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vs ‘침묵’…의대 증원 비수도권 대폭 배정에 대학 반응 엇갈려 [오늘의 행정 이슈]

이보람 2024. 3. 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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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분을 비수도권 의과대학에 대폭 배정하면서 대학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환영의 목소리를 내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정원 확대에 반대하던 의대 교수·학생과의 관계를 고려해 침묵하는 곳도 있다.

정원 49명인 ‘미니 의대’로 운영되던 동아대는 정부의 의대 증원 배분안에 환영 입장을 내놨다. 이 대학의 정원은 51명이 늘어난 100명이 됐다. 동아대 관계자는 20일 “우리 학교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의대 교수들도 모두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며 “이미 의대 증원을 위한 시설보강과 교수 확충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아대는 의대 입학정원을 키워 지역의료 핵심 대학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한 대학별 배분 결과를 발표한 20일 오후 대구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의 동맹 휴학으로 텅 비어 있다. 뉴스1
울산대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의대 정원 증원 발표가 울산지역 의료 인프라 개선과 의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울산대는 부속병원인 울산대학교 병원, 협력병원인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과 함께 학생들을 앞으로 더 잘 교육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울산대 의대 측은 학과 사무실 등에 의대 증원 입장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 40명이던 울산대 의대 신입생은 이번 정부의 발표로 120명으로 늘었다.

지역 거점 대학들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경북대(100→200명)는 “구성원간 의견을 잘 조율해 교육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반겼다. 연세대 원주의대(정원 93명)는 정부에서 발표한 의대 증원 계획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대학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따라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림대(정원 76명)는 증원 규모가 크지 않아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림대 관계자는 “대학과 의대본부에서 수차례 협의와 조정을 거친 후 증원 규모를 결정하고 정부에 제출했다. 국립대에 비해 증원 규모가 크지 않아 자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전북대는 “의대 학생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의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인프라 확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전북대는 남원 서남대 의대 폐교로 2019년 정원 32명을 추가로 배정받아 전국 의대 가운데 가장 많은 정원(142명)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58명이 추가로 증원돼 200명이 됐다. 전남대(125→200명)와 조선대는 교육환경을 점검하고 정비해 차질없이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일부 대학은 증원에 맞춰 건물 증축을 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건양대는 병원 신축 완료 및 의대시설 증축을 진행하고 있다. 건양대는 49명이던 신입생이 100명으로 늘었다. 정원이 100명에서 200명으로 증가한 충남대는 “학생 정원 증원에 필요한 교수 정원 확보, 실험·실습 등 교육 인프라 구축을 위해 행·재정적인 준비를 차분히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단국대는 지역 정주 의료인력 양성을 위해 이번 의대 증원과 관계없이 지역인재 선발을 검토하고 있다. 인원 증원에 따라 광역 충청권의 지역인재 선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준비해 갈 계획이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한 20일 오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 개혁 4대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예상보다 배정 학생 수가 적은 대학들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계명대는 증원규모를 180명으로 신청했지만, 120명으로 결정됐다. 의과학과 신설에 나선 카이스트는 정부에 지속적으로 설립 필요성과 정원 배정 요청에 나설 계획이다. 원광대는 기존 93명보다 2배 많은 186명으로 정원을 늘려달라고 했지만, 150명이 배정됐다. 원광대 관계자는 “의과대 인프라 추가 확보와 교수진 충원 등 의과대 운영 시스템을 증원에 부합하도록 바꿔 양질의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조심하는 분위기도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해온 대학 당국과 이에 반대하던 의대 교수, 학생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대는 교육부의 의대 증원 배분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며 “워낙 민감한 사안인데다, 대학본부와 의과대학 간 입장차가 커 공식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말을 아꼈다. 고신대(76→100명)는 “의대 증원 수요조사 당시에도 대학본부와 의대 교수들이 격렬하게 대립해 증원 신청 내용을 일절 밝히지 않았다”면서 “정부의 의대 증원 배분안에 대한 대학본부의 입장 표명이 자칫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을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40∼80명의 추가 인원이 배정돼 정원이 2∼3배 늘어난 경기지역 의대 관계자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교육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라며 “이번 증원 건으로 (우리) 학교가 주목받는 걸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의대가 없는 지역에선 의대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경북도는 안동대 국립의대·포스텍 연구 중심 의대 신설을 중앙 부처에 요청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역 의료불균형 해소와 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경북에 의과대학 신설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국립의대 신설을 건의하고, 지역의대유치TF를 꾸렸다. 카이스트는 정부에 지속적으로 설립 필요성과 정원 배정 요청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 교육부와 대통령실 등에 카이스트 의과학과 신설 근거 및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릴 계획”이라며 “그동안 관련 토론회 등으로 공론화해왔고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앞으로는 실무적 전략 방안을 마련·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지역 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전남도 국립의과대학 신설안을 조속히 마련, 정부와 긴밀히 조율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20일 오후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병원에서 한 시민이 정부의 전국 의과대학별 정원 배정 결과 발표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에선 의대 증원 이외 수련병원이 확대돼야 비수도권에 정착하는 전문의가 많아지는 지역·필수의료 선순환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동아대 관계자는 “동아대병원은 1000개 병상과 2개 권역센터(심혈관질환센터·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반면, 동아대 의대 정원은 49명으로 전공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순천향대 관계자는 수도권에는 20% 비수도권에 80%를 배분하는 방안은 현재의 의료 여건을 감안할 때 비교적 효율적인 배분이라고 평가하면서 “우선 시급한 것은 학교 교육의 정상화와 배정받은 인원에 대한 교육의 질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황병덕 부산카톨릭대학 교수(병원경영학) “지방의대 중심으로 증원해도 결국 수련할 병원은 서울에 몰려 있어, 의대생들이 다시 서울로 가게 돼 있다”며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선 단순한 증원에 그칠 게 아니라 지역 의무 근무기간을 정하고, 장학금 등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는 식의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함께 지역인재전형 신입생 선발 비중을 40%에서 60%로 상향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의대만 지역에서 나올 뿐 전공의 수련이나 전문의로서 개원은 서울에서 이뤄지는 관행을 끊는 후속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박유환 광주시의사회장은 “정부는 시종일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일방적이고 무리하게 추진했다”며 “끝내 대화하지 않겠다고 하니 더이상 논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한성호 동아대 교수(가정의학과)는 “지역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의대 정원 확대하는 것은 방향성에선 일부 맞다”면서도 “옳은 일에도 순서가 있는 법인데, 총선 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의대정원 확대는 단순히 인원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교육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이공계 인재가 의대진학을 위해 유출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겠느냐. 의료 교육현장에도 큰 혼란이 있을 듯 하다”라고 우려했다.

부산·대전·대구·전남·울산=오성택·강은선·김덕용·김선덕·이보람 기자·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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