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카맣지만 시원해…오키나와 술자리 마지막엔 이 해장국 '이카지루(오징어 국)'

김태훈 PD 2024. 3.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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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PD의 日 오키나와 이토만시 탐방


- 프로야구 전지훈련지 사랑받는 이토만시
- 오키나와 본섬 최남단, 어업이 주력 업종
- 작은 주점서 마주한 향토 요리 ‘이카지루’
- 강렬한 검은빛, 맛은 우리네 ‘오징어뭇국’

- 이방인의 술값도 기꺼이 내주는 호탕함
- 매월 곗돈 모아 한 사람 주는 ‘모아이’문화
- 흥 많고 정 많고 다정한 부산과 닮았네요

“다 먹고 나면 이가 새까맣게 물들지도 몰라요.”

투명한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거리에 늘어선 야자수와 시사(シ-サ-·오키나와 수호 동물) 조각상들. 부산에서 비행 편으로 약 2시간 떨어진 ‘동양의 하와이’ 오키나와에서 느끼는 남국 정취다.

일본 최남단에 있는 오키나와는 연평균 기온 20도 이상인 아열대 기후를 자랑한다.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여름이 관광 성수기에 해당하지만, 한겨울에도 평균기온 15도 안팎 온난한 날씨를 보이는 만큼 비수기에는 스포츠팀의 전지훈련지로 사랑받는다. 올해도 일본 프로야구 구단은 물론, 롯데자이언츠와 삼성라이온즈, 기아타이거즈 등 국내 프로야구 구단이 훈련을 위해 오키나와를 찾았다.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국내외 프로야구팀 스프링 캠프를 취재하고자 니시자키 구장이 위치한 이토만시를 다녀왔다.

오키나와의 향토요리 이카지루(いか汁·오징어국).


# 우민츄의 고향 ‘이토만시’

“이유콘쵸라니?(イユ、コ-ンチョ-ラニ-·오키나와 말로 ‘물고기 사실래요?’라는 뜻)”

이토만시는 오키나와 본섬 최남단에 자리한 시로, 우민츄(海人·오키나와 말로 어부를 뜻함) 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오키나와현의 전통적인 어장이다. 어업 말고도 오키나와현 내 이름난 농산지로서 사탕수수 생산과 화훼 재배가 활발하다.

어부의 마을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마을 곳곳에서는 생선을 파는 시장 상인과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취급하는 어민 식당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남성들이 ‘사바니(サバニ)’라고 불리는 전통 배를 타고 생선을 잡아오면, 여성들이 물고기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머리에 얹고서 “이유콘쵸라니 (イユ、コ-ンチョ-ラニ-)”라고 외치며 나하 시장까지 걸어가는 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 이가 까맣게 물들어요, ‘이카지루’

프로야구 스프링캠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숙소 인근 작은 이자카야(일본의 요리 주점)를 마주했다. 어둠 속 붉은빛을 발하는 붉은 등에 홀린 듯 들어섰다. 간판에 새겨진 ‘이카지루(いか汁·오징어 국)’라는 생소한 메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낡은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서자, 단골손님들이 이름을 써 맡겨놓은 술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관광객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점포 안은 취기가 오른 현지인들 목소리만이 가득했다. 남동생과 함께 18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에츠코 씨에게서 이카지루라는 요리의 유래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에츠코 씨는 “이카지루는 신선한 흰오징어를 재료로 하는 오키나와의 향토 요리다. 자양 강장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이토만시에서는 일반 가정이나 음식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잠시 후 음식이 등장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검정 빛의 국. 그 외엔 흰 쌀밥과 단무지뿐인 소박한 구성이다. 국물이 워낙 검으니, 먹고 나면 이가 새까맣게 물드는 건 아닌지 물었다. 에츠코 씨는 “다 드신 직후에는 이가 잠깐 까맣게 물들지도 모른다. 꼭 충치가 생긴 것 같은 모습 때문에 식사 후에 바로 양치를 하는 손님들도 종종 있다”라고 들려주며 웃었다.

예사롭지 않은 첫인상. 그런데 그 맛은 의외로 친숙했다. 매콤한 향이 없다는 차이 외에는 한국의 오징어뭇국과 닮았다. 다만 오징어의 향은 훨씬 깊게 느껴졌다. 일본의 해장 문화인 ‘시메(締め)’에 관한 소개도 들을 수 있었다. 에츠코 씨는 “일본에서는 술자리가 끝난 당일 마무리로 해장 음식을 먹는 ‘시메(締め·마무리)’ 문화가 있다”며 “라멘이나 우동을 먹는 게 보통이지만, 오키나와에서는 이카지루 또는 또 다른 향토 요리인 야기지루(やぎ汁·염소 국)를 시메로 먹는다”고 알려줬다. 술 먹은 다음 날 별도로 해장을 하는 경우가 많고, 해장국으로 오징어나 염소는 좀체 즐기지 않는 한국과 달라 흥미로웠다.

오키나와현 이토만시에 위치한 ‘이카지루캇짱(いか汁かっちゃん)’의 이카지루는 소(小) 1200엔(한화 약 1만2000원), 대(大) 1600엔(한화 약 1만6000원).

# 오키나와의 계모임 문화 ‘모아이’

카즈 씨(가운데)가 오키나와의 ‘모아이’ 문화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혼자서 여행하러 오셨어요?” 테이블 건너편 손님이 말을 건네온다. 이토만시 출신으로 운송업에 종사하는 카즈 씨는 “이 가게를 자주 찾는 단골”이라고 했다.

카즈 씨와 에츠코 씨에게서 오키나와의 계 모임 문화인 ‘모아이(モアイ)’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모아이는 한국의 계모임 또는 품앗이와 비슷한 문화다. 그 원형은 18세기 이전 오키나와를 류큐 왕조가 다스리던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개 모아이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구성원들 간 매월 저축할 금액과 이달의 오야(親·부모를 뜻하는 낱말로 모아이에서는 총무 역할을 일컫는다)를 정한다. ②오야는 해당 월의 모임 장소를 마련해 술자리를 열고 회원들의 돈을 걷는다. 저축액은 5000엔(한화 약 5만 원)에서 3만엔(한화 약 30만 원) 수준이 일반적이다. ③이렇게 모인 곗돈은 해당 월의 오야가 갖는다. ④매달 한 사람씩 오야를 번갈아 맡으며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이자카야의 메뉴판. 좌측부터 이카지루(いか汁·오징어 국), 야기지루(やぎ汁·염소 국), 나카미지루(中味汁·내장 국).


에츠코 씨는 “도움이 필요한 모아이 구성원이 먼저 곗돈을 받는 다스케모아이(助けモアイ·도움 모아이), 일정 기간 저금한 뒤 다 같이 여행을 떠나는 형태 등 모아이가 운영되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라고 설명했다. 멤버 구성도 다양하다. 고교 친구들이나 동네 주부들의 모임, 직장동료 간은 물론 다양한 직종이 모이는 비즈니스 모아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카즈 씨는 “모아이가 운영되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결국 그 목적은 매달 한 번씩 친구들과 술 한잔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데 있다”며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문화지만 오키나와에서는 대부분 사람이 각자의 모아이가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덧붙였다.

# 한국과 닮은 오키나와의 ‘정(情)’

에츠코 씨, 카즈 씨와 셋이서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운 끝에, 가게 영업이 끝나는 밤 11시가 돼서야 주점 문을 나섰다. 음식값을 계산하려 하자 카즈 씨가 대신 지갑을 꺼낸다. 한사코 만류해도 “다음에 만나면 동생이 한턱 내라”며 에츠코 씨에게 내 음식값을 함께 쥐여준다.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문득 오전 야구장에서 만났던 한 한국인 관중과 나눈 짧은 대화가 떠올랐다. 10년 넘게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중이라는 그에게 오키나와에 살기로 결심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술도 잘 마시고 흥도 많지만, 특히 정(情)이 많아요. 제 남편도 오키나와 출신인데 다정한 성격이거든요. 일본 본토보다 오히려 한국과 정서적으로 더 닮은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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