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버너' 쪽방촌선 필수품인데…작동 안하는 화재경보기[르포]
화재 발생 시 소방시설도 문제…사이렌 듣지 못했다는 증언 나와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쪽방촌에선 가스버너로 취사할 수밖에 없어요" "빨간 불만 깜빡거리고 소리는 듣지 못했어"
지난 20일 발생한 쪽방촌 화재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말이다. 5층짜리 건물 3층 쪽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5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70대 남성이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하루 뒤인 21일 방문한 서울 중구 후암로의 쪽방 화재 현장은 예상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다. 쪽방 10개가 모여있는 3층은 온통 검은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현장에는 먹다 남긴 컵라면과 이불 등이 어지럽게 방치돼 있었다. 미처 빠지지 않은 탄내가 남아 숨쉬기가 힘들었다.
◇ 쪽방 '필수품' 가스버너, 이번에도 화재 원인
화재는 사망한 50대 남성이 방에서 이동식 가스버너를 켜 둔 상태로 잠이 들었고 과열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3층 현장에서는 실제로 사망한 50대 남성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스버너와 가스통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방 당국이 확보한 주변인 진술에 따르면 50대 남성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특히 평소에도 난방을 위해 가스버너를 자주 사용했다는 후문이다.
동네에서 약 60년을 거주했다는 80대 주민은 사망한 남성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음식을 만들려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쪽방촌에 거주하는 이들은 가스버너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었다. 화재가 난 건물 5층에 거주하고 있는 임 모 씨(65)는 "건물에 공용 주방이 있지만 취사도구는 없다"면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선 각자 방에서 가스버너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성인 남성 2명이 채 눕기도 힘든 쪽방에서 가스버너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날 불이 발생한 3층 방에는 텔레비전과 냉장고, 그리고 이불 등이 빽빽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가스버너를 사용하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이불이나 옷에 불이 쉽게 옮겨붙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쪽방 화재를 살펴보면 가스버너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며 "가스버너로 취사해야 하는 이러한 열악한 주거 환경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현장 인근 쪽방에서 거주 중인 박 모 씨는 "이 동네 쪽방들은 전기장판으로 난방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난방 때문에 가스버너를 사용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쉽게 불날 수 있는 구조에 소방시설까지도 '불안' 쪽방촌 건물이 화재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구조였지만 소방 시설들도 불안해 보였다.
주민들은 이 씨와 마찬가지로 당시 경보음을 듣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4층에 거주하는 한 쪽방 주민은 "방 앞에 빨간 소화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렸다"고 말했다.
인근 다른 건물의 쪽방에 거주하는 박 씨는 "피해 사례를 현재 집계하고 있는데, 주민 중 다수가 사이렌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더라"고 전했다.
자칫 사고 전파가 늦었더라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사이렌뿐만이 아니었다.
주민 쪽방촌 주민들은 하나같이 건물들에 스프링클러가 없다는 점과 천장에 달린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난 303호실 옆 방에 거주하는 A 씨는 그을린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A 씨는 화재 당시 외출한 상태여서 현장의 상황을 지켜보진 못했다. 그는 천장에 달린 화재경보기에 라이터를 켜보면서 "소리가 안 나는데?"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울러 인근 쪽방 거주자 박 씨는 "스프링클러가 쪽방촌에 설치된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그런 사례는 보지 못했다고"고 했다.
남대문쪽방상담소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한 쪽방촌 건물만 하더라도 60년대 건물"이라며 "소방 시설을 유지 보수하는 것은 결국 건물주의 몫인데, 그게 잘 되진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웃 동네에서 발생한 화재 소식에 "쪽방촌에서 사이렌 소리 울리는 것을 제대로 들어봤느냐"며 "내가 사는 방은 그런 것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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