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사람이 바보?… 특례상장 95% 약속했던 실적 달성 못 해

권오은 기자 2024. 3.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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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상장 방식으로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기업 95% 가까이가 지난해 실적이 상장 전 제시했던 예측치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의 예상 순이익을 토대로 ‘몸값’을 정했던 만큼, 실제 실적이 부진할수록 공모가가 과대평가 됐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기술특례상장이나 이익미실현상장을 한 코스닥 기업 중 ‘2023년 실적 예측치’가 있는 38개사가 전날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가운데 36개사(94.7%)는 지난해 실적이 예측치에 못 미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기업의 지난해 당기순이익과 예측치의 괴리율[(예측치-실제 실적) ÷ 예측치]은 평균 319.1%였다. 상장 전에는 100억원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219억1000만원의 순손실을 냈다는 의미다.

조선DB

특례상장 기업은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보통 비교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시가총액 ÷ 순이익)과 경영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점의 추정 순이익을 토대로 기업가치를 산정하고, 이에 맞춰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를 설정한다. 실제 실적이 예상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기업가치를 제대로 매겼다고 보기 어렵다.

상장 전 예측치와 실제 실적 간 괴리율이 가장 큰 곳은 반도체 설계 기업 파두였다. 파두는 지난해 8월 상장 때 연간 당기순이익 15억9600만원을 기록할 것이란 추정치를 제시했으나, 실제로는 568억3300만원 순손실을 봤다. 괴리율은 3660.96%였다. 파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극심한 침체 등을 이유로 들었다.

파두는 ‘뻥튀기 상장’ 논란으로 이미 홍역을 치렀다. 지난해 11월 시가총액이 1조원이 넘는 기업의 분기 매출이 3억원대라는 소식에 주가가 급락했다. 특히 IPO를 진행 중이던 지난해 2분기 매출이 5900만원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일부 주주는 파두와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을 상대로 집단 소송에 들어갔고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은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에 돌입했다.

파두 홈페이키 캡처

1세대 인공지능(AI) 솔루션 개발 기업 딥노이드도 예측치와 실제 실적 간 격차가 컸다. 딥노이드는 2021년 상장 때 2023년 순손실 2억6600만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만 지난해 실제 순손실 규모는 67억3700만원이었다. 괴리율이 2432.71%였다.

딥노이드는 지난해 103억6000만원어치를 신규 수주했으나, 이 가운데 17억5500만원만 수익으로 인식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63억원가량이 수익으로 잡힐 것으로 딥노이드는 보고 있다. 딥노이드는 의료용 AI 솔루션에 더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산업용 AI 솔루션 등으로 사업을 확장, 올해 흑자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바이오 기업 큐라클과 이오플로우도 순이익 예측치와 실제 사이의 괴리율이 400%가 넘었다. 큐라클은 2021년 IPO 때 2023년 당기순이익 30억5700만원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난해 115억8600만원 순손실에 그쳤다. 이오플로우 역시 2020년 상장 당시 2023년 당기순이익 199억1600만원을 기대했으나, 지난해 623억1500만원 규모의 순손실이 났다.

큐라클은 당뇨병성 황반부종 경구용 신약 후보 물질(CU06-RE)과 당뇨병성 신증 치료제(CU01)의 임상 일정이 바뀌면서 추정 대비 실제 실적의 괴리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큐라클은 상장 이후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CU104처럼 의학적 차별화 가능성과 상업적 경쟁력을 갖춘 파이프라인들을 우선 개발 중이고, 망막 혈관질환 이중항체 치료제 MT-103과 같은 신규 파이프라인을 발굴해 추가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이오플로우는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 ‘이오패치’를 두고 경쟁사인 인슐렛과 특허 관련 소송에 휘말리면서 실제 실적이 예측치에 못 미쳤다고 했다. 인슐렛이 지난해 낸 특허 관련 가처분 신청이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받아들여져 이오플로우는 이오패치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송 대응을 위한 법무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오플로우는 이오패치의 다음 버전인 ‘이오패치X’ 임상 연구가 마무리되고 품목허가 신청 단계인 만큼 올해 추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퓨런티어와 원텍은 상장 당시 예측치를 지난해 달성했다. 퓨런티어는 2022년 상장 당시 2023년 당기순이익 예측치로 68억500만원을 제시했는데, 실제 75억2300만원을 기록했다. 원텍도 지난해 당기순이익 391억5400만원을 내, 2022년 상장 때 추정치(388억9200만원)를 넘어섰다.

퓨런티어는 자율주행차용 카메라 모듈 관련 자동화 장비가 주력 제품인데, 자율주행차 시장이 성장하면서 사업도 탄력을 받았다. 원텍은 피부미용 의료기기 올리지오 등이 해외 시장을 공략한 결과 예측치를 뛰어넘는 이익을 낼 수 있었다.

특례상장 기업 대부분이 상장 때 예상했던 것보다 부진한 실적을 거두고 있어 상장 심사를 지속해서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파두의 뻥튀기 상장 논란 이후 금융감독원은 IPO에 나선 기업이 가장 최신의 매출액·영업손익 등을 증권신고서에 적도록 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확보한 계약 등을 토대로 미래 수익을 추정하지만, 변수가 워낙 많아 실제와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도 “투자자 입장에선 결과적으로 회사를 믿었다가 손해를 볼 수 있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장 심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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