소수자 대학 입학 지원인 ‘적극적 우대 조치’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당시 영상에서 “지원자를 오로지 학자로서 얼마나 유망한가만 따져 선발해야 한다”고 호소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를 ‘보수 성향’의 사람으로 규정했고, 학생들 사이에서 불신임 공개 선언을 일으킨 것이다. 저자는 어쩌다 과학자가 정치적 견해 때문에 견책을 당하는 지경까지 왔는지 탄식한다.
책은 언론을 비롯해 학교, 공공기관, 문화예술계 등 미국의 일상생활을 좌우하는 모든 곳에 ‘잘못된 단어 공격’, 즉 ‘새로운 독단주의’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열린 논쟁’이 사라진 대학의 현실을 우려하는데, 대학이 “반대파의 입을 막으려는” ‘정치적 행동주의의 시험장’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예컨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2021년 경찰의 흑인 폭행 사건을 다양한 차원에서 살펴보고 싶었으나, 순탄치 않았다. 학생들은 질문 자체를 근본적으로 반대하거나, “흑인 차별을 인종주의 이외에 다른 근거로 해명할 위험이 있다”고 후쿠야마를 공격했다.
미국이나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 나은 주장을 펼치려 애쓰는 대신 자신의 세계관 강화에 몰두”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자신의 정서적 안정과 안전을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지금 한국 정치권과 한국 사회 풍경 그대로다. 저자는 “자신의 견해를 절대화”하는 ‘정체성 정치’, 즉 ‘새로운 독단주의’를 ‘진보적 관심사의 관료화’라는 다른 말로 꼬집기도 한다. 그 결과는 “정치발전이 아니라 사회분열”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책은 완벽하게 ‘지금, 여기’의 이야기로 치환된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공허한 구호, 그리고 대중과 유리된 채 공중에 떠다니는 공약들이 난무한 때, 보다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 방안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 극단의 세계에서 한발 물러나 바람직한 사회를 그려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필독서다. 232쪽, 1만7000원.
■ 괜찮은 정치인 되는 법
브라이언 C. 해거티 지음│박수형 옮김│서해문집
성공하는 정치인 위한 지침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 관계없이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미사여구 대신 우직한 조언건네
‘괜찮은 정치인 되는 법’은 보다 직관적이고 ‘정직한’ 지침서다. “정치인이라면 해결책이 되어야 한다”고 직언하는 책이다. “당신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다른 입장을 가진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라거나,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 나름의 관심사와 그 관심사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정언은 순전하고 우직해, 오히려 큰 울림을 준다. 미국의 선출직 정치인 출신으로 동기부여 강사로 활동하는 저자는 유권자들에게도 “건설적 변화의 주인공으로 나서달라”고 요청한다. 책은 정치를 “아주 많은 사람을 도우며, 상당한 보람과 대단한 영예”를 누릴 수 있는 일, 그래서 “가장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인간 활동”으로 정의한다. 마음에 가득했던 ‘정치 혐오’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은 착각일까. 200쪽, 1만75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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