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나그네 길에서

경기일보 2024. 3.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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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길 동두천샘물교회 담임목사·前 협성대 객원교수

여행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 중 하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 대한 접근과 도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알지 못함’은 여행의 가장 큰 불안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유여행 또는 패키지여행 등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 다르다.

얼마 전 안식년으로 한 주간 아내와 자유여행으로 미국 뉴욕을 다녀왔다. 뉴욕 여행에서 지금까지 두고두고 고마웠던 일 중 하나는 이름 모를 시내버스 기사의 배려였다.

자유의 여신상 투어를 위해 유람선 선착장으로 가기 위해 탑승한 시내버스에서 스마트폰 지도가 가르쳐 주는 대로 버스에서 하차했는데 사방이 캄캄한 거리였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음산한 날씨까지 겹쳐 길을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쩔 줄 모르는 우리 부부에게 버스 기사가 문을 열고 묻는다. “너희들 ‘Circle Line’(유람선 회사 이름) 가는 거 아니야? 이거 거기 바로 앞에 가니까 다시 타.” 우리 부부를 위해 기사는 다른 승객들이 불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안내해 줬다.

비록 아주 짧은 한 정거장의 거리였지만 그 기사의 친절함은 뉴욕 여행에서 가장 큰 고마움으로 기억된다.

며칠 전 전철을 타고 가던 중 외국인 여행객들이 계속 스마트폰 번역 앱으로 노선도를 찍어 번역하는데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한 표정이다. 나는 이내 조금 망설이다가 그들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그들이 말한다. “인천까지 가는데 이 열차가 가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답했다. “이 열차의 종점이 인천역이고 지금부터 50분 정도 걸려요.”

어두웠던 그들의 표정이 밝아지며 내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렇다. 작은 친절과 배려는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두고두고 고마운 일이 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기독교인들이 자주 언급하고 살기 원하는 ‘거룩’이란 용어는 히브리어로 ‘카도쉬(kadosh)’인데, 이는 ‘구별’, ‘다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흔히 생각하기를 세속과 구별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나 자신의 생활을 바로잡는 것을 거룩하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거룩함이란 나와 다르거나 익숙지 않은 것을 배척하지 않고, 그것을 성찰의 기회와 섬김의 대상으로 만들어 구별과 다름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금의 세속문화는 자기만 아는 이기성과 폐쇄성에 익숙해져 있다. 돈과 권력 명예를 위해서라면 타인과 다른 공동체를 비난하고 배척하는 데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거룩은 나를 챙기면서도 타인과 이웃을 챙기는 것이다. 그것이 거룩한 삶의 핵심이며, 나 중심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항거’이다(배철현·‘신의 위대한 질문’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마태복음 25장 40절) 예수께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자’에게 행한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주님께 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들을 작은 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외면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유심히’ 살피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작은 자들에게 보이는 관심과 환대는 나그네 같은 우리의 삶의 소풍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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