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상생’ 전태일 정신… 이제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할 차례

특별취재팀 2024. 3. 2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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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88의 사회를 넘자] 전태일재단의 제안과 남은 과제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진짜 최저임금 당사자,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5인 미만·영세 자영업자 증언대회'에서 최저임금 근로 시장 당사자들이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현실성 있는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경제 개발이 진척됨에 따라 노동 문제는 점차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경제 개발을 위해 근로자에게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 조건을 강요해왔던 것인데 그러한 정책이 점차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드러냈다.”

전태일 열사가 숨진 지 한 달 뒤인 1970년 12월 15일 조선일보 사설의 한 대목이다. 약 54년이 지났지만 본지 취재팀이 전태일재단과 돌아본 노동 현장에서는 이 외침이 여전히 필요했다.

전태일재단은 본지와의 ‘12대88의 사회를 넘자’ 공동 기획을 통해 ‘낮은 곳을 향한 나눔과 실천’이라는 오늘의 전태일 정신을 제시했다. 자기 버스 요금으로 쓰려던 돈으로 배고픈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줬던 마음이다. 전태일재단이 이 기획에서 제안한 10가지엔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해 변화를 만들어내자는 상생의 뜻이 담겼다.

그래픽=김성규

근로기준법 주요 조항이 적용되지 않아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 연차·유급휴가 등이 없는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는 최근 복원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재단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점진적으로 5인 미만 사업장까지 넓히자고 했었다. 여야도 모두 찬성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이를 단기간 전면 적용할 경우 영세한 기업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것이란 지적도 많다. 고용노동부는 “5인 미만 사업장도 점진적으로 복지를 강화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사용자의 부담도 고려한 합리적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단은 불법 하도급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마루 노동자 등을 위해 고용부가 더 적극적으로 특별근로감독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분야별 최저임금’ 격인 시중노임단가를 다양한 업종으로 넓히자고도 했다. 고용부는 “건설 경기 침체 등으로 건설 근로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 만큼 올해 근로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또 “시중노임단가를 정하기 어려운 업종은 직무별 보수 수준을 조사해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전태일재단이 제안한 ‘프리랜서 경력 인증제’도 정부 부처와 이해 관계자들 간 협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프리랜서는 디지털 기술 발달 등으로 일하는 방식이나 계약 관계가 다양해지고 있어 업무 범위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려는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고용부는 “경력 증명서를 발급하거나 전산화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 방안도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서울시 역시 “프리랜서 노동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경력 인증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궂은일의 외주화’와 관련, 재단은 원·하청 사측과 근로자,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갈등조정·협력문화위원회’를 만들자고 했다. 고용부는 “유사한 상생 노사협의회 시범 사업장을 발굴하고 있고 지원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또 아파트 옥상에서 작업하는 ‘개통 기사’ 사연 보도 후, A 통신사는 이 옥상에 있던 통신 장비를 위험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비로 교체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도 원·하청 격차를 지적한 본지 보도 이후 “협력사 등과 맺은 상생 협약을 지키면서 복지 확대 등 하청 업체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겠다”고 했다.

전태일재단은 마지막으로 “별도의 복지 기금이 없는 대리 기사, 플랫폼 종사자 등 개인 사업자도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공동근로복지기금과 비슷한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공동근로복지기금은 기업 둘 이상이 공동으로 이익금 일부를 출연해 중소기업이나 하청 직원을 위한 복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고용노동부는 참여 기업 수와 예산 등을 고려해 출연 금액의 최대 100%까지 매칭해 지원하고 있다. 전태일재단은 “‘카부기공제회’처럼 자생적인 단체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겨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팀장=정한국 산업부 차장대우

이정구 산업부 기자, 조유미 주말뉴스부 기자, 김윤주 사회정책부 기자, 김민기 테크부 기자, 한예나 경제부 기자, 양승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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