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안개를 뚫고 붓다의 첫 가르침으로 가다 [책&생각]

고명섭 기자 2024. 3. 22.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종교문해력 총서’가 안내하는
종교학‧불교‧기독교‧이슬람‧원불교
인도 고전학 전문가 강성용 교수
붓다 육성 통해 탄생기 불교 조명
고행하던 시기의 수행자 붓다를 형상화한 붓다상. 붓다는 뒤에 고행을 거부하고 쾌락과 고행 사이 중도를 득도의 길로 제시했다.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소장.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
미처 몰랐던 불교, 알고 싶었던 붓다
강성용 지음 l 불광출판사 l 2만원

종교 연구 기관 마인드랩(이사장 조성택 고려대 교수)에서 ‘종교문해력 총서’(전 5권)를 내놓았다. 마인드랩은 종교 간 경계를 넘어 인문적 영성을 탐구하고 알린다는 목적으로 2023년 벽두에 출범했다. 이 총서는 마인드랩에 참여하고 있는 종교 연구자들이 종교문해력을 키우자는 목표를 내걸고 집필한 종교 입문서 모음이다. 종교를 ‘믿음’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이성적 ‘이해’의 문제로 볼 줄 아는 능력이 종교문해력이다. 종교문해력이 커질 때 종교와 종교 사이,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 대화의 길이 넓어진다는 것이 집필자들의 생각이다.

성해영(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의 종교학 안내서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 강성용(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의 불교 안내서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 정경일(성공회대 신학연구원 교수)의 기독교 안내서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박현도(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의 이슬람 안내서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 장진영(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소장)의 원불교 안내서 ‘소태산이 밝힌 정신개벽의 길’이 총서를 이루는 책들이다. 이 책들 가운데 성해영의 책은 총서의 서론 격이라 할 수 있는데, 종교학의 역할을 소개함과 동시에 종교 현상의 핵심에 있는 ‘엑스터시’와 ‘신비주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종교 연구 기관 마인드랩이 펴낸 ‘종교문해력 총서’(전 5권).

인도 고전학 연구자 강성용의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은 입문서라고 하기에는 밀도가 높은 편이어서 따로 주목을 요한다. 이 책은 ‘불교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창시자 붓다의 고뇌와 체험을 되살려내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다시 말해, 불교가 막 탄생하던 시점으로 돌아가 그 창시자가 어떤 물음을 품고 출가했으며 어떤 경로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았는지를 살핌으로써 불교 사상의 벼리를 잡아낸다. 이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불교 문헌이 너무도 방대하게 축적된데다 그 역사적 변모도 커서 불교의 첫 모습을 파악하기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고대 인도 사상 연구자들이 그동안 쌓은 언어학‧고전학‧고고학의 성과를 활용해 시간의 더께를 헤치고 ‘탄생 시점의 불교’를 향해 나아간다.

붓다는 기원전 500~350년 사이에 인도 동북부 갠지스강 유역의 아리아계 선정착민의 후예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붓다의 삶은 거의 모든 것이 안개에 싸여 있다. 붓다가 당시 어떤 고민을 안고 출가수행자가 됐는지 이해하려면, 베다 전통 속에서 태어난 동시대 자이나교의 세계관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자이나교와 불교는 일란성 쌍생아로서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었다.

자이나교의 세계관을 핵심만 추리면, ‘지바’(jiva, 생명)와 ‘카르마’(karma, 업)라는 낱말로 요약된다. 지바는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의 생명 활동과 의식 활동을 일으키는 내적 실체다. 이 지바가 육체를 떠나는 것이 죽음이고 새로운 육체에 자리를 잡는 것이 다시 태어남이다. 생명과 의식을 지닌 지바는 끝없이 생사를 윤회한다. 자이나교는 이 지바가 윤회하는 이유를 ‘카르마’에서 찾았다. 사람은 사는 동안 좋은 카르마를 쌓기도 하지만, 행동과 말과 생각으로 나쁜 카르마를 쌓기도 한다.

이 나쁜 카르마가 지바에 달라붙으면 그 지바는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를 거듭한다. 이 나쁜 카르마는 그 카르마에 상응하는 고통을 치러야만 지바에서 떨어져 나간다. 나쁜 카르마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이 바로 ‘해침’이다. 그래서 자이나교는 ‘아힘사’(불살생)를 가장 중요한 계율로 삼는다. 이 나쁜 카르마를 철저히 제거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출가수행승이 되어 극단적 고행을 감내해야 한다. 극한의 고행을 통해 카르마를 모두 씻어내고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열반이다.

탄생기 불교는 이 자이나교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붓다는 자이나교의 ‘지바’에 해당하는 것을 ‘의식’(vijnana, 식, 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후대에 불교가 ‘무아’(anatman, 제 아님)를 교리의 근본으로 삼게 되면서 이 최초의 가르침을 멀리하게 됐다고 이 책은 말한다. 붓다가 이야기한 ‘의식’이 ‘자아’(아트만)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동시에 붓다의 가르침은 자이나교와 다른 점도 있었는데, 핵심은 ‘극단적 고행’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붓다는 일상적 쾌락에도 빠지지 않고, 극단적 고행에도 몰두하지 않는 자신의 길을 ‘쏠림 없는 중간 길’(중도)이라고 불렀다.

더 주목할 것은 붓다가 해탈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이중적이라는 사실이다. 요약하자면 ‘디아나’(dhyana, 선, 선정)와 ‘꿰뚫어 알아차림’(prajna, 반야, 지혜)이 그것이다. 붓다의 첫 가르침을 ‘초전법륜’(가르침의 바퀴를 처음 돌림)이라고 하는데, 그 가르침의 내용 가운데 하나가 ‘고귀한 네 진리’(사성제) 곧 ‘고집멸도’(苦集滅道)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일은 ‘고생’(괴로움)인데, 이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을 해소할 수 있고, 그 원인을 해소할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팔정도(여덟 단계 고귀한 길)다. 팔정도 가운데 핵심은 마지막 ‘정정’(바른 선정)이다. 이렇게 하여 선정 곧 ‘디아나’가 해탈의 방법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불교는 동시에 다른 말을 하는데, ‘12연기’가 그것이다. ‘의지하여 생겨남’(연기)이라는 인과관계를 통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12연기다. 그 연기의 출발점이 ‘본디 모름’(무명)이라는 근원적 무지이고 그 끝이 ‘태어나 늙어 죽음’이다. 근원적 무지가 삶과 죽음의 윤회를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근원적 무지를 꿰뚫어보는 지혜를 얻으면 해탈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12연기는 디아나(선정)가 아니라 반야(지혜)가 수행의 목표임을 알려준다. 근원적 무지에 대한 통찰이 우리를 해탈로 이끄는 것이다.

이렇게 초기 불교는 한편으로는 선정을 통해서 해탈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야를 통해서 해탈에 이르는 길을 가르쳤다. 바로 이 두 가지 해법이 빚어내는 긴장이 이후 수많은 불교를 만들어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한국 불교에서 일찍이 설파된 ‘정혜쌍수’ 곧 선정과 지혜를 모두 닦는다는 수행론이 두 해법 사이의 긴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