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사태에… 4대 은행, 뒤늦게 성과평가지표 손본다

김희래 기자 2024. 3. 2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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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소비자 38% “설명은 대충… 서명 먼저 해라” 경험
일러스트=김현국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잇따라 영업점의 상품판매 성과평가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 개편에 나섰다. KPI 점수가 높아야 성과급도 늘고 승진도 할 수 있어 KPI는 은행원들이 어떤 업무에 신경을 많이 쓸지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개편 방향은 원금 손실 위험이 큰 상품의 판매 비중에 상한을 정하고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판매 실적은 평가에서 제외하는 식이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에 집중했다가 대규모 손실 사태를 빚었던 것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미 홍콩H지수 ELS의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된 후에 뒤늦게 수습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4대 은행, 잇따라 실적평가 기준 개편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4대 은행은 올 들어 일제히 KPI 개편에 나섰다. 먼저 KB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부터 홍콩H지수 ELS 같은 ‘원금 비보장형 구조화 상품’의 판매 비율 제한을 강화했다. 지난 2020년에는 각 영업점의 상품 판매 금액 중 70%까지 ‘원금 비보장형 구조화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턴 이 비율이 20~40%로 낮아졌다. 수익률이 높지만 원금 손실 가능성도 높은 고위험 상품의 판매 금액이 영업점 판매 실적의 20%를 초과할 경우 성과평가에서 3~9점이 감점되며, 40%를 초과할 경우 10점이 감점된다.

그래픽=김현국

하나은행도 고위험 상품의 판매 비중에 상한을 뒀다. 기초자산과 주가, 환율, 금리 등이 연계돼 수익률이 결정되는 고위험 상품의 판매 비중을 영업점 전체 상품 건수 대비 80%로 제한한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아예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0점 처리되는 것”이라고 했다.

신한은행은 올해부터 고객 연령에 따른 실적 평가 제외 상품을 지정했다. 고객이 만 65세 이상일 경우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펀드, 변액보험,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신탁형ISA, 장외파생상품 등은 실적 평가에서 제외된다. 만 80세 이상 고객에 대해선 모든 투자 상품의 판매 실적이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밖에 신한은행은 이번 달부터 각 영업점을 대상으로 암행평가(미스터리쇼핑)도 진행 중이다. 암행평가란 고객으로 가장한 심사·평가원이 영업점을 방문해 직원들의 상품 판매 과정이 규정에 부합했는지 평가하는 절차다.

우리은행은 홍콩 H지수 ELS 판매액이 400억원으로 미미하지만 KPI 개편에 동참했다. 중·저위험 상품 판매 비율을 50% 이상으로 유지할 경우 가점을 주는 방식이다. 중·저위험 상품이란 수익률 변동성 기준으로 15% 이하에 속하는 상품으로 변동성이 낮은 일부 주식형 상품과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채권형 상품 등을 말한다. 우리은행은 오는 22일 이사회에서 홍콩 H지수 ELS 손실 관련 자율배상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 같은 시중은행의 움직임에 대해 한 금융 당국 고위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은행들이 고객들과 함께 상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10명 중 4명 “서명 먼저 해라” 경험

반면 주요 은행들의 개선 노력에도 일각에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가 지난해 이미 금융 소비자들로부터 매우 박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갤럽에 의뢰해 진행한 ‘2023년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1%는 금융회사들의 금융윤리 의식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또 손익구조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상품 이용 경험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0.9%가 ‘최근 5년 내 손익구조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상품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상담·계약 과정 중 판매직원이 설명은 대충하면서 서류에 필요한 서명부터 우선 안내했다’고 답한 비율은 38.4%로 집계됐다. 금융소비자 10명 중 4명꼴로 금융상품을 계약할 때 ‘서명’을 먼저 안내받은 것이다. 이 조사는 지난해 10월 20일부터 11월 8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9~69세 일반 국민 104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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