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칩 이식’ 규제 풀면… 머스크 능가하는 ‘K-뉴럴링크’ 나올수도”[M 인터뷰]

조율 기자 2024. 3. 2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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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국내 최초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 임창환 교수
뉴럴링크, 사지마비 환자 임상
생각만으로 온라인 체스 즐겨
韓기술력 좋지만 임상 法 없어
이러다 해외서 수입해야할 판
美 연구원 활동하다 BCI 접해
기술대중화 위해 쓴 책만 10권
사람에 필요한 기술 개발 목표
정부, 연구 가이드라인 마련중
연구진 모아 소통할수 있게해야
지난 19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만난 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가 밝게 웃고 있다. 사진은 임 교수의 집무실에 걸려있던 한 포스터의 뇌 해부 이미지를 레이어 합성했다. 박윤슬 기자

“스크린을 쳐다보기만 해도 커서가 움직입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아도 제 삶이 크게 달라졌어요.”

지난 20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두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한 임상시험 환자의 모습을 최초로 공개했다. 영상에는 지난 2016년 다이빙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놀란 아르보(29)가 생각만으로 마우스를 자유자재로 옮겨 음악을 끄거나 온라인 체스를 두는 모습이 담겼다. 아르보는 “6시간씩 장시간 게임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며 “이전에는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사지 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여 피아노를 치고, 생각이 기계를 통해 전달돼 가족과 소통하는 것. 영화에서나 봤던 꿈 같은 일들을 현실로 한 발짝 다가오게 만든 기술의 이름은 ‘BCI(Brain-Computer Interface·뇌-컴퓨터 인터페이스)’다. 과학자들은 뇌의 신경세포(뉴런) 간 연결로 나타나는 특정 전기신호를 포착하고 그것이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해당하는지 확인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면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뇌파를 외부 기계와 연결하는 기술이 BCI 기술이다.

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박윤슬 기자

한국에도 BCI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 중 국내 최초로 BCI 연구를 시작해 현재 세계적 연구자로 자리매김한 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를 지난 19일 만났다. 박사과정 때부터 뇌파 연구를 이어온 임 교수는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BCI 연구를 접한 후 국내 최초로 BCI 연구에 뛰어들었다. 기술의 선두주자로서 연구를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술에 대한 저변도, 인식도 없으니 BCI가 무엇인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호기심만을 충족하는 연구는 아닌지, 실제로 쓰일 수 있는 연구인지 등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어요. 연구비 수주를 받을 때도 기술에 대한 필요성을 어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임 교수가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BCI에 대한 대중의 친밀도를 높이고 연구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어느덧 10여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된 임 교수는 올해 1월 ‘뉴럴링크’라는 책을 통해 BCI 기술의 원리와 역사, 이슈와 전망에 대해 소개했다. 임 교수는 “확실히 지금은 BCI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졌다”며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학생들도 많아지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

최근 ‘뉴럴링크’ ‘싱크론’ 등 기업이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BCI 기술은 뇌에 칩을 직접 이식해 뇌의 신호를 포착하는 ‘침습형 방식’이다. 뉴런에 발생하는 미세 신호를 직접 읽을 수 있어 신체 외부에 기기를 부착하는 ‘비침습형 방식’보다 뇌의 신호를 정확히 잡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임 교수는 “뇌에 칩을 넣어 로봇팔을 움직여 물건을 집고 옮기는 등 큰 행동들은 20여 년 전부터 구현 가능해졌다”며 “뉴럴링크가 개발하고 있는 칩의 차이점이 있다면 기존의 바늘과 같은 딱딱한 전극 대신 얇은 전극실을 뇌 표면에 박아 뇌 손상을 최소화한 기술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또 기존 BCI 방식에 비해 하나의 전극이 담당하는 신경세포의 숫자가 적어, 더 높은 밀도로 더 세밀하게 신경 신호를 읽어올 수 있다”며 “안전성이 높고 더 정밀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뉴럴링크’ 설립한 일론 머스크.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해외와 달리 국내의 경우 침습형 BCI 기술 개발은 더딘 상황이다. 아직 국내에는 뇌에 칩을 이식하는 임상 수술을 허가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뉴럴링크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사지 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 참가자를 모집할 수 있었다. 최근 중국에서도 인간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임상을 진행 중이다. 임 교수는 “쥐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과 실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동물실험만으로는 인간에게 적용 가능한 기술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한국의 독자적 연구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이어 “임상시험이 허용된 국가와 기술격차는 당연히 벌어질 것이고, BCI 기술을 해외로부터 수입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다행히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BCI 연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 바이오 헬스 신산업 규제 혁신 방안 중 하나로 BCI를 뜻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MI)’를 꼽았다. 복지부는 BMI 연구에 대한 윤리·과학적 타당성을 심의하는 자율기구를 설립하는 등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BCI 기술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이 임 교수의 설명이다. 국내에 있는 10여 팀의 연구진이 밤낮으로 연구한 덕분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줄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것이 임 교수의 주장이다.

임 교수는 “일론 머스크는 ‘뉴럴링크’에 전 세계의 BCI 기술 관련 전문가를 모으고 7000억 원 가까이 투자하고 있다”며 “반면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에는 머스크처럼 언제 상용화될지 알 수 없는 기술에 장기간 수천억 원대의 돈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민간기업이나 개인이 등장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임 교수는 국가가 그 역할을 해줄 것을 제안한다.

“정부가 구심점 역할을 해줬으면 해요. 개별적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연구진을 한곳에 모아 서로 소통하며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는 ‘뉴럴링크’를 대응할 수 있는 ‘K-뉴럴링크’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임 교수는 뇌공학, 패턴인식, 기계학습 등의 분야에서 국제 저명학술지에 2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해왔다. 현재는 사용자의 생각을 텍스트로 기록하거나 음성으로 내보낼 수 있는 ‘언어 BCI’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임 교수가 계속되는 연구에도 잃지 않으려는 신념은 바로 ‘사람’이다.

“공학은 결국 사람들에게 쓰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하거나, 단순히 논문을 내기 위한 연구는 좋은 연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연구를 위한 연구’는 지양하라고 가르칩니다. 저희의 연구는 BCI라는 큰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작은 돌을 만들어 하나씩 쌓아 올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의미 있는 연구를 계속해나가고 싶습니다.”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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