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책임지지 않는 권력 [기고]

한겨레 2024. 3. 2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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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13일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 방송 장면. 문화방송 유튜브 갈무리

심미선 |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방송 내용에 대한 심의·규제를 하는 기관이다. 방송 내용을 규제한다는 것은 자칫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래서 최소 규제가 원칙이다.

방심위는 위원장과 심의위원 중심 체제이다. 그들의 임기는 3년이다. 임기제이기 때문에 심의·제재와 관련해 책임질 일은 거의 없다. 이명박 정권 시절 방심위가 법정 제재를 가한 몇몇 사안들이 법원에서 제재 취소 결정을 받았지만, 당시 제재를 결정한 사람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물론 방심위의 심의 결과와 법원의 결정이 늘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법정 최고 수위의 제재를 받은 사안에 대해 법원이 ‘문제없음’ 결론을 내린다면, 해당 사안에 대한 심의·의결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제재는 심의위원의 몫이라 이들이 방송 내용을 심의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었는지, 이해충돌로부터 벗어나 있는지 살펴야 한다.

방심위 1기부터 5기까지 심의위원의 직업을 보면 교수, 법조인,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 정치인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1기부터 4기까지는 교수의 비중이 40% 내외로 가장 높았는데, 5기(정연주~류희림 위원장 시기)로 넘어오면서 언론인 출신의 비중이 커졌다. 또 두명의 5기 위원장은 모두 특정 방송사 출신이다. 방송 내용을 규제하는 기관의 위원장과 위원을 특정 방송사 출신으로 위촉하는 것에 과연 문제가 없을까.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캐나다의 경우, 적어도 방심위원장은 방송 산업과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인사로 선임하도록 명문화했다. 이해충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방심위원 9명 중 6명은 사실상 정당 추천으로 정파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국외 사례를 보더라도 심의위원은 대부분 정당 추천으로 구성된다. 형식상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는 심의위원의 자격 요건과 전문성·중립성을 확보할 보완 장치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법률 전문가가 3분의 1 이상 참여해야 하고, 영국은 위원 선정 때 지역 대표성을 반영하도록 돼 있다. 독일은 ‘바이든-날리면’처럼 사회적 논란이 큰 사안일 경우, 70명으로 구성된 시청자 배심원단을 활용하는 유연성을 보인다. 그런데 우리 법률은 심의위원의 임기와 임명에 관한 사항만 명시할 뿐, 자격에 대한 규정은 아예 두고 있지 않다.

문제는 방심위원의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 너무 막강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은 특정 언론사를 탄압하는 칼이 된다. 이번에는 그 칼날이 문화방송(MBC)을 향하고 있다. 문화방송은 방심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매달 숱한 법정 제재를 받고 있다.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건수도 상당하다. 제재 건수로만 보면 문화방송은 나쁜 방송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화방송을 영향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문화방송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2위이다. 에스비에스(SBS), 제이티비시(JTBC), 와이티엔(YTN), 티브이조선 등이 모두 문화방송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방심위는 언론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이제까지 방심위에서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법정 제재를 받은 사례에는 일관된 특징이 있다. 우선 ‘일방의 주장만을 방송했다’는 것이고, 모두 당시 정부, 또는 여당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야당을 비판하는 보도가 법정 제재를 받은 사례는 지난 16년간 단 한건도 없었다. 모두 행정지도로 마무리되었다. 방송법에 따른 방송심의규정 7조1항은 “방송은 국민이 필요로 하고 관심을 갖는 내용을 다룸으로써 공적 매체로서 본분을 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에게 필요하고 국민이 관심을 갖는 내용은 대부분 논쟁적인 사안일 가능성이 높다. 방심위 논란은 이런 논쟁적인 사안을 보도하면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서 시작된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20년이 넘었다. 나는 언론은 논란을 회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젠 고민이 된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언론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감추고, 시류에 따라 적당히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것 같아 씁쓸하다. 과유불급,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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