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이몽룡이 먹은 ‘가리찜’은 무엇? 흥미진진 한식 문화

양선아 기자 2024. 3. 22.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재료·요리방법 위주 탈피해 한식 문화 집대성한 책
석류탕, 장똑똑이, 가죽나물…처음 듣는 음식들 호기심 자극
‘석류만두’엔 석류가 들어갈까? 그렇지 않다. 사진은 찐 석류만두이다. 1670년경에 쓰인 ‘음식디미방’에는 석류탕이 등장하는데, 만두를 빚어놓은 모양이 석류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수원문화재단 제공

한식문화사전
주영하 외 14명 지음 l 휴먼앤북스 l 12만원

세계 미식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전통적으로 미식 국가라고 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중국, 튀르키예 등을 꼽았다. 그러나 최근 케이(K)-팝과 케이(K)-드라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식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폭증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미슐랭 가이드 뉴욕 2023’에 등재된 식당 71곳 중 한식 식당은 11곳이나 됐고, 미식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의 북미 지역’ 1위 역시 뉴욕의 한식 레스토랑이 차지했을 정도다. 한류 열풍이 부는 베트남에서는 양념갈비 1인분에 우리 돈 4만원이 넘는 높은 가격인데도 식당 자리가 꽉 찬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치맥', ‘김밥' 등과 같은 한국어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올라간 것도 3년 전 일이다. 이렇듯 한식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식의 에이(A)부터 제트(Z)까지 모두 담은 ‘한식문화사전’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청자 석류 모양 주전자, 고려시대, 높이 18.3cm, 최대 지름 17.6cm.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총 984쪽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한식‘문화’를 집대성한 책이다. 기존 한식 관련 책이 재료와 요리방법 중심이라면, 이 책은 재료나 요리방법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그 음식의 유래나 그 음식과 관련한 문학 작품이나 미술 작품을 살펴보는 등 문화적 맥락까지 살핀다. 한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한식문화의 모든 것’을 담기 위해 문학, 미술사학, 민속학, 한의학, 문화인류학 등을 전공한 15명의 박사(박사과정 수료 2인 포함)가 집필에 참여했다. 사전 형식이라 본문 내용은 ㄱ, ㄴ, ㄷ 순으로 정리됐고, 맨 뒤에는 가래떡, 가래, 가례도감의궤 등처럼 주제어별 색인을 두어 독자가 관심 있는 음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 문학, 문헌, 미술, 식재료, 음식, 의례라는 분류 기준 아래에 색인을 만들어놓았는데 다각도에서 독자가 관심 있는 내용을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어봐도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하고, 맨 뒤 실린 색인을 보고 해당 페이지를 찾으면 다채로운 음식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한다.

소갈비를 굽기 전에 각종 양념에 재워 갈비를 숙성시키고 있다. 과거 갈비를 우리말로는 ‘가리’라고 불렀으나 현재의 표준어 규정은 갈비만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하응백 제공

문학 작품 ‘춘향전’에 어떤 음식이 등장할까 궁금해 관련 페이지를 펼쳐봤다. 운율감이 살아나는 ‘춘향가’의 한 대목이 등장한다. “(전략)…안주 등물 볼작시면 굄새도 정결하고, 대양판 가리찜 소양판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메추리 순탕에 동래 울산 대전복 대모 장도 드는 칼로 맹상군의 눈썹 체로 어슥비슥 오려놓고 염통 산적 양볶이와 춘치자명 생차다리, 적벽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놓고…(후략)”

춘향의 어머니 월매가 이몽룡과 춘향이가 천생연분임을 확신하고 춘향집을 찾은 이몽룡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장면이다. 가리찜, 제육찜, 숭어찜, 메추리순탕, 대전복, 염통 산적, 소의 양을 볶은 양볶이, 냉면 등 수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가리찜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가리찜’은 갈비찜이라고 알려준다. 갈비를 소개한 대목을 보면 가축의 가슴 부분을 감싸고 있는 뼈와 살을 통칭해 갈비라고 부르며 우리말로는 ‘가리’라고 불렀으나 현재의 표준어 규정은 갈비만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고 전한다. ‘갈비’와 관련해 책은 경기도 포천의 이동갈비, 수원의 수원갈비, 전라도 광주 지역의 떡갈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는가 하면, 각종 고문헌과 과거 신문 기사에서 갈비가 어떻게 등장하는지도 정리했다. 지규식이 1891년부터 1911년 사이에 기록한 글을 모은 ‘하재일기’를 보면, 갈비는 조선시대 연말연시의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로 귀한 선물이었다. 1926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암수 꿩 한마리씩에 돼지다리 하나, 달걀 한 접, 갈비 한 개면 훌륭한 세찬(세배 오는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으로 쳤다고 한다.

갈비라는 음식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책에는 익히 알고 있는 식재료나 음식뿐만 아니라 생전 처음 듣는 식재료나 음식도 등장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를 들면 숭어살을 저며 얇게 펴 그 위에 버섯류, 고추 등을 다져 만든 소를 얹어 서너겹이 되도록 말아 녹말가루로 옷을 입히고 삶거나 찐 음식을 ‘감화부’라고 하는데, 도통 만들기 어려울 것 같은 이 음식은 조선시대 왕실 연회에 등장한다고 한다. ‘가죽나물’이 무엇일까 살펴보니 참죽나무의 어린순을 말하는데, 가죽나물 부각 맛은 일품이어서 술안주로 좋다고 소개한다. ‘석류탕’은 석류와 관련이 있나 싶어 찾아보니 만둣국의 이름이다. 만두를 빚어놓은 모양이 마치 석류를 닮았다고 하여 ‘석류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장똑똑이’라는 음식을 먹으면 똑똑해지는 걸까 궁금해 찾아보니 똑똑함과는 거리가 멀다. 잘게 썬 소고기를 간장 등으로 양념해 조리거나 볶은 일종의 장조림인 장똑똑이는 주요 양념인 장과 고기를 채 썰 때 나는 소리인 ‘똑똑’이라는 의성어의 합성어라고 한다.

봉수당진찬도. 화성능행도병 중 한 폭이다. 1795년 정조는 생부 사도세자와 생모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이 있는 화성으로 혜경궁을 모시고 행차한다. 봉수당진찬도는 화성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인 윤2월13일 행궁인 봉수당에서 거행된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 책의 앞부분에 총설을 쓴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식의 핵심을 ‘곡물 밥+반찬’이라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쌀밥을 비롯하여 곡물로 지은 밥을 입에 넣은 채 반찬마저 입에 넣고 함께 섞어 먹는데, 상추쌈밥과 비빔밥을 가장 완벽한 한식 맛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 한식간장, 김치, 나물을 가장 오래된 한식의 으뜸 음식이라고 말한다. 외국인 친구가 한식에 관해 설명해달라고 하면, 총설 부분만 보고 요약해 설명해주면 안성맞춤이겠다. 462개의 도판이 책 곳곳에 배치돼 두꺼운 사전식 책이 줄 수 있는 지루함을 덜었을 뿐 아니라 독자가 직관적으로 음식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