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시공간의 눈맞춤… 2024년이 응답했다

박은희 2024. 3. 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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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기념 특별展
'미래 예고' 오웰·'지구적 연결' 백남준… 현시대 유효가치 물어
새로운 쌍방향 소통방식 진단하는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
대안적 미래·현대미술 격변 점검 '빅브라더 블록체인' 선봬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빅브라더 블록체인'에 출품한 장서영 '터뷸런스'. 사진=박은희 기자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빅브라더 블록체인'에 출품한 홍민키 '라이브 방송 중 해킹 당한 BB'. 사진=박은희 기자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빅브라더 블록체인'에 출품한 삼손 영 '제단 음악'. 사진=박은희 기자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일어나 2024년이야' 전경. 사진=박은희 기자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일어나 2024년이야' 전경. 사진=박은희 기자

1984년 1월 1일 미국과 프랑스, 한국, 독일 등에는 세계 최초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생중계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백남준(1932∼2006)이 미국 WNET 뉴욕 스튜디오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이는 1984년이 되면 매스미디어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고 한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49년 작품 '1984'에 대한 응답이었다.

'1984'는 독재자 빅 브라더가 텔레스크린으로 사회를 끊임없이 감시하는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백남준은 오웰의 예언이 절반만 맞았다는 것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보여줬다. 오웰이 우려한 통제의 기술을 전 세계 2500만명의 시청자들과 함께 즐거운 소통의 기술로 전환했다.

1980년대 위성은 냉전의 산물이자 거대한 국가적 자본을 투입한 하이테크놀로지의 결정체로, 몇몇 방송국과 나사(NASA)만 이러한 기술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남준은 위성 방송 시스템을 대륙 간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할 수 있는 기술로 구상했고, 여러 협업자들과 예술로 소통하며 이를 실현했다.

2024년 현재 오웰이 예고한 감시 사회와 백남준이 바랐던 전 지구적 연결은 모두 일상이 됐다. 백남준아트센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일어나 2024년이야'와 '빅브라더 블록체인'을 기획해 21일 동시에 선보였다. 두 전시는 조지 오웰의 시선과 백남준의 답변이 동시대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감시와 통제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여전히 유효한 가치는 무엇인지 등을 질문한다.

'일어나 2024년이야'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세계 평화의 가치에 주목하며 과거의 장면들을 통해 현재를 마주한다. 주요 전시작으로 백남준이 제2차 세계대전 격전지를 찾아 제작한 '과달카날 레퀴엠'(1977·1979), '굿모닝 미스터 오웰' 뉴욕 라이브 방송, 마지막 위성 작품 '세계와 손잡고'(1988)가 있다.

또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룹 바밍타이거와 미술가 류성실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내용과 형식을 오마주한 신작 'SARANGHAEYO 아트 라이브'를 선보인다. 이를 통해 동시대 아티스트의 새로운 쌍방향 소통 방식과 이들이 진단하는 평화·예술의 현주소를 함께 제시한다.

바밍타이거는 "백남준 작가는 실시간 공유에 대한 갈증이 컸지만 시간이 흘러 이젠 그것이 당연하고 쉬워졌다"며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라이브 소통을 갈망하고 좋아한다는 걸 작품을 통해 백남준 작가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빅브라더 블록체인'은 백남준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섭외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미래인 동시대 작가 9명이 참여하는 전시다. 장서영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속 로리 앤더슨이 공연하는 비행기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아 신작 '터뷸런스'를 제작했다. AI 자동추천 알고리즘으로 초개인화되는 미디어와 인류의 운명을 위태로운 비행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는 "지난 40년간 화면의 의미는 많이 바뀌었다"며 "선택 가능한 화면의 개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개인의 선택은 잘게 쪼개지다보니 연결의 가능성보다는 고립의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또 "화면은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시선이 분산되는 이야기를 작업에서 풀어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휘의 신작 '너의 전생'은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물에 잠긴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세계를 재건하는 가상의 미래를 그린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부터 40년 떨어진 미래에 서서 기시감을 떨쳐낼 수 없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반추한다.

백남준의 대범함에 영감을 받았다는 그는 이번 작업의 규모를 과감하게 키웠다. 휘는 "그동안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영상을 제작했는데 이번엔 20명 이상의 대규모 프로덕션으로 진행했다"며 "여태 한 작업 중 가장 큰 스케일"이라고 강조했다.

작품 '원룸바벨'에서 한국 청년들의 특수한 주거공간이자 거주자들의 사적인 삶이 기록된 원룸을 표면화한 상희는 VR의 매체성을 경유해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복잡한 역설을 그려냈다. 그는 "백남준 작가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VR로 작업을 했을거란 상상을 해봤다"며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지금의 매체나 기술들로 어떤 이야기가 가능한지 실험해보는 작업들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홍민키는 빅브라더를 상징하는 유튜버 BB를 등장시켜 디지털 세계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감시와 착취를 드러낸다. 권희수는 프로젝터 앞에 셔터스피드 조절장치를 설치해 분해된 빛이 전시실 풍경을 실시간으로 재구성하고 변형하는 '나선필름'을 상영한다. 히토 슈타이얼의 '태양의 공장'은 모션캡처 스튜디오에 고용된 이들의 육체적인 노동이 가상 세계로 전환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국내에서 처음 전시되는 삼손 영의 '제단 음악'(우유부단한 신자를 위한 예배)은 인간의 감정과 행위를 기계에 위임하는 모티프를 전시실 곳곳에 설치해 기술에 대해 인간이 갖고 있는 신념과 태도에 의문을 제기한다.

조승호는 기술의 통제를 거부하고 숨으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신작 '은신처'를 제작해 동시대의 기술 환경에 대한 저항을 드러낸다. 이양희는 신작 '트립 더 라이트 판타스틱'에서 온라인에서 청소년들을 만나 춤으로 함께 몰입하는 과정을 촬영하고 후편집한 영상을 선보인다.

글·사진= 박은희 문화전문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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