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으로 돌아온 ‘접속’ 장윤현 감독 “신인 감독 된 듯한 느낌”

김은형 기자 2024. 3. 21. 08: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 개봉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를 연출한 장윤현 감독.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시작할 때는 (저예산 독립영화였던) ‘파업전야’ 찍듯이 해보자 마음먹었어요. 추자현, 이무생 등 무게감 있는 배우들이 합류하고 많은 동료들이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예상보다 수월하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20일 12년 만의 새 연출작 ‘당신이 잠든 사이’를 들고 돌아온 장윤현 감독의 연출 이력은 드라마틱한 한국 영화 현대사와 오롯이 겹친다.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에서 장동홍, 이은, 이재구 감독과 게릴라처럼 만든 ‘파업전야’(1990)는 극장 상영 없이 30만 관객을 모으면서 한국 노동영화와 독립영화 활성화에 불쏘시개가 됐다. 1997년 내놓은 ‘접속’은 최루성 신파 일색이던 한국 멜로 영화에 젊은 세대의 감각을 세련된 연출력으로 녹여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을 끌어냈다. 한국 영화를 ‘접속’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한국 영화에 없던 스릴러의 장르적 연출을 보여준 ‘텔 미 썸딩’(1999)까지 성공시킨 장윤현 감독은 차기작들에서 치고 올라오는 신진 감독들 작품에 밀리다가 한국 영화가 한참 중국 시장에 뛰어들 무렵 중국에서 연출 활동을 했다. 이후 한국 영화 천만 시대를 지나 천만 감독들이 큰 실패를 맛보며 한국 영화 위기감이 차오르고 있는 지금 장윤현 감독은 순 제작비 3억5천만원의 미스터리 로맨스를 들고 “신인 감독의 마음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섰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의 배급사 사무실에서 장윤현 감독을 만났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중국에서 찍은 작품(‘평안도’)이 배우 문제로 개봉이 안 되고 사드 때문에 한-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귀국했어요. 이후 (‘접속’ ‘텔 미 썸딩’ 주연배우) 한석규씨와 함께 신작 준비하다가 불발되고 하면서 12년의 시간이 훅 지나가버렸네요.”

‘당신이 잠든 사이’는 동료 장규성 감독이 추진하는 저예산 독립영화 프로젝트 활성화를 위해 장 감독이 첫 주자로 나서 완성한 작품이다. 교통사고로 기억의 일부를 잃은 덕희(추자현)는 남편 준석(이무생)의 헌신적 도움으로 기억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작가인 준석은 작업을 위해 잠시 집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덕희는 남편이 남기고 간 흔적에서 하나둘 남편이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젊은 부부의 절절한 로맨스를 그리면서도 극의 절정 지점까지 미스터리적 요소의 ‘떡밥’을 여러곳에 뿌리며 쫀쫀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간다. 마지막에 진실이 밝혀지면서 떡밥이 차곡차곡 회수되고 관객은 오열하는 덕희의 모습에 이입하게 된다. 허술한 장르극들이 늘어난 요즘 ‘당신이 잠든 사이’는 노련한 연출력이 주는 장르적 재미와 정서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음으로 가닿는 ‘소통’에 대한 고민을 녹였다는 점에서 ‘접속’과 이어지면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진한 감성극이라는 점에서는 ‘접속’과 반대되는 지점에 있기도 하다.

“팬데믹을 지내며 대면 소통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아왔구나 싶어 소통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오래전에 준비하다가 덮었던 시나리오를 다시 펼쳤어요. 신파적 요소를 세련되게 고치려고 이야기를 분해하기도 했는데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다듬으면서 감동이 있는 사랑의 느낌을 전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어요.” 그는 적은 예산의 한계를 몰입감으로 뚫기 위해 원안에서 미스터리 요소를 추가했다.

장 감독이 “신인 감독이 된 듯한 느낌으로” 작품에 임한 이유가 예산만은 아니었다. “팬데믹이 지나면서 영화 관람이 그 전보다는 좀 더 무게 있는 이벤트가 된 거 같아요. 그저 주말의 시간 때울 거리가 더는 아니게 된 거죠. 그만큼 영화가 주는 의미가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과거의 상업영화처럼 흥행을 위한 매뉴얼과 대형 배급사 위주의 공장형 제작 시스템보다는 “감독의 예술적 의지나 진솔한 메시지가 담겨야 관객과의 소통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장 감독은 지금 바짝 한국 영화 드라마 시장을 추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한국 영화 발전 초창기의 활력을 보는 거 같다”며 “변화한 영화 환경에 맞춰 적절한 규모의 예산으로 완성되는 작품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작으로 사극과 인공지능(AI)을 소재로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와 영화를 준비 중이다. 그는 “에이아이가 등장하면서 인간성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역설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에이아이가 우리에게 가져올 미래나 삶의 변화를 제시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